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여행 2. 김훈. p273
다시 자전거를 저어서 바람 속으로 나선다
몸속의 길과 세상의 길이 이어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몸은 풍경 속으로 퍼지고 풍경은 마음에 스민다
지나간 힘은 거둘 수 없고 닥쳐올 힘은 경험되지 않는데 지쳐서 주저앉은 허벅지에 새 힘은 가득하다. 기진한 힘 속에서 새 힘의 싹들이 돋아나오고, 나는 그 비밀을 누릴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다.
풍경은 바람과도 같다.
나는 몸과 마음과 풍경이 만나고 또 갈라서는 언저리에서 나의 모국어가 돋아나기를 바란다. 말들아, 풍경을 건너오는 새 떼처럼 내 가슴에 내려앉아다오. 거기서 날개 소리 퍼덕거리며 날아올라다오.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_조강에서
풍경은 사물로서 무의미하다. 그렇게 말하는 편이 덜 틀린다. 풍경은 인문이 아니라 자연이다. 풍경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풍경은 아름답거나 추악하지 않다.
무위자연의 ‘무위’는 그 바쁜 것들에 손댈 수 없고 거기에 개입할 수 없는 인간의 속수무책을 말하는 것으로, 나는 겨우 이해하고 있다.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공자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라고, 김소월이 그 단순성의 절창으로 노래할 때도, 그 노래는 말을 걸 수 없는 자연을 향해 기어이 말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로 나에게는 들린다.
풍경은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지만, 인간이 풍경을 향해 끝없이 말을 걸고 있다. 그러므로 풍경과 언어의 관계는 영원한 짝사랑이고, 언어의 사랑은 짝사랑에서 완성되는데 그렇게 완성된 사랑은 끝끝내 불완전한 사랑이다. 언어의 사랑은 불완전을 완성한다.
#빛의 무한공간_김포평야
48번 국도를 따라 김포를 건너는 자동차 안에서는 김포의 무한함을 느낄 수 없다
김포평야를 자전거로 달리는 느낌은 신기하다. 자전거의 진행은 넓은 공간 속으로 파묻혀버리고 시야에 걸리는 표적물이 거의 없어서 자전거를 탄 사람은 늘 제자리에 붙어 있는 느낌이다.
#고기 잡는 포구의 오래된 삶_김포 전류리 포구
좁은 어장의 물은 거칠어 어로는 힘겹고 어획은 영세하지만 고기 잡는 포구의 오래된 삶은 끈질기다
횟감의 으뜸은 한강 ‘웅어’
이 귀한 고기의 맛을 도시 사람들이 알 리 없어 포구에서 거래되는 웅어 값은 20마리 한 두름에 2만 원이다.
#10만 년 된 수평과 30년 된 수직 사이에서_고양 일산 신도시
10만 년의 세월이 흘러서 이제 천지개벽된 이 신도시에서는 진실이 아니라 기만의 장치가 인간을 보호하고 가정의 평화를 버티어준다.(창궐하는 러브호텔)
그 풍경 속에서 변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들 속을 날아간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들은 위태로워서 사소해 보이고, 마침내 변해야 하는 것들은 강력하고 완강해 보인다.
#남양만 갯벌
갯벌의 법률적 지위는 공유수면이다
갯벌은 막는 자의 것이다. 공유수면은 사유토지로 버뀌어간다. (서산간척지는 현대그룹, 인천 간척지는 동아그룹의 땅)
#멸절의 시공을 향해 흐르는 ‘갇힌 물’_남양만 장덕 수로
어민들은 포도 농사로 생업을 바꾸었으나 마른 갯벌을 쓸어오는 소금바람과 겨울철에 얼어붙는 담수호의 냉해로 시공회사 측과 분쟁이 일고 있다
배가 없어진 수로에는 윈드서핑을 하는 젊은이들의 돛단배가 모여들어 있다
삶의 방식과 기본구조 전체가 지속 불가능하고 회복 불가능한 방식으로 단절되었다. 오래된 마을들의 역사는 이제 0에서부터 새로 시작되고 있다.
#시원의 힘, 노동의 합창_선재도 갯벌
시화방조제 4차선 도로? 이 도로의 운전자들은 바다조차도 토목구조물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고, 가속기 페달을 세게 밟을수록 이 착각은 심화된다
초대형 교량들? 서해안의 대한민국은 토목국가다!
선재도 갯벌의 바지락잡이는 일차 산업 노동의 장관을 이룬다. 신석기의 조개무덤이남아 있는 그 갯벌에서 사람들은 아직도 똑같은 노동으로 바지락을 잡는다.
갯벌에는 시간이 쌓이지 않고 시간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갯벌이 주는 공간 정서는 비논리적이다. 언어를 설칠 만한 표적이 없고 논리를 비빌 언덕이 없다. 그리고 갯벌의 상태는 끝없이 질퍽거리고 뒤섞이는 불안정성이다. 이 불안정성이 갯벌의 안정성이다.
#시간이 기르는 밭_아직도 남아 있는 서해안의 염전
염전은 갯가의 평야다. 염전의 생산방식은 기다림과 졸여짐이다. 염전은 하늘과 태양과 바람과 바다에 모든 생산의 바탕을 내 맡긴 채 광활하고 아득하다. 염전은 속수무책의 평야인 것이다. 염전은 기다리는 들이다.
염부는 생명을 기르지 않지만, 시간은 염전의 생산을 길러준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염전은 수산업도 아니고 농업도 아니다. 염전은 산업자원부 산하에 등록되는 광업이다.(소금은 광물질!)
젓갈과 김치의 맛은 소금이 매개하는 시간의 맛이다
햇볕이 증발시킨 물기를 바람이 걷어가면서 소금은 엉긴다
#여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_경기만 등대를 찾아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간다. 엔진은 동력을 생산해내지만 이 동력이 방향성을 받지 못하면 동력은 눈먼 동력일 뿐, 추진력이 되지 못한다.
선박을 움직여 대양을 건너가는 항해사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목적지 항구에 닿을 수 있다.
방향의 운명은 상대적이다. 나의 위치는 나침판 바늘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위치를 외계와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 나는 동서남북의 절대적 방위를 알더라도 어느 쪽을 향해 몇 도의 각도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나는 너의 존재와 너의 위치에 의해서 나 자신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점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 있다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_광릉 숲에서
숲은 오랜 시간 속에서 저절로 모습을 바꾸며 완성된 생태계를 지향한다
서어나무 군락, 극상림, 가장 안정된 숲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았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준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살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_남한산성 기행
남한산성 서문의 치욕과 고통을 성찰하는 일은,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은 세상에서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이란 없는 모양이다.
그들은 포위된 성안에서 47일간 말로 싸웠다
죽을 길과 살길은 모두 성밖에 있다! 성안에는 죽을 길도 없고 살길도 없다!
이승훈의 최후? 순교와 배교? 그들의 죽음이란 순교와 배교가 겹쳐져 있다
다산의 치욕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권력화되지 않은 유통의 풍경_모란시장
유통의 권력은 제 1차 산업의 생산물에 대해서 더욱 지배적인데 농업과 어업에서 생산은 노동이고 유통은 권력이다
자본주의적 대량유통의 특징은 재화의 흐름을 관리하는 기능이 권력화되어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