펠릭스 가타리의 생태철학.신승철(그물코). p124
욕망은 우리의 몸, 감성, 상호작용에서 작동되는 생명에너지이다.
욕망이 변형되고 왜곡되는 까닭은 무엇인가에 의해서 가로막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 가로막힘으로 인해 변형되고 왜곡된 욕망은 돈 때문에 돈을 욕망하고, 권력 때문에 권력을 욕망하는 것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은 생명에너지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도착의 형태로 바뀌게 되며, 이 과정에서 욕망 일반을 거부해야 자본주의도 멈추고 생태적 삶도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도록 만든다. 그러나 욕망은 과학, 예술, 혁명의 원동력이며 대안사회를 만들고 창안할 수 있는 힘이다.
새롭게 만들어지는 욕망의 흐름에 따라 끝없이 변이되는 프랙탈 차원의 관계망, 프랙탈의 자기 유사성과 순환성. 우주의 모든 것은 프랙탈의 형태를 따른다.
텔레비전을 통해서 조작되는 욕망은 대량생산된 이미지, 코드, 상징체계를 작동시켜 소비주의, 도시주의, 물신주의를 퍼뜨린다. 가타리는 이러한 자본주의를 향한 욕망과는 다른 차원의 대안을 향한 욕망이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순환하면서 새로운 관계망을 이루는 데 주목한다.
분열생성, 분자혁명…이 차원에 접속하는 사람들은 돌연변이처럼 변화되며, 눈덩이처럼 결집된다.
‘과연 생태적이고 대안적인 삶이 지금 그리고 앞으로도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가타리는 “어떤 혁명가나 어떤 혁명운동도 없을지라도 모든 수준에서 혁명이 있을 것”(『가타리가 실천하는 욕망과 혁명』) 이라고 대답한다.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뭇 생명의 입장에 서자
_소수자 되기는 성공주의, 승리주의에 대한 해독제이다
자본주의가 사람들에게 주입하는 사상 가운데 하나가 성공주의, 승리주의이다…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사실 돈을 많이 번 사람인 것을 보면, 자본주의가 맹목적 충동으로 만들고 있는 성공신화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돈을 벌면 된다는 메시지를 남몰래 퍼뜨린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물신주의와 도착의 망상동 영원한 것이 존재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일 만 년 된 산과 들판을 백 년도 못 사는 사람이 가질 수 있다고 설정하는 것 자체가 사실 착각이나 오류이다.
자본주의는 미쳐 돌아가는 체제이다.
미친 듯이 벌고, 미친 듯이 놀고, 미친 듯이 써서 없앤다. 그렇게 잔치판을 벌일 만큼 지구는 무한한 자원을 줄 수 없지만, 자본주의의 광기는 사람들 틈에서 천연덕스럽게 자리잡고 있다.
‘소수자 되기’는 기존 통념에서 드러나는 보편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존재를 걸고 나서는 역동적인 사랑이다. 이것은 사람의 힘이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차원을 열 수 있으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를담고 있다. 그것은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 대한 사랑이 약속하는 새로운 생태적 삶이다.
#미래로 향한 무의식을 만들어내는 것은 색다른 관계맺음이다
_무의식은 개인 책임이 아니라 사회제도의 책임 영역이다
무의식은 개인의 심리 상태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 관계망의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무의식은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낼 수 있는 영역이다.
#불꽃을 일으키는 풀무는 바람의 여백이다
_공동체의 관계망 속에서 주체성 생산이 가능하다
#공동체는 대안을 자기생산해야 한다
_생태계의 자기생산 현상은 기술, 사회에도 적용된다
생태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나 시스템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는 관계망. 생명의 네트워크라고 부를 수 있다
#특이함이 생명네트워크를 프랙탈운동으로 만든다
_특이한 주체 생산은 공동체를 풍요롭게 만든다
공동체가 더 풍부해질 수 있는 길은, 늘 이행 중이고 주변에 있고 애매하고 모호한 위치에 있는 소수자로 변용되는 과정을 거쳐 특이성을 받아들일 때이다(다양성을 존중하는 공동체)
프랙탈운동은 생명이 증식할 때 드러나는 유형으로, 나뭇가지의 증식, 파도의 증식, 씨앗의 발아, 눈의 증식 들에서 드러나는 형태이다
#분열의 힘으로 생명네트워크는 변해간다
_욕망의 창조적 분열이 특이한 생성을 가능케 한다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不狂不及)”? 미치지 않은 욕망은 일종의 기호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욕망은 일종의 ‘어디에 미친다’는 현상과 함께 나타난다. 가타리는 욕망이 갖고 있는 미친다는 현상을 분열이라고 규정하고 분석한다.
#분자운동은 생명에너지의 흐름에 따른다
_운동이 하나의 모델에 집중하기보다 달라지고 변해가는 과정에 주목하자
혁명의 공식? 이런 모델화 작업은 특히 레닌주의 방식의 혁명모델을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많이 나타난다. 그러나 현실운동이 이것과는 다르다는 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는 부분이다. 현실운동이 미리 결정된 공식이나 모델에 따라 움직이지 않고,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수준의 색다른 일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만약 운동이라는 차원이 어떤 공식에 따라 움직인다면, 세상을 변혁하려는 의미는 줄어들 것이다.
갑자기 새로운 운동으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현상이 중요하다…그러므로 현실운동에서 중요한 것은 노동자운동을 중심으로 하고 다른 운동을 주변으로 삼는 모델화 과정이 아니라, 다양한 운동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변이되고 이행하느냐의 여부이다.
분자운동에 주목하는 까닭은, 기존의 영역을 벗어나서 탈영토화하려는 욕망의 흐름에 따라 운동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막 생성되기 시작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대안적 생명운동은 욕망이라는 생명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하나의 전형, 하나의 모델, 하나의 모범에 사로잡히지 않고 끊임없는 창조적 진화를 통해서 생명이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과 형태, 관계망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분자운동에 주목하는 까닭이다.
#대안미디어는 색다른 욕망을 직조한다
_텔레비전은 전 지구적 예속장치이다
가타리는 텔레비전이 대중들의 무의식, 심상, 정서 들을 결정하는 것을 보면서, 이것이 통합된 세계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있게 만드는 매우 유연한 예속장치라고 본다.
텔레비전은 대중들 스스로가 욕망을 생산하여 창조적이고 도전적인 행동에 나서는 것을 막고, 부드럽고 달콤한 메시지들 앞에서 넋이 나가도록 만들어 텔레비전이 던져주는 영상,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욕망을 소비하게 만든다.
자유라디오운동, 풀뿌리지역라디오운동은 지역공동체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으며, 주류미디어에 의해서 욕망이 조작되는 것이 아니라 대안적인 삶의 목소리와 색다른 욕망을 담을 수 있다.
인터넷이라는 대안 공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가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색다른 생태적 감수성이 우리 세기에 가능하다
_마음생태, 사회생태, 자연생태는 상호의존적이다
가타리가 쓴 『세 가지 생태학』은 생태사상에서 기념비적인 의미를 갖는 책이다
대안적인 삶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서는 마음생태의 변화가 필수적이며, 새로운 자기결정, 자율성, 자치행동 따위의 영역이 필요하다
#느림과 여백은 차이 속의 일관성을 형성한다
_공동체 안에서 중언부언하게 되는 이질적인 것 사이에 일관성이 숨어있다
회의나 대화 자리의 엇갈린 의견. 그럴 때면 사람들은 효율성과 통일된 모습을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통합을 추구하는 일은 공동체의 자율성을 깨뜨릴 위험이 있다.
‘일관성의 구도’? 광인들이 서로 주제나 기준이 맞지 않게 중언부언하면서 저마다 다른 방향으로 말을 한다. 그러나 그 속에는 일관성이 숨어 있으며, 결론도 통합도 의견일치도 없는 가운데서 일관된 방향성을 가지고 집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결정해낸다…공감각이 중요하다! 말은 어눌하고, 서로 다르고, 차이가 나더라도 일관된 입장이 나오는 것은 그러한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공동체는 말로써 일치와 통일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말로 이루어지지 않는 생활의 공간과 주위 환경 속에서 어떤 방향성의 맥락을 잡을 수 있다. 공동체의 회의가 어떤 결론을 향해서 의견을 통일시켜 나가는 절차 과정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효율을 가장한 독재 방식의 내밀한 침투라고 할 수 있다. 미리 결정되거나 의견이 일치해야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열려있는 대화가 되기 위해서는 다소 엉뚱하게 다른 방향에서 제안을 하거나 전혀 맥락에 맞지 않는 대화나 발상도 받아들여져야 한다.
빠름과 효율성의 방식은 같음을 전제하고 의견일치를 이루어 일사분란하며 동일한 메시지를 복제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공동체를 하나의 통일된 깃발 아래 모인 조직으로 볼 것이 아니라, 저마다 조각조작들이 서로 이어 붙어 퍼즐과 같은 그림을 만드는 것처럼 생각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공동체의 관계망은 결론을 성급히 이끌어내지 않고, 매우 느리게 차이에 바탕을 두고 움직이며, 이것은 수많은 창조행위를 일으키는 무의식에 기반한 관계망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생명의 화음이 대안의 삶을 가능케 한다
_사랑과 욕망의 영토에서 발생하는 화음에 주목하자
우리는 대중문화의 무조건적인 소비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의 고유한 음색을 발견하고 공명하는 화음 속에서 욕망과 사랑의 일관성을 창조할 필요가 있다
#색다른 욕망은 사이배치의 변이를 만들어낸다
#분자혁명은 새로운 형태의 혁명이다
_생태계 차원에서 놀라운 변화를 이끌 혁명이 가능하다(에코로지적 혁명이 영구적으로 지속되고 있다)
분자혁명은 소수집단 속에서 홀연히 나타나거나 사회집단 일부에서 갑자기 예고없이 출현한다.
똑딱거리는 자본주의의 일상을 거부하고, 새로운 방식의 삶을 시작할 때 분자혁명은 시작된다. 소수자들이 자신의 욕망의 존엄함을 위해서 행동에 나설 때 분자혁명은 시작된다.
지율스님이 혼자서 100일 동안 단식을 하면서 한국 사횡에 엄청난 파란과 눈덩이효과를 일으켰다. 분자혁명은 단 한 사람의 결단과 행동변화 속에서도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은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민중의 관계망은 풍부하고 다채로운 잠재력을 갖고 있다
_구조로부터 자율적인 주체성이 가능하다
“학교는 변해야 한다. 학교는 자본주의적 공장이다”라는 슬로건은 설득력을 갖지만, 그것에 대해서 투쟁하고 있는 주체성의 모습에 사람들은 주목할 것이다.
#비언어적 영역에서 새로운 배치가 가능하다
_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관계망, 상호작용, 흐름에 주목하자
하나의 언어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은 오만과 편견의 산물이다. 민중들은 다채로운 관계망을 갖고 있고, 생명 또한 다채로운 관계망 속에서 살아간다
#소수자의 욕망가치로부터 대안가치의 논의로
_자본주의는 착취로부터도 유지되지만 차별로부터도 유지된다
자신의 일부를 이루는 소수성이 더욱 많을수록 욕망경제는 일관되게 더욱 더 풍부하고 혁명적이다. 소수자의 정치는 반드시 주변성으로 가지 않는다. 소수자를 주변화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권력이다.
#색다른 욕망이 다른 미래를 가능케 한다
_모든 욕망하는 생명체는 존엄하다
『세 가지 생태학』이라는 가타리 책의 핵심은 특이성을 생산하는 주체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의 문제로 집중된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위기 시대에 사는 오늘날 가타리가 전잘해 주고 싶었던 생태철학의 핵심은 주체성 생산, 주체성 혁명이라고 요역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