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 오불여노농吾不如老農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이병철. p274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삶의 주체요 근본인 내 생명의 절대적 조건이 무엇인가.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등 그 무엇도 생명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 오직 자연과 음식만이 내 생명을 살리고 유지하게 한다. 내 생명에 절대적 조건인 음식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농자천하지대본을 아는가?
만일 근본을 모르고 있다면 그 지식은 쓰레기 지식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을 믿는가?
근본을 믿고 있지 않다면 그 믿음은 버려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의 길을 가고 있는가?
만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을 꿈꾸고 있는가?
만일 다른 꿈을 꾸고 있다면 하루 빨리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생을 헛살고 있는 것이니 더 늦기 전에 참된 삶을 모색함이 옳다.

천하의 근본을 모르고 함부로 하는 것은 마치 첫 단추를 잘못 꽨 상태에서 다음 단추를 계속 꿰는 것과 같다. 근본을 망각하는 한 우리가 하고 있는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그 모든 것들이 자기 생명을 파멸의 함정으로 몰아넣는 자기모순에 빠져 들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현대 문명의 모순과 위험을 통찰하는 눈 밝은 사람의 절절한 호소에 귀 기울일 일이다. 생명의 근본, 삶의 근본을 응시하는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의 지극한 기도에 함께 할 일이다. 근본 원칙을 붙잡고, 황소처럼 우직하게 걸어가는 용감한 사람의 사무친 절규에 겸손할 일이다.-도법스님 추천글

#숲안마을 가는 길-귀농을 꿈꾸는 당신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귀농이란 단지 농촌으로 돌아감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땅과 가까운 삶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더 올바른 뜻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달리 말하면 귀농이란 단순한 직업의 전환이 아니라 삶의 전환이라는 것이지요. 뿌리 뽑힌 삶에서 뿌리내리는 삶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삶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상생 순환의 삶으로,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삶에서 생산적이고 살리는 삶으로, 의존적인 삶에서 자립적인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귀농은 귀본이요, 귀일입니다.

#다시 단순 소박한 삶의 회복을 위하여
이 시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귀농을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직업의 전환으로서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되는 삶 자체를 중심 가치로 삼는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이라고 정의한다 하더라도, 농촌 농업이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현실 앞에서 생태적 삶을 실현한다는 것이 더욱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의 무게 때문에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귀농 식구들도 적지 않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귀농하고자 하는, 또는 귀농하면서 추구했던 그 목적과 이유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앞이 막혀 나가기 힘들 때 다시 처음을 생각해 보는 것은 다시 일어서는 데 힘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왜 귀농인가?’를 다시 물어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지금 그렇게 살아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지금 그 일을 하라.”(일과 삶을 일치시키는 길)

자발적 가난?(Simple Living의 번역?)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없는 더 소중한 가치에 대한 자각없이는 이러한 삶의 전환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가난하다고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물질 그 자체의 궁핍 때문이라기보다는 돈에 의지하여 사서 쓰다 버리는 소비에 길들여진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비 중독 바이러스?

인류의 역사상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이 시대에 우리 사회는 탐욕에 감염되고 있다. 인간은 더 많이,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을 살 수 있는 가능성에 모두 넋을 빼앗겼다. 전 세계가 지금 소비 중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 속에서 이제 인간마저 소비되고 있다.

우리의 필요를 진정한 쓸모에 바탕을 둔다면 그렇게 많이 소유할 필요가 없고 물질적 궁핍 때문에 고통 받지 않아도 됩니다.
소비 중독증에서 벗어난 삶의 건강성을 일구기 위한 질문!!

“그 물건이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당신이 직접 만들어 쓸 수는 없는가?”
“다른 사람의 것을 함께 이용할 수는 없는가?”

“더 많이 소유하는 삶 대신 더 많이 존재하는 삶”-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단순한 삶, 풍요로운 존재)

#정성으로 땅을 살리며 삶을 가꾸기
정성을 다한다? 몸과 마을을 오롯이 한 곳에 모으는 것(일하는 것이 곧 기도하는 것)
우리가 농사를 지어 생산한 농작물은 그 자체로 우리 인격의 반영이다!
가꾸는 삶 vs 꾸미는 삶
가꾼다? 본 모습을 잘 보이게 한다. 장식은 제거한다. (뺄셈의 생활방식)
꾸민다? 장식을 더한다. 본 모습을 감춘다 (덧셈의 생활방식)

생태농업의 핵심은 땅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인류는 원자폭탄의 발명 이래 무서운 공포에 시달려 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또 다른 현상은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생존을 의지하고 있는 대지를 고갈시켜 황폐화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재난의 의미를 천재지변이나 전쟁의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영국토양학회의 경고

대지에 일어난 일은 대지의 자식에게도 일어난다-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연설

농부는 땅을 지키고 돌보며 그 속에서 생명을 기르고 가꾸는 사람입니다.

생태적 뒷간? 대지의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대지에서 밥을 얻었다면 그 밥을 먹고 만든 똥을 다시 대지의 밥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대지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제 길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 한 길뿐임이 분명해졌습니다.

#꽃이 피고 들이 푸르러지는 것 또한 사랑입니다
농사란 결코 혼자서 지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품앗이나 두레 등으로 여럿이 함께 일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부부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여럿이 함께 먹고, 함께 어울리고,..)

봄입니다. 저 불임의 도시, 시멘트 숲에야 제대로 봄이 오기 어렵겠지만 이곳 대지에는 벌써 봄이 한창입니다.

사뭇한 그리움, 간절한 기다림,…사랑!!

#다시 바른 농업으로 돌아가기
온난화, 기상이변? 새삼 절기를 잃어버린 것이 문제하기보다는 절기를 그렇게 변하게 만드는 우리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농업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은 본질에서 벗어난 데 있다!
수출 위주의 근대화 정책 등으로 이 땅의 농촌, 농업을 구조적으로 소외시키고 희생시켜 온 정치경제적 원인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바른 농업이란?
1)자기 실현-농산물 자체가 곧 자기 자신의 인격의 표현
2)생태적-”병든 몸을 치유하기 전에 먼저 병든 땅을 치유하라”
3)소비자, 뭇 생명과 함께하는 공생농
“나락 한 알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 있다” 농업이란 본래 농사짓는 사람뿐 아니라 온 우주, 곧 천지 대자연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밥이 하늘이다”)

상품화? 소비자와 생산자의 철저한 분리
소비자와 함께하는 농사, 생명 연대를 이루는 공생농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의 지저귐을 들어 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잃어버릴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라.”-헬렌 켈러

#마음으로 짓는 농사
귀농학교? 귀농은 이 시대의 구원의 길, 새로운 공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풍요로움!
작물을 기르는 농사의 마음?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신과학이 규명한 중요한 성과입니다

계절의 환희를 느끼지 못하는 생태맹!

그것이 옳은 일일수록, 그것을 원하는 것일수록 자연스럽게 해 나가는 것이 오래가고 바르게 가는 바탕이라는 생각이지요. 요컨대 우리가 ‘단순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옳은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사는 삶 자체가 즐겁고 편하기 때문이라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知者)

#조화로운 삶의 단순성
철 모르면 농사 자체를 놓쳐버린다
제대로 된 농사꾼은 ‘도에 가까운 사람’? 천지 운행에 조화로운 삶을 산다

‘살아 있는 밥상’의 기준은 땅과 얼마만큼 가까운가에 두어야 한다(땅과의 연결! 발을 땅에, 살아있는 흙에 닫지 않고서는 살아 있는 밥상을 마련하기안 불가능하다? 삶의 뿌리를 땅에 둔 밥상!)

내 작은 텃밭? 땅을 가꾸는 것은 밥상을 가꾸는 것이고 내 존재를 가꾸는 일임을 다시 새깁니다.
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장만하고 나누는 일?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걷는 것과 더불어 내면의 평화를 일구는 좋은 수행이라는 걸 뒤늦게 공감하면서 갖게 된 꿈입니다.

문명 속 생태맹? 이제 세 살인 저 아이도 식물을 구별하기 시작하는데, 지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른들 대부분이 작물과 들풀을 구별할 줄 모릅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지식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면 씁쓰레한 기분을 좀체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야성의 회복을 위하여
문제는 잡초의 강한 생명력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기르고 있는 작물의 야성, 본래의 자연스러운 생명의 힘을 잃어버린 것에 있다
인류 문명의 야만성은 야성의 건강한 회복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곧 야성을 회복하는 길, 자연성의 회복)

문명이란 문화란 이름으로 자연과 철저히 분리시켜 온 것입니다

#걸으면서 만나는 삶을 위하여
세계화의 대안? 지역적 자립? 마을 단위의 자립적 경제 회복
인도 비노바 바베의 토지 헌납 운동(부단 운동)

생태맹의 극복이란 농심의 회복에 있습니다
흙에 뿌리박기란 토착민으로 살기와 같은 말입니다. 이 시대의 불행, 이 문명의 한계는 초청장을 없애 버린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건강한 삶의 토대는 단순하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며 먹을거리를 유기농으로 손수 길러 먹는 곳만로도 충분하다.”-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농업에 있어서 대형 농기계의 사용은 한마디로 대지의 질서를 거스르는 방법으로 자연의 생태 순환 시스템의 파괴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농가 부채의 대부분도 대형 농기계 때문!)

먹을거리는 상품이 아니라 생명이며, 생산과 소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통일된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직거래, 서로 얼굴을 알고 거래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의 협동조합

단순한 삶?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삶

#농사법에 대하여
자연에 의지한다는 것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도를 믿고 이에 따르는 것이며 변화를 알고 함께 변화해 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무위농법,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사람인 농부가 곧 도인!)

#우리 쌀 지키기와 뿌리내리기
‘쌀은 생명이다’! 쌀은 국민 모두의 생명이다. 이 절박한 문제가 단순히 농민들의 경제적 이해 문제로만 여겨지는 것 같아 더 안타깝습니다.

#문명의 전환과 깨달음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다 같이 ‘모자람’에서 나왔다. 모자라니까 더 생산하자거나, 모자랄수록 나누어 먹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에서 두 체제가 나누어진 것이다. 이제 그 ‘모자람’이라는 전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체제 둘 다 무너지는 중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풍요를 너머 과잉의 시대, 죽음에 이르는 성장이 된 과잉생산 체제!)

새로운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깨달음이란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일원론으로의 귀의!

복귀기근(復歸其根)-노자 16장,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삶의 회복

웰빙? 참살이! 삶의 자연성 회복, 삶의 뿌리 회복

#오래된 미래를 다녀와서
“당신이 깍으려고 하는 그 금액이 당신에게는 푼돈에 불과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샹계가 좌우되는 매우 큰돈이다.”

#감사하는 삶의 풍요로움
우리가 감사할 때 비로소 참다운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감사함이 있을 때 풍요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감사는 행복과 풍요의 원천)

행복한 삶의 세 가지 요소? 단순한 삶, 자연과의 교감, 자립적인 삶

#귀농, 그 하나로 돌아가기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란 결국 철을 알고 제때 그 철에 맞추어 사는 것이겠지요.

#비움으로써 채우는 풍요로움
창자를 비우면 육신이 가벼워지고 몸이 가벼워지면 마음이 절로 맑아집니다(비움으로 태우는 새로운 충만!)

“21세기는 생태주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영국의 생태학자 조너선 포릿의 지적은 이에 대한 적절한 경구입니다.

귀농은 고행하는 삶의 선택이거나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단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외는 정반대로, 해방된 자로서 세계의 해방을 위한 적극적인 삶의 결단으로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다.(스스로 자립 실천)

#우리 몸의 회복
아는 것처럼 식사란 잔치며 동시에 공양입니다… 소박하지만 제철, 살아 있는 땅에서 거둔 생명이 충실한 밥상을 마련하여 자신에게 올리는 일이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는 생태적 삶의 첫번째 조건입니다.

“활력과 건강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토양인데, 인간은 증가하는 인구수에 맞추어 식량을 생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러는 와중에서 자신의 육체가 흙에서 온 것임을 잊어버렸다.”-앙드레 부아젱

식물과 동물의 질병을 없애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은 바로 토지를 비옥하게 가꾸는 것임을 믿었던 앨버트 하워드

우리가 직면한 토양의 위기의 성격? 그것은 한마디로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유명한 연설처럼, 대지에서 일어난 일은 대지의 자식에게도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농부야말로 ‘아끼는 사람’? 이 아낀다는 의미가, 버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

오불여노농吾不如老農,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한다.
분수를 아는 명언?!
이 분들이 떠나시면 흙과 함께 일구어 오던 문화, 자연을 공경하고 삼가던 그 농심의 문화가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라 생각됩니다

농사일이란 가장 바탕이 되는 일이라 마치 물처럼 공기처럼 오히려 그 중요성을 잊은 채 세상에서 흔히 맨 밑바닥 같은 처우를 받는 동시에 그것 없이는 세상 사람들이 한시도 살 수 없는 근본인 까닭에 가장 으뜸가는 일일 수밖에 없음을 생각합니다.

#생명 운동으로서의 귀농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
생명 운동의 실천 원칙은 자연의 법도인 상생 순환의 원리에 따르면서 섬김과 삼감, 보살핌과 아낌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 행복한 농부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이영문. p247
건강한 자연과 땅에서 일군 지혜

무릇 쌀농사란 봄에 물을 가득 대서 논을 깊이 갈아 써레질을 한 후 잘 키운 모를 내다 심는 것이 그 순서가 아닌가. 그런데 마른논에 무경운 직파라니? 결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문제는 땅이다. 땅심이다.
건강한 흙! 무경운 직파 농법으로 농약과 비료가 전혀 없는 농사가 가능했다!

1992년 태평농법과 직파기계까지 발명

오랫동안 믿어온 농사의 기본? 땅을 갈아엎어야 한다(경자유전,주경야독? 잘못된 ‘경’)
태평농법의 핵심? 무경운 직파, 땅을 갈지 않고 직접 씨를 뿌린다!

태평농법의 원리? 의외로 간단하다!
일반농법: 볍씨 소독, 싹을 먼저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뿌리가 약한 모를 위한 로타리 작업
싹보다 먼저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볍씨, 벼의 영양분은 땅속의 미생물에게 맡겨둔다
완벽에 가까운 생태환경이 벼를 자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놈’,'정신 나간 놈’,'원래 게으른 놈’, ‘그런데 정말 그게 가능해?’

자신들이 믿어온 농법이 하루 아침에 부정을 당하는데 가만 있을 농업학자나 농업 전문가가 어디 있겠는가? 농약 회사나 농기계 회사 역시 이영문의 태평농법에 마음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의 논은 스스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벼를 길러낸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비료와 농약으로 땅을 못 살게 굴고 고문하는 농법을 고집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땅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비료로 땅을 비만하게 하고 농약으로 그 땅의 생명력을 죽여가는 농법은 지양해야 한다.

“왜 보리를 안 심으셨습니까?”
“…”

아버지는 선뜻 대답을 않는다. 아직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아들이 만든 프로그램(KBS환경스페셜 다큐멘터리)을 보았지만 그것은 아들의 일, 당신의 농법이 아니지 않은가.

현행농법과는 반대의 길(거꾸로 희망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확신한다. 그 동안 나는 비록 대다수 인간의 지식에 등을 돌리며 걸었지만 결국 그 길은 자연과 한발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화학농법으로 피폐해진 땅을 살리고 그 땅을 볍씨, 거미, 미꾸라지, 잠자리, 그리고 진드기와 벼멸구까지 함께 어울려 사는 곳으로 가꾸는 동안 나의 시야는 어느새 농사라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차츰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했다…그리고 마침내 자연이라는 커다란 화두가 온 마음으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가 떠나왔던 그 본래의 모습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원인은 단 하나? 만물의 영장,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 여겨온 까닭!

다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서 살기 위한 동물로서 인간은 너무나 퇴화되어 온 것이다.

[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
태생적으로 부실한 먹거리? 인간 때문에 아픈 자연, 아프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나오는 곡식도 건강하지 못하다

#게으른 농부, 부지런한 자연
일어나자마자 가는 논? 논 식구들 구경하는 재미!
제아무리 해충이 많다고 해도 익충이 그보다 많아지면 힘쓸 도리가 없다…그게 모두 내 농에 살림을 차리고 들어앉은 여러 곤충 농사꾼들 덕분이었다.

진딧물 집합소? 천덕꾸러기 무궁화? 한 몫 하는 훌륭한 농사꾼! 천적의 먹이 제공, 살충제 없이 해충 없애는 방법(논가에 무궁화를 심어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겨울에도 땅밑 세상은 활발히 살아 움직인다
농약과 비료시장 무기를 미련없이 버리고,나를 대신하여 논을 갈고 작물을 가꿔주는 고마운 일꾼, 능력있는 농사꾼을 얻었다!

##자연 이야기
#오 이쁜 청개구리
파충류 학자도 모르는 청개구리의 샹태 특성
#날짜 속에 숨은 비밀
맨날 하는 일이 똑같아서 어제와 내일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 농부들에게도 기록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레코드텔링)
나의 취미는 관찰이니 그저 관찰이나 할밖에(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면 알게 된다)
자연농법? 자연을 보라, 자연이 스승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세상을 이룬다
만물의 영장? 말초!
나무의 중심은 뿌리? 그 중심도 잎이라는 말초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나뭇잎에 목초액 살포? 사람 몸에 유성 페인트 칠하는 꼴!
#어머니와 박속 이야기
나이든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병? 돌림병처럼 흔해진 병? 골다공증
칼슘이라는 낯선 처방제 대신 박을 심자
화학적인 방법으로 재배하는 작물로는 몸에서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굴뚝 연기 속에 과학이 있다
굴뚝 없는 제주 민속촌? 옛 것의 지혜!
아궁이 불, 원적외선 여성병 예방
연기, 천연소독제
꽉막힌 실험실? 그보다는 자연의 이치와 흐름을 깨닫고 적절하게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 농사꾼이다!
자연만 잘 관찰하면 태평농법보다 훨씬 더 태평스럽고 상징적인 농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옛 사람의 지혜를 배우다
불에 달군 무쇠솟과 냄비 국수의 맛의 차이
요즘 사람들은 전체적인 조화를 따지기보다 하나하나 분석하는 데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옛날 숯과 공장생산 숯의 차이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에는 관심이 없고 엉뚱하게도 형태에만 집착하는 꼴이다

선조들이 행한 모든 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똑같은 것은 싫다
무조건 남향집이 좋다? 획일적 사고
획일적인 교육
물은 절대로 직선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자연에 직선은 없다, 곡선의 건축가,훈데르트 바서)
자연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듯이 우리 아이들은 획일적인 구조에 끌려다니지 않을 권리가 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농촌 만들기
농약 탓도 있지만 냇물이나 환경이 탁해진 것은 생활양식이 바뀐 탓이 크다(환경에 대한 인식도 부족)
진정한 정화는 하수가 다시 깨끗한 식수로 바뀔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실제로 흙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정화조 역할을 한다(밭일 흙속에 똥)

#자연과 기계가 함께 여는 미래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는 견고한 기계

우리는 앞으로도 살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땅을 살려야 하고, 환경을 살려야 하고, 올바른 생각을 살려야 한다. 그와 함께 기계도 살려야 한다.

##흙 이야기
#자연, 최고의 항생제
상처에 바른 논흙? 세균에 감염되어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살아서 활동하는 자연에는 질병이 없다(자연 안에 항생제가 이미 다 있다)
그런데 인간은 갈수록 자연과 동떨어진 곳에서 헤매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멀리서 찾지 말고 우리 주변의 자연으로 눈을 돌리자
지금은 병원을 찾아다니고 항생제를 맞을 때가 아니라 자연으로 눈을 돌릴 때이다.

#흙은 말기 암에 시달린다
사람이 먹는 식물을 길러내는 땅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대표적인 것이 비료와 농약이다.
화학비료가 들어간 물은 산소가 없어진다
부실해진 토양에서는 전에 없이 병충해 피해도 많아졌다.
비닐 하우스를 이용한 ‘청정농법’? 땅에 가하는 잔인한 스트레스!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주지 않고, 기계로 논을 갈지도 않은 태평한 농법을 썼더니 없어졌던 산소가 풍부하게 돌아왔다.

#썩은 동아줄을 잡은 농촌
나라에서 공짜로 쳐주는 항공방제? 물어보나마나 그건 오로지 농약 제조업체를 위한 일이다(보조금의 진실)
도움을 주는 쪽은 농민이 아니라 농약회사
‘과학농법’이 들어오면서 농민은 썩은 동아줄을 쥐었는 데 반해 농약회사는 튼튼한 동아줄 하나를 붙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전에 필요없던 비료값, 비싼 기계를 사다 써야 농사가 더 잘 되는 것처럼 믿게 만드는 교묘한 상술 때문에 가뜩이나 아픈 허리가 꺽일 지경이다.
지속성 살충제는 해충보다 익충을 먼저 죽인다
씨앗 소독? 아예 종자를 물에 담글 때부터 농약을 치는 실정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뭐 좋은 농약 나온 거 없습니까?”
“좋은 게 있긴 한데 좀 비쌉니다.”

다행히도 나는 새로운 농법을 찾아 이제껏 매달려온 썩은 동아줄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었다

#절대로 논을 갈지 않는 농부
어리석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다름 아닌 얄팍한 상업주의와 탁상행정 때문이다

#식물은 무얼 먹고 살까
사람이 친절하게 화학무기물인 비료를 내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간다. 아니, 친절을 베푸는 그 순간부터 그들 모두는 일손을 놓고 죽어간다.
식물의 삶에 간섭하지 말자! 저희끼리 내버려두면 물속에서든 산속에서든 스스로 먹이를 찾아내 잘 살아간다! 때로는 가만히 손놓고 지켜보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유기농법 유감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일각에서는 유기물이 식물의 먹이인 것으로 알고 유기농법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덜 괴롭히는 것뿐이다

서리는 일종의 자연제초제

#말을 끌고 싶은 농부
초식동물에게 골분을 비롯한 각종 동물 폐기물이 섞인 사료를 먹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균형은 깨진 것이다.
반환경적인 납골당? 차라리 흙으로 돌아가는 무덤이 낫다!

##농사 이야기
#태평하게, 그러나 부지런히
그야말로 남들이 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만고태평으로 농사짓는다(거꾸로)
가을에는 반드시 보리와 밀을 파종
#나는 가을부터 농사를 시작한다

#벼는 왜 말립니까
이슬이나 구경하고 거미나 관찰하며 한심하게(?) 지내는 동안 관행대로 농사를 지은 농부들은 눈코뜰새없이 바빠진다
글농사? 농사는 힘들이지도 않고도 성공적으로 지을 수 있다는 사실, 농민도 노동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즐길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다.

#잃어버린 종자를 찾아서

#소비자가 짓는 농사
농산물 경쟁력? 사실상 양적이면에서는 이미 승패가 갈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질적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 농산물의 품질은 뭐니뭐니해도 자연친화적일수록 높게 평가받는다

이제는 귀로만 듣고 끝낼 게 아니라 직접 농민을 찾아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판별하고 확인해야 한다. 직접 맛을 보라.
소비자가 이런 상황을 바로 알고 진짜 친환경 수박을 찾는다면 다시 품질 좋은 수박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우리의 식탁도 건강해질 것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생산에 관여하려면 직접 논으로 찾아가라(친환경 판별법? 물맛을 함께 보자고 해보자!)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우리 농산물을 살릴 수 없다
비료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생산비 절약되므로 값도 싸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비자의 적극 참여?

소비자는 좀 더 싼값에 건강을 챙길 수 있고, 생산자는 힘을 덜 들이면서도 판로를 확보할 수 있으니 좋다. 그래서 21세기의 진짜 농사꾼은 농민이 아니라 소비자인 것이다!

종자 수입? 총칼만 들이대지 않았을 뿐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예속된 식민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 50년 전처럼 선진농업국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자연을 살리는 길밖에 없다. 인위적인 방법은 모두 배제하고 자연적으로 농사지은 농산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가 되어야 비로소 선진 농업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콩밭에서 | 시 짓는 농사꾼

콩밭에서. 박형진
가난한 농사꾼의 노래

화전
우와-
산에 저 벚꽃 터지는 것 좀 봐
가슴이 활랑거려서
아무것도 못 하겠네

내게 농사는 2
담배밭 옆을 지나다가
길옆에서 새참을 자시는 할머니들을 보았다
이슬 찬 담배밭 고랑의 풀을 뽑던 흙 묻은 손
한 앞에 겨우 빵 한 봉지 콜라 한 컵이다
저러고는 다시 점심때까지 저녁때까지 종일
담배밭 고랑에서 흙둥구레미가 될 것이다
하루 품삯 삼만원, 늙어 힘드는 것으로 따지면
돈만으로 샘하기에는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힘 좋은 젊은이들은
곱으로 준대도 이웃의 밭고랑 대신
차라리 화끈하게 노동판을 기웃거린다
나도 한때는
하루 종일 잔자분한 농사 일품에 지쳐
여기저기 공사장 일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 수로 건넷논의 아저씨가
논둑에서 배밀이를 하면서 옹색스런 곳
한 줄 빠진 모를 수놓듯 때워가고 있어
한눈판 나 자신의 계산성에
깊은 부끄럼을 느꼈다
금방까지 흙미꾸레미가 되어 일을 했어도
나갈 일이 생겨 이렇게 차를 몰고 나가면
일 않고 놀러 가는 듯 미안하기만 한데
비켜 주지 않아도 될 넓은 길을 할머니들은
또 저렇게 힘겹게 비켜주신다 아 농사의 순박함이
이렇듯 높디높다
하지만 나는 여지껏 내 노동에는
신성성을 부여해 보지 못했다
많은 날들을 혼자 묵묵히 일해왔지만
남의 끼니와 잠자리를 위해서 수고해 보지 못했다

#나에게는 시 짓기가 농사 짓기다
등단한 지 20년, 이제 겨우 시집 세 권! 서른다섯 해 동안 지어온 농사와 너무도 똑같다!

내게 땅이 조금이라도 있고 몸뚱이가 병들지 않는 이상 금년에 못 지으면 내년엔 잘되겠지 하는 심정으로 여태껏 농사는 지어왔고, 시 쓰는 것도 누가 알아주어서 쓰는 게 아니지만 알아주지 않으면 더 잘 써야지 하면서 써왔다. 그래서 나에게는 시 짓기가 농사 짓기다.

내게 농사는 참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 삼백예순날, 날마다 다른 얼굴은 아닐지라도 변덕이 심하다. 정확히 말하면 땅은 언제나 그대로이고 농사 또한 해마다 그대로인데 짓는 내가 다른 것이다.

#논으로 물이 들어가는 자유스러움-김용택
농사는 거짓이 없다. 농사는 그 어떤 수식이 아니다. 농사는 사실이다. 농사는 엄연한 현실이다. 흙과 물과 바람과 햇살이 만들어 낸 저 알 수 없는 순환의 질서를, 그 무궁한 사랑을 농사꾼은 다스린다. 꽃이 피는데 거짓이 있을 리 없다. 싹이 나는데 꾸밈이 있을 리 없다. 진정성과 진지함만이 존재한다. 농사는 종교 이전이고 과학 이전이다. 형진이는 이제 그 이전의 질서에 몸을 맡긴 이 땅에 마지막 농사꾼이 되었다.

형진이의 시를 시로 보지 말라. 삶으로 보라.

농사는 완벽한 예술이다. 우리 어머니가 가꾸어 놓은 깨밭만큼 잘 쓴 글, 아름다운 그림과 글씨와 음악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이른 새벽 논으로 나가는 농사꾼들의 오랜 전통, 형진이는 이제 진정한 시인이다. 아니 형진이가 시다. 형진이는 농사로 순박함을 되찾았다. 순박함을 얻는 것은 삶을 얻고 세상을 다 얻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