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

“이성적인 사람은 자신을 세상에 적응시킨다. 하지만 비이성적인 사람은 고집스럽게 세상을 자신한테 적응시키려 한다. 그래서 모든 진보는 비이성적인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 조지 버나드 쇼

사회적 기업
대부분의 사회적 기업가들은 비이성적이다. 가족이나 친구한테도 ‘미쳤다’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바로 이런 ‘미친’ 사람들의 힘이다. 바로 ‘세상을 바꾼 비이성적인 사람들의 힘‘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이성적 존재이자 제한된 합리성과 자기중심적 사고의 존재이다. 인간세상은 불완전한 이성과 합리성의 세계다. 진정한 사업은 착취나 강제가 아닌 자발적 협력에 기초해야 한다. 성공적 사업은 투자가, 노동자, 경영자, 공급자 모두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에 협력해야하고 승자와 패자의 제로섬 게임아닌 윈윈게임이어야 한다. 오로지 주주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사업으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다. 시장 참여자 ‘모두’를 위한 가치 창조에 목표를 두는 ‘사회적 사업’은 지속가능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라크 침공이 아니라 미국인에게 유류세를 부과할 용기가 있는’ 미래를 감당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진실은..."

새로운 세상 이야기
때론 진실이 미친소리처럼 들리지만, 기존의 통념을 벗기고 들여다보면 새로운 세상이 보인다. ‘미친’ 사람들은 바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새로운 세상을 향해 열광적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다. 누구나 선택의 기회는 주어진다. 다만 어떤 삶을 선택하냐에 따라 자신의 세상이 달라질 뿐이다. ‘지혜로운 자의 총명함보다 어리석은 자의 우직함이 세상을 바꾼다‘는 진실을 들려준다.

‘확산할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 바로 사회적 기업의 가치! RT @nwijo .. 올해 TED콘퍼런스에서 제이미가 ‘세상을 바꾸는 데 공헌한 이’를 수상했네요 http://bit.ly/91PbMy 셰~프, 소셜벤처 어때요?

부의 기원 | 현실경제학

부의 기원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은 부를 얻는 것이다. 그런데 부란 무엇이고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답은 지식과 진화이다. 부의 기원은 지식이다. 진화는 지식을 창출하는 기계, 학습 알고리즘이다. [부의 기원] 은 이런 선문답같은 질문을 통해 경제학에 대한 현실적 대안을 들려주고 있다. 기존 경제학의 한계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보다 현실을 다룰 수 있는 현실경제학의 대안으로서 생물학적 경제학이라 할 수 있는 ‘복합계 경제학’의 이야기이다.

경제는 진화한다
생물학적 시스템과 경제학적 시스템은 놀라우리 만큼 비슷한 면이 있다. 통제자가 없지만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역동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스스로 진화한다. 지휘자는 없지만 저절로 지휘가 되는 오케스트라다. 살아있는 인간의 활동이기에 당연하다 할 수 있다. 경제시스템은 인간의 물리적, 사회적 기술의 진화와 시장을 통해 함께 진화해오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경제시스템은 항상 움직일 뿐이다.

전통경제학 | 균형의 세계
전통경제학은 교과서 개념과 완전합리성 가정을 바탕으로 한 이론들의 집합으로 이상적인 균형의 세계만이 존재한다. 하지만 현실는 불균형의 세계들이다. 단지 균형을 향해 항상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여기저기 마음대로 지형지물을 옮겨놓은 잘못된 지도나 마찬가지다. 축소나 생략의 과학이 아닌 비과학의 학문이란 비판의 근거이다. 현실경제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서 엄청난 과학적 지식을 동원하면서 정작 현실에 맞지 않은 가정들을 당연시 해 왔던 것이다.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으면 당신들은 잘못된 문제를 풀고 있는 것이다.

복합계 경제학
경제활동은 중요한 특징은 비가역성이다. 이는 위험부담으로 나타난다. 실패는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그래서 미래예측이 중요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현실경제는 비선형적인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기다려서 확인하는 것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기술의 발전으로 ‘슈거스케이프’실험 같은 시뮬레이션 기법들이 활용될 수 있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모델 시뮬레이션으로도 예측할 수 없지만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물학적 진화시스템이나 다를 바 없다.

진화는 예측, 계획, 합리성, 의도가 없다. 단지 움직일 뿐이다.

현실 경제
경제는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고 세계화를 통한 신자유주의의 흐름속에서 ‘공정한 이기심’에 의존하여 방치하는 것은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특히 진화보단 인간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진보’할 수 있도록 국가적 개입에 대한 필요성은 많은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또한 경제활동의 최상의 주체라 할 수 있는 기업의 최고 경영자의 목표는 ‘생존과 성장’이란 진화의 핵심에 맞추어야 한다. 생물학적 관점에서도 당연한 얘기다. 주주 자본주의를 통해 경영의 본연의 목표에서 벗어나 주주 이익의 실현을 위한 ‘주가 관리’에 매달리게 만들고 있는 현실적 경제상황에서 깊이 되새겨야 할 점이기도 하다.

진화는 당신보다 더 똑똑하다.

진화는 함께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 간의 연대일 뿐 아니라 산 사람과 죽은 사람,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 간의 연대’라고 한 에드먼드 버크의 사회에 대한 정의가 시사하는 것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더불어 사는 세상이 인간사회이다. 부의 가치는 지속가능한 공생, 즉 상생속에서 유지될 수 있다. 진화에서는 개체수의 감소는 도태로 이어진다. 생존을 위한 개체수의 유지나 증가가 필요하다. 진화는 함께 하는 것이다.

진화는 질서가 창조되는 과정이며 부는 적합한 질서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 비자유주의

쾌도난마(快刀亂麻)
뒤얽힌 실뭉치를 한올한올 풀려하지 말고 싹둑 잘라버리듯이 어지러운 일을 시원스럽게 처리한다는 고사성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 가 한국경제의 얽힌 실뭉치를 싹뚝 잘라 시원스럽게 파헤져주는 이야기에 절로 귀가 솔깃해진다. 오히려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듣는 편이 듣기도 수월하다. 좌담을 책으로 옮겨 놓았지만 말과 글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시원스런 말글이다.

자유주의의 맹신
지금은 자유주의 전성기이다. 좌파,우파,보수,진보 가릴 것 없이 주창하는 것이 자유주의다. 부지불식간에 ‘자유 민주주의’란게 당연히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엄연한 모순이 있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서로 공존할 수 없는 개념이다. ‘1인1표’와 ‘1원1표(dollar voting)‘는 전혀 다른 방식이다. 과거 독재정권의 반민주시대의 깊은 상처로 인해 생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혼동인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
신자유주의는 금융자본을 위한 자본주의이다. 성장을 위한 신자유주의의 효과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저성장,저투자,고용불안으로 나타난다. 오히려 거꾸로 간다. 돈놀이 판에선 돈이 최고다. 경제개혁을 통해 실현되고 있는 주주 자본주의는 주주의 이익 실현이 최우선 과제이고, 경영자는 장기적 성장보단 단기적 주주이익에 급급하게 되고, 결국 자본종속으로 귀결된다. 주인의 충실한 하인 노릇을 할 수 밖에 없단 얘기다. 차관은 빚일뿐이지만 자본에 의해 기업의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생기는 불가피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역사의 교훈
상처 깊은 과거로 인해 단절되어 버린 과거를 냉철하게 되짚어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거울을 삼아 마땅하다. 과거 박정희 군사정권 독재와 억압속에서도 기적같은 성장을 이루어낸 비결은 ‘비자유주의‘에 있단 역사적 사실을 직시해야 함을 이야기 해준다. 자본에 종속되지 않고 굳굳하게 버틸 수 있었기에 성장이 가능했단 얘기다. 허나 민주화와 함께 자유주의로 전환에서 오히려 자본에 종속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올바른 역사란 단순히 역사적 기록만으론 불가하다. 올바른 역사적 시각이 함께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려주는 대화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손
모든 화살이 눈에 보이는 재벌로 집중되고 있지만 정작 경계해야할 대상은 ‘보이지 않는 손’이랄 수 있는 자본이다. 실체가 모호하기에 교묘히 파고들어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투명인간이 제일 먼저 경계해야할 대상이다. 자본은 재벌,기업,노조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니다. 자본을 위한 자본이다. 자유주의를 통해 합리적 이기심을 발현하고 있는 실세임이 너무도 자명해서 잊고 사는 아이러니인지도 모른다.

상생의 비제로섬 게임
투자와 투기의 차이는? 장기적이냐 단기적이냐하는 시간적 기준도 있겠지만, 비제로섬(non-zerosum) vs 제로섬 게임의 차이라 할 수 있다. 투기는 얻는자가 있으면 잃는자가 있는 제로섬 게임이다. 이에 반해 투자는 윈윈이 가능한 비제로섬 게임이다. ‘죄수의 딜레마‘에서처럼 서로 협력을 바탕으로 이익이 되는 상황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투자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기가 아닌 투자다. 투기를 위한 정책이 아닌 투자를 위한 정책이 필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