씨앗 받는 농사 매뉴얼. 오도. p215
꼬투리(씨앗주머니), 풀무학교, 창업생(졸업생)
씨앗을 뿌리고, 열매를 수확하고, 다시 씨앗을 받는다. 오랫동안 자연스럽게 여겨졌던 농사일의 고리가 어느 순간부터 끊어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씨앗을 받지 않는다. 씨앗은 종묘상에서 돈을 주고 사는 물건이 되었으며 누가 심든, 어디에 심든 모두 똑같은 작물들만 자라난다.
#씨앗을 지키는 일, 우리를 지키는 일
2003년 풀무학교 전공부에서 농사를 시작하기 위해 씨앗들을 찾기 시작했다…대부분의 씨앗은 종묘상에서 사서 심고 있었다. 심지어 옥수수까지도, 학교에서 받아서 쓰는 씨앗은 볍씨나 깨, 콩 종류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어릴 적 집에서는 씨앗을 산 적이 거의 없었던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일까?’ 고민하던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옛날 어른들은 씨앗을 받았었다. 그럼 우리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씨앗을 받자.’
‘씨앗 농사’야말로 농부들이 해야 할 사명과도 같은 일.
옛날에는 누구 한 사람 씨앗의 ‘대가 끊길’ 걱정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해 우리 사회에는 큰 변화가 찾아왔고, 그 변화는 농촌문화에 가장 먼저 큰 영향을 끼쳤다. 농사일이 못 배우고 천한 사람들이 하는 일로 전락해버렸다. 그러니 농사 관련 연구나 출판도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씨앗은 그저 돈 주고 사면 되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먹는 채소 씨앗이 어디서 오는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가지고 보는 이들이 거의 없다.
그래서 시작했던 것 같다. 하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전공부에서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고집스러움으로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옛 속담에 ‘굶어 죽어도 씨앗은 남긴다’는 말이 있다. 두고두고 생각이 나는 말이다. 지금 우리나라 대부분의 종묘상들이 다국적 기업에 넘어간 상태다. 씨앗만은 우리가 지켜야 하지 않을까! 우리 농부들의 몫이다.
#무엇을 심을 것인가?
F1 씨앗. 씨앗은 종묘 회사로부터 구입하는 것이라는 의식이 정착. 이에 따라 재배 기술은 단순화되고, 농가의 공부에 대한 의지도 점점 낮아지고 있다. 채종 기술은 농가 기술이 아니라 기업 기술이 되어버렸다.
음식의 ‘글로벌화’? 어려서 부모님이 산과 들에서 캐어 와 밥상에 올려주던 냉이나 쑥은 이미 별미가 되었고 머위나 도라지, 더덕 등은 보양식이 되어서 흔하게 먹는 음식과는 거리가 멀어진 지 오래다.
요즘은 무엇이든 밭에서 키우고 야생에서 캐거나 뜯어 먹기보다는 마트에 가서 돈을 주고 사서 쉽게 요리를 한다…각종 봄나물이 사계절 내내 재배되어 시장에 나오고,…그러다 보니 각 지역에서 재배되어온 특산물도 점점 사라지고, 제철 음식에 대한 개념도 사라져 가고 있는 듯하다.
자가 채종. 먼저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기후나 물, 공기, 흙에 대해 알아본 후, 지역에 맞는 품종을 찾아내는 일이 중요하다. 지역의 땅과 기후에 맞는 씨앗을 심었을 때 가장 잘 자라날 수 있기 때문. 때문에 자연 환경을 지키는 일은 곧 지역의 씨앗을 지키는 힘이 된다.
편리함과 돈에 집중. 품종들의 단일화가 급속도로 진행. 생활 속에서 이미 찾아보기 어려워진 다양한 맛을 지닌 지역 품종들을 하나둘 찾아내는 일은 의무감과 책임감, 보람과 즐거움을 모두 느끼게 한다.
지역 어르신들의 씨앗 주머니는 늘 열려 있다. 조금 나눠줄 수 있냐고 부탁드리면 수줍어하시며, 주름진 손으로 한 움쿰 쥐어 내 손에 조심조심 올려놓으신다…이 씨앗들을 물려받은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 이런 씨앗 마실은 의외로 성과가 크다.
농사의 기본은 씨앗
F1 씨앗. 씨앗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으니 해가 갈수록 씨앗 값은 높아지고 결국 종묘상에 의존해서 농사를 지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타가수분 작물이 많은 이유는 근친교배에 의해 생육이나 번식력이 약해지는 현상을 막기 위해서다
교잡을 막는다. 씨앗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다른 품종 간의 교잡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한랭사)
박과 채소인 호박, 수박, 참외, 오리 등은 한 구루 안에 암꽃과 수꽃이 따로따로 달리는 자웅동주. 암꽃은 꽃이 피기도 전에 이미 열매가 달리고, 수꽃은 열매 없이 꽃만 달린다. 꽃이 피기 전에 암꽃과 수꽃의 구별이 확실.
종자은행의 씨앗. 변화하는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다? 하루하루 다르게 변하는 기후에 적응하기란 무척 어렵다. 씨앗을 환경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줄 아는 생명체이다. 그래서 씨앗은 끊임없이 환경과 호흡하고 긴장하며, 그 지역에 적응하면서 계속 진화 전략을 구사한다. 씨앗을 지키는 일은 곧 생물다양성을 보존하는 일이고, 지구 환경을 지키는 소농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작물별 씨앗 농사 매뉴얼
후두둑 떨어지는 씨앗
보송보송 털이 많은 씨앗
탁탁 털어내는 씨앗
쏘옥 골라내는 씨앗
땅속에 숨어 있는 씨앗
낱알이 많은 곡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