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의 귀향. 최성민. p296
이 이야기는 50대 초반의 도회지 먹물이었던 내가 전인미답의 산에서 10년 동안 야생다원을 일구어내는 과정에서 겪은 것들이다. 순수한 자연과의 만남이 주는 즐거움과 성취감과 가르침은 더없이 값진 것이었지만, 그 길목에서 마주쳤던 인간들이 드러낸 사리사욕을 향한 거짓과 위선과 남을 해함은 자연의 선함과는 반대쪽으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다.
웰빙에서 힐링으로? 바야흐로 육질적 행복 추구에 동반된 마음의 병을 치유할 곳을 찾고자 하는 것이었다. 웰빙에 이르기까지 병이 축적된 원인은 지나친 인위 탓이고 그 병의 원인 치료제는 단연 무위의 자연이어야 한다!
산절로야생다원을 일구기뿐만 아니라 그 과정과 현장에서 체득하게 된 자연의 기막힌 ‘스스로 그러함’
안 익은 매실과육에 남아 있는 청산가리 독소의 존재는 아랑곳없이 ‘o매실’이라는 이름을 붙여 파는 상혼에 대한 기사를 썼다가도 어떤 매실 마을에 내려가 무마를 해야했다. 하루에 버스 한 대씩 신문사 앞에 보내 시위를 하겠다고 위협했기 때문이다.그만큼 한국의 일부 ‘생업 이기주의’는 막무가내로 힘이 세고 소비자를 위한 도덕성과는 그만큼 거리가 멀었다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폭풍우나 북방한설 같은 거대한 힘에 의해 자연의 모습이 격변하는 것 같으면서도 늘 ‘그러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손’이 있음의 증거다.
자연 공동체의 잡목 잡초 더미 속에서 ‘무위자연’이라는 ‘자연의 도’에 따라 나고 길러지는 야생차는 자연의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결정체다.
산에 서식하는 야생차는 자연 공동체의 이웃으로부터 많은 혜택을 받는다. 오랜 기간 낙엽이 쌓여서 변한 거름기가 땅속 깊이스며들어 직근성 자나무에게 꿀같은 영양이 되어준다.(비료와 농약을 뿌려대는 ‘재배차’보다 자라는 속도와 건강한 정도가 두 배가 넘는다)
나는 이 야생다원에 다니는 길에 자연의 생명력을 보며… 참살이, 맘 편하고 질 높은 삶이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았다? 이유를 말하지 않는 것은 대개 반대하거나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사 표시다.
멀쩡한 쥐가 갑자기 비틀거리면 쥐약을 먹은 것이고, 정상적인 사람이 뚜렷한 이유 없이 이상한 언동을 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법
현대인의 정신적 트러블은 자연이탈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불통즉통
명상은 ‘인간은 무엇이고, 참 나는 누구인가?’를 주제로 자연의 일부인 인간이 자연 질서 속에서 어느 위치에 있는지, 자연과는 어떤 관계인지를 마음으로 탐구하여 ‘제 자리’를 회복하고자 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기적의 사과』 우연히 만난 책 한권? 그 책에 나오는 기무라씨의 이야기가 어쩌면 그렇게 내가 야생다원을 일구는 일의 철학과 지향점에 약속이나 한 듯 맞아떨어지는지 감격스러웠다.
‘미치면狂 미친다至!’
무엇이든 10년은 해야 길이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해답은 흙속에?
과수원 흙과 산 흙의 가장 큰 차이는 산 흙엔 온갖 잡목 잡초의 뿌리가 공생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어떤 뿌리들은 종횡으로 지나가면서 공기가 드나들 미세한 숨길을 트여주고, 자운영이나 땅싸리 같은 콩과식물의 옆으로 뻗는 뿌리는 질소를 고정 작용을 통해 공중의 질소를 땅속에 잡아 뿌려주는 ‘자연 비료’ 구실을 할 터였다. 서로 돕고 사는 자연공동체 세상이 흙 속에서 제대로 영위되고 있는 것이었다.
기무라씨의 과수원은 벌레 집산지? 자연 공동체!
‘기적의 사과’와 산절로야생다원의 차가 주는 교훈에서 감격과 무서운 경고를 감지한다. 자연 생태계는 서로 유기적인 영향을 주고받으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이어가는 공동체의 삶터라는 것이다.
無爲而無不爲. ‘함’이 없으나 ‘안 함’이 없는 자연
그대로 놔두면 낙엽이 덮여서 촉촉한 환경에서 이듬해 발아하게 된다. 야생차 씨앗을 심을 때는 이런 자연 원리를 잘 이해하여 너무 깊게 심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식물의 씨는 땅위에 얹히기만 해도 땅속으로 파고드는 본능이 있다. 단 자연의 생명력이 강한 산에서 가능한 일이다.(부드러운 산흙?)
天地不仁 天道無親. 자연은 아무런 목적, 의도, 감정 없이 세상을 운영한다. 산에 심은 차 씨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날 곳은 나고 안 날 곳은 안 난다. 자연은 속이지 않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산이나 자연이 인간을 대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것과 좀 다르다.
道常無爲而無不爲. 자연은 늘 어떤 목적과 계산으로 무엇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 하는 게 없다
잡초, 자연 공동체의 다정한 이웃
도시에서 막 내려온 나에게 농사 경험이 많은 시골 아주머니들이 알아서 척척일을 해준다는 덧은 품삯 몇 푼 올려준 것의 몇 배에 해당하는 흐뭇함을 가져다주었다? 당장 풀을 뽑을 것이냐 놔둘 것이냐 등 바로 결정해야 할 경우 아주머니들의 오랜 경륜에서 나오는 판단은 고민 해방의 명약이었다!
낙엽의 고마움
하룻밤 새 자로 잰 듯 잘려나간 차나무들? 범인은 겨울 산토끼? 그런데 잘린 자리에서 두 줄기가 돋아나왔다. 토끼들이 ‘자연 분지’를 해준 셈. 자연의 섭리이자 무위이불위다
차나무와 고사리의 아름다운 동거
무성히 자란 고사리는 한여름 차나무에게 땡볕을 막아주고 겨울에 차나무 옆에 스르르 시들어 차나무를 덮어준다. 봄까지 그러고 있다가 장마 전까지는 마침내 차나무에게 기름진 거름이 되어준다.
‘산절로’ 이름짓기
‘마음을 비우면 캄캄한 밤이 어둠 속에서도 밝아지는 것처럼 새로운 생각의 공간이 열린다虛室生日’
허의 극치에 이르면 고요함을 얻을 수 있고 고요한 마음은 거울과 같다
송시열선생의 시조, ‘청산도 절로’
청산도 절로 절로 녹수도 절로 절로
산 절로 수 절로 산수 간에 나도 절로
그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절로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법입니다. 묘를 어떻게 가르쳐줄 수 있겠습니까. 가르쳐줄 수 있다면 그것은 묘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굳이 가르쳐달라고 한다면 한 가지가 있습니다. 당신은 내가 가르쳐준 법으로 아침이고 저녁이고 낚싯대를 드리워 정신을 가다듬고 뜻을 모아 오랜 동안 계속하면 몸에 배고 익숙해져서 손의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조절되고 마음도 저절로 터득하게 될 것이니, 이처럼 된 후에 묘를 터득하거나 못하거나, 혹 미묘한 것까지 통달하여 묘의 극치를 다하거나…하는 따위는 모두가 당신에게 달린 것이니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가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것뿐입니다.”
곡절과 좌절
지나친 친절은 사기다
미치면 미친다
별것 아닌 야생다원 조성을 두고 요란을 떨 일은 아니지만, 나에게 있어서 산절로야생다원 일구기는 ‘성공한 쿠테타’가 아니라 ‘성공한 미친 짓’이 아닌가 생각된다.
야생다원 터 둘렛길을 내며 포클레인 기사에게 3배의 바가지를 쓴 일, 간벌을 하면 사기를 당한 일, 간벌꾼이 나를 한쪽에 잡아두다시피 하고 강 건너 산 아름드리 육송을 전부 베어간 일,..’곡성 불발탄’의 협박에 300만원을 갈취당한 일 등 정상적인 경우 당하지 않아도 되거나 당하면 포기하고 말 일을 숱하게 겪었다.
다시 돌아볼수록 코끝이 찡해진다. 나는 산절로야생다원을 일구면서 무슨 일이든 마음을 비우고 자연의 ‘스스로 그러한’ 이치를 생각하며 한 방향으로 나아갈 때 절실하면 문이 열린다는 사실을 여러 번 실감했다.
마음에 진실로 구하면 비록 꼭 맞지는 않으나 멀지 않을 것이다. 자식 기르는 것을 배운 뒤에 시집가는 자는 없다.
『미쳐야 미친다』 라는 책이 있다. 그 책 제목처럼 일부러 미칠 필요는 없지만 가다 보면 어느 결에 미친 것같이 보일 지경에 이르게 되고 이윽고 미치게及 된다. 즉 미치면 미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