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시대. 알랭 드 보통. p292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The News : A User’s Manual
이제부터 하게 될 일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이 익숙한 습관을 지금보다 훨씬 더 이상하면서도 조금은 위태롭게 보이도록 해보려는 연습니다
뉴스가 교묘히 눈길을 회피하는 딱 한 가지가 있다? 그건 바로 뉴스 자신, 그리고 뉴스가 우리 삶에서 점하고 있는 지배적인 위치다. ‘인류의 절반이 매일 뉴스에 넋이 나가 있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언론을 통해 결코 접할 수 없는 헤드라인이다!
철학자 헤겔이 주장했듯, 삶을 인도하는 차원이자 권위의 시금석으로서의 종교를 뉴스가 대체할 때 사회는 근대화된다. 선진 경제에서 이제 뉴스는 최소한 예전에 신앙이 누리던 것과 동등한 권력의 지위를 차지한다? 아침기도는 간략한 아침 뉴스로, 저녁기도는 저녁 종합 뉴스로 바뀌어왔다!
뉴스는 뉴스의 작동원리가 거의 보이지 않게 하는 방법을, 그리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의문을 제기하기 어렵게 하는 방법을 안다.
이상하게도 사람들은 뉴스가 매시간 제공하는 언어와 이미지에 대해서는 좀처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뉴스는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현실을 만드는 으뜸가는 창조자다. 혁명가들이 그러하듯이, 만약 당신이 한 나라의 정신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미술관, 교육부, 또는 유명 소설가들의 집으로 향하지 마라. 정치체의 신경추인 뉴스 본부로 곧장 탱크를 몰고 가라!
어째서 우리 대중은 계속 뉴스를 확인하는 걸까? 이는 공포와 큰 관련이 있다. 뉴스에서 눈을 떼고 나서 아주 짧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습관처럼 불안이 축적된다.
바로 근처에 평화가 있을 것이다. 정원에서는 산들바람이 자두나무의 가지를 흔들고,..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평온이 존재의 혼란스럽고 난폭한 핵심을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며, 따라서 잠시 뒤에는 나름의 근심이 습관처럼 자라난다.
뉴스가 우리에게 전하는 것, 즉 질투와 공포, 흥분과 좌절 같은, 계속 들어왔지만 때로 애초부터 모르는 게 낫지 않았을까 의구심이 들곤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다루는 데는 약간의 도움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따라서 이 작은 매뉴얼은, 오늘날 좀 지나치다싶게 당연하고 무해한 것으로 보이게 된 어떤 작은 습관을 우리 자신을 위해 잠시나마 복잡하게 비틀어보고자 한다.
#정치 뉴스
지루함? 언론이 우리사회에 넘쳐나는 중요한 사건들을 기사화할 때 상습적으로 벌이는 일이다
지루함은 새로운 도전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다. 인류 역사상 사람들을 지루하게 하는 뉴스란 거의 없었다.
중립적 사실보도? 정작 문제는 우리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접한 그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다! 매일같이 새로운 뉴스가 쇄도한다…하지만 이런 것들이 진정 의미하는 바가 뭐란 말인가?..편향? 오히려 임무는 편향된 시각이 생산한 더 믿을 만하고 유익한 뉴스에 올라타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큐레이션의 시대!)
현대사회는 정치적 의지를 가진 사람들의 진을 빼는 게 검열보다 훨씬 교활하고 냉소적인 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다. 이 힘은 사람들 대다수를 혼란스럽고, 따분하고, 정신 사납게 만들어 정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일에 관여한다.
플로베르의 눈에 신문은 사람을 심하게 오염시키는 것이어서, 그는 오로지 완전한 문맹자와 무지렁이 프랑스인들만이 주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해외 뉴스
데이비드 보위 컴백-434만 건 조회, 콩고 분쟁-1890건 조회? 아무도 그 사건들에 딱히 관심을 갖지 않는다
진짜 이유는 뉴스가 충분히 호소력 있는 방식으로 사건들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이라면 어쩔 것인가?
대중은 사실 무지보다는 무관심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다
‘주요 사건’들을 알리는 데 급급한 나머지 뉴스가 잊고 만 것이 있다? 우리가 어떤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에 개입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려면, 그 나라 사람이나 장소에 대한 좀더 깊은 흥미를 유발하는 사소한 이미지나 감각적인 요소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타인의 고통의 대상화가 아닌 타자에 대한 공감력)
#경제 뉴스
뉴스는 세상에 대해 자못 진지하게 설명하려고 애쓴다…숫자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하게 만들기도 한다. 경제지표로 한 국가를 평가하는 것은 혈액검사 결과를 통해 어떤 사람을 다시 그려보는 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GNP의 대안? GHP)
경제지표는 삶을 의미 있다거나 희망차다고 느끼고자 우리가 흔히 기대는 척도에 대한 감각을 끊어버릴 수 있다.
투자정보뉴스? 투자자들을 위한 뉴스? 하지만 영업사원이나 공장의 주임으로서 살아가는 게 어떤 의미인지와 같은 질문은 투자자들과 무관하다…기자들은 숫자 뒤에 감춰진 세상을 보아야 하고, 자본주의를 시각적이고 감각적인 현상으로 인식해야 하며, 오싹할 정도로 질서정연한 사무실과 제조시설의 살균된 아름다움을 탐구해야 할 것이다.
#셀러브리티 뉴스
우리는 셀러브리티를 ‘똑같이 따라하는’ 사람을 두고 안쓰러운 가짜라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선망에 기초한 모방이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훌륭한 삶의 필수 요소가 된다…셀러브리티에 대한 좀더 성숙한 뉴스는 우리가 현재의 자신보다 더 나은 존대가 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진지하면서도 믿을 만한 매개자 역할을 할 것이다.
질투? 뉴스가 보여주는 것과는 반대로, 사실 대부분의 사업이 실패한다. 우리가 지금껏 이룬 것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나 생각하며 개별적으로 괴로워하기보다, 시기심을 가능한 한 충분히 탐구한 뒤에 이 감정에 대해 다 함께 속상해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재난 뉴스
뉴스가 종교를 우리 의식에서 몰아내기 전, 종교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공동의 임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반면 뉴스는 하루 중 보다 실용적이고 활동적인 시간대에, 불루베리와 매일 찻숟갈 하나 분량의 호두 기름에 항암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새로 발견되었다며 광적인 열정으로 계속해서 우리의 주의를 끈다
#소비자 정보 뉴스
뉴스는 ‘소비사회’의 작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날마다 산출되는 뉴스의 결코 적지 않은 부분을 맛집, 여행, 첨단기술, 패션, 자동차, 가구 등의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정보들이 차지하고 있다.
#내면으로부터의 뉴스
“누군가가 강도를 당했다거나, 살해되었다거나, 사고로 죽었다거나, 집이 불탔다거나, 혹은 배가 난파했다거나,…고려할 게 아니라면 그 일에는 두 번 다시 신경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신문을 거의 읽지 않는 사람이 판단하기에 외국에서는 새로운 일이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도 예외는 아니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월든]
새로운 것은 중요한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늘 그런 건 아니다! 뉴스가 지배하는 시대에 온전한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움과 중요함은 그 범주가 겹치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 서로 다른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자신을 성찰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내면 탐구에 반대하는 이 뉴스라는 존재가 얼마나 질투심이 많은지, 그리고 우리 내면으로 얼마나 깊이 침투하기를 소망하는지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뉴스는 절대로 우리를 혼자 있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자신만의 생각을 잉태시킬 만한 인내심 많은 산파의 기술을 터득하지 못하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단단한 무엇을 하나도 갖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무선 신호를 끊고 읽을거리도 손에 쥐지 않은 채 멀리 기차 여행을 떠날 필요가 있다. 객실은 텅 비어 있고 탁 트인 경치가 펼쳐 있으며 들리는 거라곤 기차바퀴가 철컹철컹 리듬감 있게 연속적으로 철로를 지나는 소리뿐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를 둘러싼, 딱히 달변은 아닌 종들이 내건 훨씬 낯설고 보다 경이로운 헤드라인에 주목하기 위해 가끔 뉴스를 포기하고 지내야 한다. 황조롱이와 흰기러기, 거미딱정벌레와 까만 얼굴의 멸구, 여우원숭이와 어린아이들, 우리의 멜로드라마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 이 모든 생명체들은 우리의 불안과 자기도취를 상쇄한다.
뉴스가 더이상 우리게에 가르쳐줄 독창적이거나 중요한 무언가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챌 때 삶은 풍요로워진다.
그때 우리는 타자와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타자를 정복하고 망가뜨리고 만들거나 없애는 일을 그만둘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할당된 짧은 시간 속에서 견지해야 할 자신만의 목적이 있을을 자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