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꽃피는 해안선_여수 돌산도 향일암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 지나오고 나도, 지나온 길들이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뻗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길은 처음부터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몸이 가벼워지면 길은 더 멀어 보인다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이것은 대책이 없는 생의 충동이다
#흙의 노래를 들어라_남해안 경작지
이 붉고 또 깊은 밭이 남도의 가장 대표적인 봄 풍광을 이룬다
이것은 물리 현상이 아니라 생명 현상이고, 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
#지옥 속의 낙원_식영정, 소쇄원, 면앙정
무등산은 삶 속의 산이다. 세상이 끝나는 곳에서 솟아오른 산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내려와 있는 산이다.
정자는 현실의 중압감이 빠져나간 자유의 공간이다
불우한 자들이 낙원을 만들고 모든 낙원은 지옥 속의 낙원이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나무는 인도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망월동의 봄_광주
삶은 소설이나 연극과는 많이 다르다. 삶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다.
“말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이 군대 전체와 국가 권력 전체를 증오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깨어진 구둣가게 꿈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 목발 때문에 나는 세상과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그런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만경강에서_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
‘소금이 온다’
소금은 모든 맛의 근원이다. 다른 모든 맛을 살아나게 한다. 짠맛은 바다의 것이고, 향기는 햇볕의 것이다.
햇볕과 바다의 정수가 소금 알 속에서 고려해야 한다
#도요새에 바친다_만경강 하구 갯벌
그들은 고향이 없으므로 타향이 없다
알에서 태어나 바람 속을 떠도는 그것들의 고난은 포유류에서 태어나 정주하는 땅에 결박되는 자들의 고난을 동료 중생의 이름으로 위로할 만하다
갈대는 빈약한 풀이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음을 간직한다. 그것들은 바람인 것처럼 바람에 포개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완강하게도 땅에 들러붙어 있다.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_안면도
이 세상의 어떠한 숲도 초라하지 않다.
숲의 힘은 오래된 것들을 새롭게 살려내는 것이어서, 숲 속에서 시간은 낡지 않고 시간은 병들지 않는다.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숲의 빛은 물러서듯이 멀어지고, 멀어지면서 또 깊어져서 사람들은 더 먼 빛 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간다.
숲은 의사도 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재활병원이고, 사람들은 이 병원의 영원한 환자인 셈이다.
봄의 산은 새롭고 또 날마다 더욱 새로워서, 지나간 시간의 산이 아니다.
휴일의 날이 저물고 사람들 틈에 섞여 산을 내려올 때, 성인은 벌써 산을 다 내려가서 마을에 계신다. 천하에 무릉도원은 없다.
#다시 숲에 대하여_전라남도 구례
“온 산에 새잎 돋는 사태 속에 깨달음이 있다. 이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알지만 거기에 가까이 갈 수는 없다. 이것도 분명하다.”
#찻잔 속의 낙원_화개면 쌍계사
차는 혼자서 마시는 차를 으뜸으로 여기고 여럿이 마시는 차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숲은 죽지 않는다_강원도 고성
사람이 공들이고 돈 들여서 한 일이 아니다. 숲은 저절로 인 것이다.
숲의 경제성? 숲은 재화를 공급하는 공장이 아니다. 숲의 경제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 맡겨라, 제발 내버려두라
#그리운 것들 쪽으로_선암사
선암사 화장실은 배설의 낙원이다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_도산서원과 안동 하회마을
개항 이래 이 나라에 건설된 주택과 빌딩과 마을과 도시들은 모두 자연과 인간을 배반했고, 전통적 가치의 고귀함을 굴착기로 퍼다 버렸으며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에 강제수용되어 있다는 탄식이 그 무성한 논의의 요점인 듯하다.
아파트는 평면의 누적일 뿐이다. 공간의 의미를 모두 박탈당한 이 밋밋한 평면 위에 누워서 안동 하회 마을이나 예안면 낮은 자락의 오래된 살림집을 생각하는 일은 즐겁고 또 서글프다.
안동 하회 마을이나 예안면의 옛집들을 기웃거릴 때, 오늘의 빈곤은 가슴아프다.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_경주 감포
#복된 마을의 매맞는 소_소백산 의풍 마을
이제 가든과 파크와 기지국은 이 국토의 가장 압도적인 풍경이다
‘정감록’에 따르면 환란은 세상으로부터 온다. 자연과 인간의 직접성을 훼손하는 모든 인위적 장치와 제도가 재앙이며 환란
#고해 속의 무한강산_부석사
농부를 붙잡고 물어보니, 고추값이 맞지 않고 품삯을 댈길이 없어 거두지 못하던 차에 서리가 내렸다는 것이다.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에게 기운내라고 말하는 것이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_영일만
회를 먹을 때 피해야 할 두 가지? 양식된 생선과 냉동된 고기
어부들은 비싼 값을 치르면 양식되고 냉동된 광어나 우럭을 먹지 말고 도다리를 먹으라고 권한다. 도다리는 양식으로 키울 수 없다.
오징어를 고를 때는 면적이 넓은 것을 피해야 한다(냉동 오징어는 밑으로 늘어나서 면적이 커진다)
#원형의 섬_진도 소포리
1973년 이 마을 앞바다는 방조제로 막혔다. 농토가 늘어나 주민들의 삶은 소금을 구워서 먹고 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넉넉해졌다. 그러나 왠지 노래의 신명은 빠지는 듯했다.
농지가 정리되고 농로가 직선으로 버뀌었고 모내기와 추수 작업은 기계화되었다. 노동의 구체적 동작과 결합되어 있던 들노래의 리듬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인간과 노동과 노래가 뿔뿔이 흩어져버린 것이다.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컬에 대하여
이 아수라 속에서 살길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싸우다 죽든지, 달아나다 죽든지, 군율에 죽든지 죽음의 방식만이 선택의 길이다. 명량은 적에게나 아군에게나 사지이다.
‘의도된 전사’, ‘위장된 자살’? 그에게는 전후의 권력 재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적 여백이 없었다. 역사는 모순이며 비애이다.
#길들의 표정_덕산재에서 물한리까지
자동차 운전? 그에게 길이란 생략되거나 단축되거나 잘하거라 할 대상인 것이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산간 마을 사람들_도마령 조동 마을
“개를 때리면, 때려도 말 안 듣는 개가 된다. 개의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문경새재는 몇 굽이냐_하늘재,지름재,조소령,문경새재
#가마 속의 고요한 불_관음리에서
가마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몽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때 한국에서는 사기 가마터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고바야시는 지금 일본 도예계의 대가가 되어 있다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_양양 산림원지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짊어지고 바퀴를 굴려 오르막을 오른다.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_태백산맥 미천골
눈뜬 사람들은 자꾸 떠났다. 팔 땅이 없는 사람은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상인들이 값을 제대로 쳐줄지 모르겠다고 그는 걱정했다. “작물을 보고 농사를 지어야 할 텐데 상인들을 보고 농사를 짓는 판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면옥치는 산맥 속에 박힌 별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꺼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노령산맥 속의 IMF_섬진강 상류의 여우치 마을
삶이 다 망가진 사람들은 산골 마을의 고향을 떠났고, 아주 할 수 없이 더 망가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은행처럼 무서운 건 없다”
고향에 돌아온 후 그의 모든 삶은 연체에 연체가 자꾸 쌓여가는 은행 이자와의 싸움이다.
밥으로 바뀌어서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몽땅 이자로 은행에 들어간다. 이것이 금융 거래의 기본 질서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기에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고향은 아직도 그리던 고향이 아닌 것만 같았다…그리던 고향이 아닌 고향도 그리던 고향일 터이다.
#시간과 강물_섬진강 덕치 마을
1년에 콩 열가섯 말을 거두는데 그 중 한 말은 땅주인에게 준다. 올해 조선콩 한 말 값은 2만원이었다.
#꽃피는 아이들_마암분교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흙향기도 난다. 아이들은 햇볕 속에서 놀고 햇볕 속에서 자란다.
아 아이들은 억지로 키우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저절로 큰다.
아이들은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삶으로부터 직접 배운다
삶의 질서는 이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럽다. 저절로 되어지는 속에서 아이들은 배운다. 가르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어가면서 배운다. 삶이 곧 교육이 되는 학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진리는 공부가 파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나르는 돼지밥통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說)과 학(學)으로 새우곤 하는 그의 사유와 언어는 생태학과 지리학과 역사학과 인류학과 종교학을 종(縱)하고 횡(橫)한다. 가히 엄결하고 섬세한 인문주의의 정수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