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숲은 깊다. 강우근.p183
도시에서 찾은 자연과 생태
작은 것을 보려면 걸음을 멈추고 키를 낮추어야 한다.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작은 것을 들여다보려고 걸음을 멈추고 키를 낮출 짬이 없다. 들꽃을 보는 것은 멈추어 서는 것이고,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 세상을 꿈꾸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시작이 될 수 있다.
두 아이와 함께 동네에서 자연을 찾으면 놀았던 것을 쓰고 그렸다. 아파트만 빼곡한 동네에도 자연은 있고 그 자연에서 열두 달 사시사철 놀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 책은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보며, 도시에서 길을 찾는 이야기다. 일상에 숨겨진 열쇠를 찾아내는 탐험 이야기다.
요즘 아이들은 놀 줄 모른다? 아이의 문제라는 것은 대개는 어른의 문제다. 장작 놀이가 필요한 사람은 어른들이다.
아이들에게 가르치려고 배우는 놀이는 놀이로 포장된 또 다른 공부이기 쉽다. 나 스스로 즐기기 위한 놀이가 필요하다. 스스로 놀이를 즐길 줄 알아야 자본이 쳐 놓은 욕망의 그물, 불안의 덫에서 자유로워진다.
##텃밭에서 놀자
도시 텃밭은 꽉 짜인 도시의 작은 틈새다. 그 틈은 비록 작지만 거기서는 함께 놀면서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텃밭은 내일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이다.
제초제! 거저 얻을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을 이제 먹을 수 없게 되었다?!
잡초라 불리는 들나물은 대개 귀화힉물이라서 사람 손때를 타야 잘 자란다. 손대지 않고 내버려 두면 오히려 더 못 산다. 그 곳은 아마 숲이 되고 야생화가 들어와 살게 될 것이다. 이런 걸 ‘천이’라고 한다. 잡초를 없앨 수 있는 단 한 가지 방법이다.
멀티미디어 시대? 요즘 사람들은 지나치게 눈에 더 기대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놓치는 게 많다. 게다가 눈만 너무 믿다가 스스로한테 속게 되는 일도 생긴다. 눈은 부분적으로 감각인데, 그것에만 의지하니 그렇게 되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눈이 눌려 있던 다른 감각이 슬금슬금 깨어난다. 계절이 바뀌는 것은 눈보다 코가 먼저 알아낸다.
새를 쫓아다니다 보면 아파트에 둘러싸인 조그만 동네 숲도 참 깊다는 걸 느끼게 된다.
새 둥지는 뜻밖에도 우리 사는 아주 가까이에 있다. 우리는 ‘빨리빨리’를 외치며 허겁지겁 살아가다 보니 그걸 보지 못한다. 속도를 늦추기 전에는 결코 볼 수 없는 것이 어디 새 둥지뿐일까?
도시 텃밭은 꽉 짜인 도시의 작은 틈새다. 그 틈은 비록 작지만 거기서는 함께 놀면서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다. 텃밭은 내일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이다.
지금 퇴비 주는 때 아니야. 호박이 비실비실해도 내버려 둬. 스스로 살아나야 해.
봄 단풍? 나무의 새 순은 대개 처음 나올 때 약간 붉은색이나 갈색을 띈다.
길에서 만나는 풀들은 대개 귀화식물. 이런 풀들은 사람이 농사짓고, 집을 짓고, 길을 내기 위해 땅을 파헤친 것에 들어와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
##한여름 밤 숲 속 탐험
여름밤 숲 속은 또 다른 세상이다. 숲 속 벌레들은 또 다른 세상으로 데려가는 안내자다. 한여름에는 다들 먼 것으로 휴가를 떠나지만 자칫 소비만 하는 고생길이 되기도 한다. 여름밤 동네 숲으로 떠나는 탐험은 가깝지만 아주 멀고 색다른 여행이 될 수 있다. 그 여행은 돈이 들지 않지만 돈을 주고도 느낄 수 없는 것을 얻을 수 있다.
도롱뇽이 살고 있네? 개울 속 모래는 물속 생물이 살아가는 터전이구나. 그러니 강바닥 모래를 마구 파내는 것은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은 일인가. 강을 살리자고 하는 일이 오히려 강을 죽이는 꼴이 되겠구나.
개망초 꽃밭에서 벌레를 보려면 굳이 돌아다닐 필요가 없다. 그냥 한 자리에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게 좋다. 움직이지 않으면 숨어 있던 벌레들도 슬금슬금 다시 나타난다.
쓸모없는 잡초? 이런 잡초들은 쓸모없고 성가신 풀 같지만 벌레들한테는 밥이 되고, 집이 된다. 그래서 아파트 둘레에도 이런 벌레들이 찾아오는 거다.
“돌은 벌레들 집이야. 집을 뒤집어 놓으면 안 돼. 들춘 돌은 다시 바로 돌려놓아야 해.”
개울을 뚝딱뚝딱 도로 만들 듯이 만들려고 한다. 개울에 사는 벌레 한 마리 삶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니 포클레인으로 파내고 물만 흘리면 개울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숲도 만들고 겨울도 만들고 강도 만들고…, 자연을 사람이 만들 수 있다는 이런 거꾸로 뒤집어진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면 제2의 4대강, 제2의 청계천이 이름만 바뀔 뿐 계속될 것이다.
망토군락? 가시로 무장한 산딸기! 숲을 망토처럼 둘러싸서 ‘숲 속으로 비치는 센 햇살을 가려 주고, 센 바람을 막아준다. 그래서 숲 속은 항상 축축하고 서늘하다.’
산딸기를 동네 숲을 지키는 문지기 같은 나무다
“산딸기는 꼭 따 먹어야 하는 거야?”
“열매를 따 먹어야 여름을 제대로 느낄 수 있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끄럽게 울어대는 도시의 천덕꾸러기 매미들? 하지만 매미를 괴물로 만든 건 사람들이다! 대낮처럼 불을 밝혀 밤과 낮을 헛갈리게 한 것도 사람들이지 않은가.
##가을벌레 음악회
사람들은 계절을 느끼지 못할 만큼 바쁘게 살아간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개미처럼 말이다. 그런 삶에 베짱이가 낄 틈은 없다. 예술은 점점 멀어져만 간다. 예술이랑은 돈 벌어서 사면 된다. 삶과 멀어진 예술은 그저 상품으로 소비될 따름이다.
달라서 재미있다? 줄기의 생김새가 다르듯, 한 열매 안에 든 도꼬마리 씨앗이 다르듯, 다른 것(다양성)은 오랜 진화의 결과다. 그런데 왜 요즘 교육은 다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다 똑같이 만들려고 할까. 다름의 우열을 가리고 서열을 매겨서 줄을 세우려고 할까. 달라야 재미있는 걸 모르는 게야.
단풍은 엽록소를 비워 내니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단풍은 다 버린 것의 아름다움이다. 버릴수록 행복해지는 사람살이도 그렇지 않을까.
작은 것을 보려면 걸음을 멈추고 키를 낮추어야 한다.
먹고 살기 바쁜 세상에 작은 것을 들여다보려고 걸음을 멈추고 키를 낮출 짬이 없다. 들꽃을 보는 것은 멈추어 서는 것이고, 다르게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다른 세상을 꿈꾸고 다른 세상을 만들어가는 시작이 될 수 있다.
##꿈꾸는 겨울나무
겨울눈을 들여다본다. 눈비늘 조각에 싸인 겨울눈 안에서 봄에 자라날 새잎과 꽃, 새 가지가 잠자고 있다. 루페로 자세히 보면 겨울눈에 작은 알들이 붙어 있다. 새 봄에 벌레들을 알에서 깨어나 새 잎을 먹고 자랄 것이다. 새들은 가지 끝에 날아와 이 애벌레를 물어다 새끼를 키울 것이다. 나뭇가지 끝마다 수천수만 꿈들이 매달려 있다.
#우리 집엔 벌레 없다? 아이들은 벌레를 보면 쉽게 다른 세계로 빠진다. 작지만 바다처럼 넓고 거의 알려지지 않은 세계, 벌레들 세계로 말이다.
찾기는 했어도 무슨 벌레인지 아는 게 별로 없다? 어떤 생물학자는 우리는 달나라에 가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뒷마당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집 뒤뜰도 멀고 또 넓다. 우리는 작은 방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잘 알지 못한다. 좁은 장롱 밑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야기들이 감추어져 있다.
#꿈꾸는 겨울나무
겨울나무를 구별하려면 겨울을 나는 나무의 표정을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조안 말루프라는 생물학자는 자연은 여러 겹의 비밀 옷을 입고 있어서 들여다보면 볼수록 또 다른 세계가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거울은 또 다른 자연의 비밀 옷을 볼 수 있는 때다. 나무마다 껍질 생김이 달라 나무껍질을 보고도 나무를 구별할 수 있다.
#벌레들의 겨울나기
느티나무 줄기는 정말 겨울나기용 아파트다. 너덜너덜 붙어 있는 조각조각마다 벌레들이 들어가 겨울을 나고 있다.
서울의 아파트는 살기 위해 짓는 게 아니다. 팔기 위해 지어진다. 그걸 사는 것도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팔기 위해서다. 사고팔아서 돈을 불린다. 아파트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거품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러니 집은 빼곡히 들어차도 정작 마음 편히 살 집은 없다. 벌레들은 나무껍질 집으로 한겨울 추위를 거뜬히 견디어 낸다. 우리는 큰 집을 가지고도 벌레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작지만 따스한 눈 집 안에서 부끄러웠다.
#풀들의 겨울나기
아파트살이에서는 이웃을 갖기 어렵다? 아파트가 본디 그렇게 생겨 먹어서가 아니라 거기 사는 사람 문제일 게다. 서로 알음알음하면서 품앗이도 하고 산다면 삭막한 아파트도 오순도순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뀌지 않겠는가.
그렇게 밟아 대도 풀들은 죽지 않는다. 한겨울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길에서 밟히면서도 싱싱하게 자라는 풀들은 참 강인해 보인다.
다 무리지어 살아간다? 도시의 틈새, 계절의 틈새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는 풀들은 이렇게 한데 모여 힘든 삶을 견디어 낸다. 이게 작고 소박한 풀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우리는 어리석게도 풀들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를 점점 잊어가고 있다.
아빠, 꽃밭에 꽃이 없네?
“그럼! 아무리 보잘것없는 풀이라도 다 꽃이 피지. 모든 꽃은 다 아름다운 거야. 이제 곧 꽃이 마구 피어날 거야.”
봄이 코끝에 아른거린다.
“강우근은 내 오랜 친구다…그이의 삶은 자연 그 자체다…”-오성윤, [마당을 나온 암탉] 만화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