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을 버려라 | 감각의 회복

텔레비전을 버려라. 제리 멘더. p344

맥루한은 우리에게 과학 기술의 함정을 간파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줬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대신 인간과 전자매체와의 관계, 지구촌 조성 등을 고무하였가에 결국 과학과 신비의 통일을 지지하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말았다.

#경험의 대체와 획일화

폼 나는 광고쟁이? 이런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어떤 공허함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자신이 가식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진정으로 나는 좋은 시간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자연은 지겨워!” 문제는 자연이 아니라 나에게 있다는 섬뜩한 사실을 나는 깨달았다. 어느 순간 자연은 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되어버렸고, 나의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내 아이를 지키려면 TV를 꺼라)

광고? 나는 죽은 ‘행복의 이미지’를 조작해내는 사기행각을 벌여왔던 것이 분명했다.(정치적 각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깨달음)

광고 자체의 기능에 분노한 고세이지? 미디어 광고는 권력관계를 표현하다!
영향력 있는 미디어? 고질적인 문제가 있다? 흑인고용 요구시위 편파보도,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될 일로 여론 조성!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디어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각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는 절감했다

“언론의 자유는 가진 자들에게만 해당된다”? 전국적인 광고매체를 살 수 있는 광고주? 그야말로 상업적인 정보가 온 국민의 정신을 물들이고 있었다

정보 과잉은 지각을 돕는 것이 아니라 무디게 한다. 사람들을 자발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수동적으로 만든다.

사람들은 현대인이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교양과 가장 많은 정보를 갖추었다고 말하지만, 정보는 아직 잘 처리되지 있지 않다. 대중매체가 발달함에 따라 그것은 환경의 일부가 되었지만 대중매체는 진실로 유용한 지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문화? 단 한 세기 동안 미국은 세상의 경험을 간접적이고 종속적인 경험으로 대체한 최초의 문화를 이룩했다!
텔레비전 화면은 결코 시청자 자신의 경험이 될 수 없다. 제한된 이미지를 사용하는 정도의 경험일 뿐!(압축/변질/왜곡)

경험의 획일화? 세상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과 텔레비전을 통한 간접적이고 경험을 혼동, 독재 이상의 전제조건이 되었다!

맥루한이 간파하지 못한 미디어의 본질? 텔레비전의 양면성을 보여주지 못했다

미디어에 의존하면 미디어에 의해 소멸된다? 언론의 주목을 끌려는 의도적 행동? 점점 난폭, 목적은 단순히 미디어의 관심을 끄는 것!

형식이 내용에 우선한다? 미디어의 환경이 빚어낸 텔레비전형 인간, 닉슨의 대통령 선거, (본질은 내용보다 형식이 우선한다)

생태학자, 인디언 집단의 메시지 홍보를 위한 20초 스팟 뉴스? 시청자들에게 남는 것이 없다! 결과적으로 도움이 아니라 해만 끼쳤다!
컴컴한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미디어를 통해 얼마만큼 충실히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 (압축/생략/변질/왜곡이 필수!)

차는 인간의 활동영역을 확장시키지만 잘못된 길로 이끈다.-맥루한

근본적으로 잘못된 기술? 해결방법은? 전면적인 거부 뿐!
원자력 발전소를 인정한다면? 기술,과학,공업,군사적인 엘리트를 인정하는 것이다
기술의 존재 자체는 사회의 여러 국면의 존재를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만약 여러분이 광고의 존재를 인정한다면?

텔레비전은 개혁될 성질이 것이 아니기에 만약 우리 사회가 건전한 민주적 기능을 발휘하도록 변화시키려면 텔레비전을 완전히 제거해야한 한다!
어떠한 민주적이고 잠재능력도 지니지 못했다

#지각의 차단
분유가 모유보다 좋다? 자동차를 차는 것보다 걷는 것이 좋다? 왜 이런 연구가 필요한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통찰력을 잃어버렸다!

#경험의 미디어화

모순투성이의 환경속에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진정 무엇이 진실이며 거짓인지 분간하지 못한다. 우리는 환경을 통찰하는 힘을 잃어버렸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이 전해준 것에 불과하다!

자연과 멀어진 소비 문화? 추상만 제공할 뿐, 느낌과 직접 경험을 빼앗아갔다

지각구조를 뒤흔드는 인위적 환경? 자연환경은 인간이 만들어낸 환경에 그 우선적인 자리를 양보한 지 오래다(도시 속에서 무감각하고 메마른 지각구조를 갖고 있나)

인간의 감각을 박탈하는 환경? 도시의 사무실 빌딩은 미디어화한 환경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자연 그대로의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감각박탈? 유일한 흥미는 자극적인 것들 뿐!(56 가지의 눈이 있었던 에스키모, 도시환경은 자연환경의 다양성을 앗아갔다)
미디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인위적인 세계를 정당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획일적 이미지 주입)

#지식의 몰수
지식의 개념 자체도 변화? 미디어가 우리 지식의 근원이 되었다
자신의 경험을 의심, 자명한 것에 눈이 멀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자신과 자연과의 직접적인 경험을 분리, 상대적으로 과학적 기술체계의 진보만 가져왔다)

(독서와 같이) 지식습득 과정의 상호작용이 불가능하다(소크라테스식 대화법)

지식이 전문가나 추상의 영역으로 몰입되고 있다-이반 일리치

병을 치유하기보다 병을 악화시킨다 전문의학? 의사들이 무기는 화학,제약기업에 기초를 두고 있어 자연적인 치료법을 분열시켜 버렸다

“제약회사들이 식물을 약용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인디언에게서 배워 약품으로 만들어 그들에게 다시 팔고 있다”

아무런 보상도 주지 않고 인디언들에게서 ‘의약비밀’을 캐내고 많은 이익을 얻고 있다!

***미디어화하지 않은 환경에 살고 있었던 사람들은 그들을 둘러싼 모든 일을 알기 위해서 인간에게 주어진 모든 능력을 사용해야만 했다

#추상적 현실 속의 삶
당이 제시한 거짓을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게 되면 그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진실로 굳어지는 것이다

##경험의 식민화

사실상 광고는 소비자가 물건을 구매한 순간부터 새로운 불만족을 창출하도록 한다. 왜냐하면 구매란 시장 구조적으로 볼 때 구매한 순간부터는 더 이상의 이익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광고는 규격화된 인간을 양산한다
미국은 자연환경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발달된 나라다. 이는 우연히 아니라, 미국 경제구조의 당연한 결과이다.
생산성 극대화? 개별적인 사용만이 생산성을 최대한 올려준다(개인주의적 소비보다 공동체적 소비는 ‘덜’생산적이다?)
56개의 눈을 구별할 수 있는 에스키모의 감각은 현대 세계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자연과 단절되고 세계)

광고 자체는 하나이 전달체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매스미디어의 기능이며 목적이다! (텔레비전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텔레비전 광고의 등장? 전국 광고비용 1000% 증가!
환상에 불과한 트리클다운? (넘쳐흐르는 물이 바닥을 적신다) 균등한 소득 분배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끝없는 성장도 불가능하다)
경제력 집중의 필연성? 오로지 대기업만이 텔레비전을 통해서 광고를 할 수 있다

##텔레비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영상 앞에서 사람의 가치는 빈 그릇에 지나지 않으며 텔레비전은 무의식의 영역에 영상을 심는 쓸모없는 기구이다. 영상이 쏟아져 들아와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 우리 자신을 영상에 내맡기고 있는 것이다

“사실 텔레비전을 보는 시간을 줄이고 싶어요. 하지만 텔레비전을 계속 나를 끌어당기고 있어서 어쩔 수 없거든요.”

점점 세뇌, 몰두하게 되는 이유?
해독성을 알면서도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통념을 가진 채 침묵만을 지키고 있다!

#인간의 역할을 나약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의 매체인 텔레비전의 본질을 규명하고 싶었다!
사고와 신체운동의 약화/감격적 자극과 과잉행동
감각기능을 빼앗고 정신세계를 박탈하고 있다

#빛은 음식이다
자연광, 고대 이집트 시대의 신생아 황달 일광치료
빛이 바뀌면 세포의 구조도 바뀌고 인체의 질서도 변화하게 된다
사악한 조명? 인조광? 체질이 달라진다! (자연광 섭취가 필요)

“생명이 햇빛의 영향으로 진화되었기 때문에 사람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태양광선의 스펙트럼 구조에 의해 다양한 생리학적 반등을 일으키고 있다”

#텔레비전에는 영상이 없다? 인광물질을 내뿜는 작은 점들! 깜박거리는 flicker, 그림 자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백문이 불여일견? 인위적이라 실질적인 감각을 갖는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영상조절능력의 상실? 언젠가부터 우리는 현실과 조작된 영상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4 텔리비전의 본질적 성향

텔레비전을 경영하고 제작하는 사람들은 우리의 내적 인식을 지휘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에게 정보선택권을 넘겨주고, 그들의 시고구조 속에서만 살게 된 것이다. 그들이 선택한 지역에 가서 그들이 버리고 한 것만 본다.

텔레비전이 전달하는 것은 실생활이나 사진,영화보다 훨씬 제한된 범위이다. 섬세한 감정을 표현하기 어렵다.
조용한 연설이나 접근하기 힘든 사건은 무시해버리기 때문에 사건은 어느 프로듀서가 말한 ‘시각적 요소‘에 의해 설명되어진다!
감각에 대한 편견? 냄새,맛,촉감을 가진 정보는 전달할 수 없다

#본질을 제거하는 영상? 아우라의 붕괴? 텔레비전으로는 생명의 본질을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텔레비전 프로듀서들의 본질이 그다지 요구되지 않는 대상에만 관심을 쏟고 있다(기술복제의 시대의 가짜 상품들)

죽은 것이 더 어울린다? 셈세한 것은 지루해할 뿐! 자극적인 전쟁 장면이 더 어울린다
시간과 장소의 분리? 미디어의 뉴스는 우리의 실생활과는 무관하다
정확성에 대한 편견? 제한 시간, 압축/억지 축소는 필수, 왜곡은 불가피!

“뉴스는 없다. 미디어가 있을 뿐이다.” 30초 뉴스? 내용은 모두 제거, 기껏해야 남는 것은 간단한 사건 개요뿐이다!

#기술조작

“정말 이상한 일이지. 텔레비전을 볼 때는 줄곧 지루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보고 있게 되거든…어쨌든 계속 보기 된다구.”

기술조작은 거의 대부분이 ‘극적 순간’에 대한 흥미라는 인간감정의 본능을 이용한 것이다!
광고 1분당 20~30회/ 상업프로그램 1분당 8~10회/ 공영프로그램 1분당 2~3회 기술조작(클로즈업/줌 등 일상에서 불가능한 과다한 화면효과!)

사람들이 자신을 텔레비전 앞에 붙어 있게 하는 것이 진짜 재미가 아니라 기술조작 때문이라는 것을 알며 그토록 넋이 빠지는 일도 점차 줄어들 것이다.

전쟁은 평화보다 텔레비전에 더 어울린다
폭력은 비폭력보다 텔레비전적이다
객관적인 것 취급? 복잡할수록 전달하기가 더 어렵고 거의 선택되지도 않는다
피상적인 것이 깊이 있는 내용보다는 쉽다

전통 의식 다큐멘터리? 1분동안 평균 10회 이상의 기술조작으로 삽입시킨 텔레비전을 통해서는 도저히 의식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전달된 정보는 것이 없었고 알맹이는 완전히 파괴되었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본래 그 성격이 텔레비전에 어울리지 않고 텔레비전화되지 않는 전통을 보존하기 위해 억지로 정형화되고 사실 중심적인 사고방식을 갖는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결론 텔레비전을 버려라

텔레비전을 제거하기 위한 첫걸음은 텔레비전을 제거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마음으로부터 버리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하다

불감증과 중독에 의한 의식의 마비? 경험의 식민지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바로 각자의 ‘탈식민 의식’에 있다!
점진적 개혁? 무기 개혁을 논하는 것과 마찬가지! (생태적 발상처럼 전복적 발상이 필요하다!)

옛이야기 들려주기 | 이야기는 살아있다

옛이야기 들려주기. 서정오. p240

옛이야기 한 자리가 아쉬운 현실? 오히려 날이 갈수록 세상은 팍팍해지고 옛이야기의 값어치는 점점 더 커지는 듯하다

지금 아이들에게 차가운 머리로 가르치는 ‘지식’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으로 가르치는 ‘진실’이 필요하다

옛이야기는 들려주는 것만으로 이미 훌륭한 교육이다

옛이야기와 같이 모양이 없는 유산은 누군가 거두어 주지 않으면 사라져 버린다
옛이야기란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살아 움직이는 생명의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박물관의 유리장이나 녹음테이프 안에서 잠자고 있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되살려야 할 이야기 문화
세상이 메마르고 사람들이 인정머리 없다고 느껴지거든, 여럿이 모인 자리마다 옛이야기 한 자리씩 풀어 놓아 보자! 이야기꽃 피우며 사는 세상이 각박해질 수는 없는 법이다.

모두가 삶속에서 함께 만들고 함께 즐긴 것
옛날 아이들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이야기는 어제와 오늘을 잇고, 여럿을 하나로 묶는 끈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옛이야기가 오늘날에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어른들은 돈벌이에 바빠서, 아이들은 숙제하고 학원가기 바빠서, 텔레비전을 비롯한 그림매체가 빠른 속도로 옛이야기가 설 자리를 앗아가 버렸다)

*열린 세상을 만드는 이야기판
문명의 이기? ‘닫힌 문화’요, ‘일방 문화’다, 한쪽 방향으로 ‘나란히’앉아. 얼굴을 볼수도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다
이야기는 이와 다르다! 한쪽방향을 보며 나란히 앉아서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열린 문화’요, ‘대면 문화’다. 여럿이 ‘오순도순’함께 할 수 있다.

*자연스러운 이야기, 억지로 꾸민 이야기
아이들이 싫어하는 책? 위인전? 재주 없고 힘없는 보통 아이들을 기죽이는 이야기!

누구나 말을 하고 글을 쓰듯이, 누구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게 교육이 되어야 한다(수업시간 발표는 전문학원에 다니는 몇몇 아이들만의 전매특허? “쟤는 ‘창작/글쓰기’학원에 다녀요”!)

*이야기 속에 살아 숨 쉬는 토박이 말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 말과 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어떻게 들려주셨나요?”
“책에 있는 동화를 읽어 주었어요.”
“그것 봐요. 그렇게 하니까 지겨울 수밖에요. 이야기라고 하는 것은 마주 보고 말로 해야지요.”

글로 쓴 이야기와 우리가 예사로 주고받는 말과 다른 점이 많다(입말과 글말의 차이)

#옛이야기의 세계
값진 문화재? 그러나 우리는 오랜 세월동안 입에서 입으로 전해 온 옛이야기는 그만큼 소중한 줄 모른다. 단지 모양이 없다는 까닭만으로 푸대접을 받아 왔다.
문학으로서 가장 온전한 틀을 갖춘 것이 이야기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전설의 고향? 온통 귀신이나 구미호 이야기뿐? 사실 전설에는 옛날 백성들이 바라본 현실이 정직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데도 그렇다!

*우리 옛이야기와 서양 옛이야기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로 대표되는 서양 이야기(온통 공주와 왕자 이야기? 대부분 일본을 거쳐서 전해졌다!)
다른 나라 이야기에는 그 나라 사람들이 두루 가진 생각의 틀과 삶의 모습이 담겨 있다
우리 옛이야기에는 왕자와 공주같은 사람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우리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보통 백성이며, 그 가운데서도 가진 것 없고 억눌린 사람이다.
눈 하나, 뿔달린 도깨비? 일본 도깨비 모습
우리 나라 도깨비는 사람 모습을 닮았지만 본디 모습은 집 안 물건이다

옛이야기의 성격? 흥미성/민중성/사상성/단순발랄성

#옛이야기 되살리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먼저 이야기를 알아야 한다
너무 빌어진 이야기? 교과서의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힘으로 아무리 백성의 귀를 막아도 언젠가는 진실이 밝혀진다’에서 ‘백성을 사랑하는 임금의 깨달음’이라는 엉뚱한 모습으로(주체가 백성에서 임금으로 뒤바뀐 것)

*말 따로, 이야기 따로?
밥 따로, 국 따로, 잠시 유행한 따로국밥?
말과 이야기도 한자리에 있어야 한다
언제나 똑같은 말투의 동화 구연? 죽은 말이다(삶 따로, 말 따로, 글 따로!)

*살아 있는 이야기말? 글말이 아닌 입말/이야기꾼의 개성이 드러나는 말/자연스럽고 아기자기한 끝말/높임말과 예사말 대신 상식적 말투

#읽어주기와 들려주기의 차이?
읽어주기는 순전히 목소리로 모든 것을 나타낸다. 그런데 들려주기는 목소리뿐 아니라 얼굴 표정, 몸짓과 손짓까지 곁들이므로 표현방법이 매우 다양하고 풍부하다

#옛이야기 재미있게 들려주기
이야기판은 듣는 이와 이야기꾼이 다 같이 줄거워야지, 어느 한쪽이라도 불편해서는 안 된다.

능숙한 이야기꾼일수록 흉내를 잘 낸다

*끊어 말하기
이야기꾼은 말을 맞게 끊어서 군데군데 쉬어 주어야 한다
주의를 모을 때는 2~3초 동안 쉰다
심리 묘사나 장면 묘사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오로지 사건을 따라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간다
이야기의 합리성에 매달리지 않는다

#이야기로 가르치기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은 바로 그것으로 이미 훌륭한 교육이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태도를 배우고, 말귀를 알아듣는 힘을 키울 뿐 아니라 상상의 즐거움과 공동체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훈계나 잔소리를 들어서 얻는 배움과 같지 않다. 머리로 깨치는 배움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배움이다
삶의 지혜, 옛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가르칠 수 있다
또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서 가죽은 아이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 슬픔에 빠진 아이에게는 꿈을 심어 줄 수 있다

이야기를 듣고 난 뒤에 하는 일은 어느 것이나 즐거워야 한다
꼬치꼬치 캐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느낌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옛이야기 열두 마당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우리 옛이야기 112가지, 옛이야기 보따리>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 소박한 삶의 행복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스코트 새비지. p270
The Plain Reader

궁극적으로 이 책은 기쁨에 관한 책이다. 막 읽고 난 뒤에는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당신은 당신 삶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해낼 것이다.

문명의 근본적 위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활의 틀을 바꿔야 한다(생태적인 발상은 전복적 사고다!)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부유한 이들의 이야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정기구독자 수의 증가를 스스로 거부하는 잡지? < 플레인Plain >, 정기구독자 5천명? 타자를 치고, 판형을 짜서, 손으로 찍어내는 잡지!

러다이트(기계혐오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실천적 뿌리에서 우러나오는메시지는 ‘어땋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목소리로 남을 것이다
현대 기계문명의 속도지상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제리와 저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미래로 빠져나가는 길을 택하겠습니다”(오래된 미래)

어머니까지 떼어놓게 만드는 사회제도, 우리가 있어야만 할 곳? 가정!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느라 우리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스스로 활기차게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만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회사에서 일하느라 누릴 수 없었던 엄청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어린 시절이 지나기 전에, 우리 역시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이런 일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삶을 근본적으로, 또 급진적으로 바꾼 사람들의 사연이 일주일이면 수십 통씩 쌓인다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 우리가 지향하는 소박한 삶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놀라운 사실이 기존의 인쇄매체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잡지를 창간하게 되었다.

우리는 되도록 느리고 조용한 방식으로, 컴퓨터 대신 사람의 손을 이용한다. 그 결과, 직접 세심하게 양질의 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삶의 방식을 바꿀 용기
텔레비전의 플러그를 뽑는다면, 내리막길로 달음박질치는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뒤로 첫 발자국을 뗀다면, 그 현명한 선택에 대한 보답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박하게 살겠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와 관계를 맺는 사람이나 장소, 물건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들까지 다시 배워야만 한다는 뜻이다

Virtual? ‘완전히 같지 않음’을 뜻한다(가짜, 사이비)
아미쉬 같은 공동체를 그저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서로 겸손하게 연대할 수 있는 있다.
불완전함을 메우기 위한 방편?공동체!

전원 플러그를 뽑는 일만으로도 우리 삶을 억세게 구석에는 이 기계처럼 조직화된 문명의 손아귀에서 간단하게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희망의 근거가 생긴다. 우리와 기계화된 조직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우리의 에너지가 기술 세계로 공급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현대 문명의 힘은 은 우리에게서 비롯된 힘이다)

희망으로 풍만한 세계? 뒤집혀진 게 아니라 실은 그게 제대로 된 세계였다!

우리가 고용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상호존중, 상호부조, 공동체가 필요하다

제한 없는 기술 개발은 또한 제한 없는 권력을 낳는다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삶의 모든 것이 되었다
우리 논밭 한가운데로 아무런 필요도 없는 고속도로가 건설!
저는 사유나 정치 운동을 통해 이 상황에 대처하기보다는 개인적 결단으로 맞서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경제적 독재 체제라면 공장 시스템으로 생산되는 계란의 독점 체제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자기가 먹을 계란을 직접 생산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먹기에 충분할 만큼의 계란을 가질 수 있다면 먹을 거리를 독점하고 생기는 권력은 분쇄될 것입니다.”

언제나 무엇이든 지금 시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공동체라는 오래된 외투와 같다? 없어진 다음에야 불편함을 느낀다!

시골에서 일하는 느낌?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
저는 신성한 노동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기는 공동체 문화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가정? 우리 집은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했습니다.
손수 꾸리는 살림, 우리 마음대로 많은 것을 결정, 우리는 소비주의로부터 한층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사회 기술자 양성소로 변질? 공교육 역시 우리가 거부하기로 결심한 것 중 하나!

가정? 우리에게 가정이란 일하는 곳,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거치 있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산부인과 강의? 임신은 일종의 병? 임신과 출산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과정!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검사를 하고,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모은다. 더 많은 사실을 알수록 더 많은 통제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들까지 통제하려드는 시도는 무서운 시나리오로 우리를 이끈다. 이제 이 나라의 임산부들 대부분은 최소한 한 번 이상의 초음파 검사를 받는다(아직도 검증되지 않은 초음파 검사,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만 사용 권고 사항!)
그런 불확실한 검사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이 문화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과 삶이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일이다

하지만 모두들 함께 일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만약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만 했다면 농사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먹을 거리를 누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재배했는지 알 수 있도록 생산자와 관계를 맺는 일은 정말로 대단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모이는 시장은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하고 몸에 좋은 먹을 거리를 나누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에겐 많은 사람들과 서로 연결되는 사회적, 문화적 행사장인 셈이다.
공동체 문화가 없는 능률? 슈퍼마켓이 지닌 능률이라는 것도 대부분은 환상에 불과하다(흙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대관계가 사라진다는 측면에서 오래 지속될 리 만무하다)

#적게 벌고 많이 존재하기
돈은 쉽게 변하고 불안정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힘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가게나 농부를 망하게 하는 ‘더 나은 거래’? 값싼 게 좋다? 낮은 가격은 때로 엄청난 비용을 동반한다(사회적 비용 전가)

화폐의 가치는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한 지역 안에서 결정되어야만 한다(지역 화폐, 뉴욕과 인도 시골 마을에서 1달러의 가치는 완전히 다르다)
세계화 상인들이 행하는 착취! 공동체 안에서는 화폐가 일관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노동의 교환? 기꺼이 수고를 나눌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돼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정보 초고속도로에는 그다지 숭고한 목적이 없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악다구니를 쓰는 온갖 소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라디오? “녀석은 더이상 말하지 않는단다. 이제 우리가 말하면 돼.”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 세계와 지역의 사건들에 대해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필수품이든, 사치품이든, 일을 덜어주는 곳이든 그런 물건들 없이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만약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관성을 멈추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모든 공동체에 대안이 존재한다

#삶의 방식을 바꿀 용기
머리로 아는 지식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대부분 손바닥에 조금은 굳은살이 박이는 게 한결 낫다

#당신의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것
훌륭한 장난감들이 많긴 하지만 필수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좋은 장난감이란 상상력과 함께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교육과정에 소모되는 낙담한 아이들의 마음? 이런 교육과정 때문에 많은 아이들은 평생 멍청하고 열등한 사람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수많은 일상의 기적들 무시? 가을 길가에 줄지어선 나무들의 아름다움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을 단풍을 즐기기 위해 떼를 지어 4백 마일이나 떨어진 국립공원까지 차를 몰고 가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가르칠 시간
이젠 누구나 알다시피, 달에 가는 일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규 교육은 이제 중단없는 소비를 가르치는 ‘교회’로 바뀌었다

#어린 시절을 삭제해도 되겠습니까?
아이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이 예전에는 정교하고 세밀했는데 이제는 대개 조잡한 수준의 인공물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아이들은 우리가 주는 모든 물건을 통해 배운다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해야만 더 확장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막연한 추측의 댓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컴퓨터들이 어린 시절에서 ‘delete’하는 다른 모든 차원과 경이로움!

Plain? 검소한, 소박한, 철저한
Plain People‘? 미국 아마쉬
반테크놀로지-반세계화 운동가적 기질
‘몸을 움직여 먹고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 우리는 예전 사람들처럼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직장에 다니지 못하고 한 시간이나 자동차를 놀고 가야먄 하는가?
현대 사회가 말하는 편리함은 사실은 편리함이 아닌 것이다. 시간을 단축시켜준다는 컴퓨터는 오히려 시간을 더 빼앗았다.

미국의 청학동 사람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까지 듣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여가 선용이나 정보 습득보다 소비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술이 덜 깬 몽롱한 정신? 모두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없이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인가. 우리에게 의심을 품을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미디어다

왜 그런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 궤도에서 이탈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최고가 되어야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하니까 끊임없이 달리지 않으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미디어에서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한국의 직장인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모두 소중하고 인간갑게 살 권리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위험한 책이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실용적인 매뉴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