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일기 | 신나는 보물찾기

교실일기. 소노다 마사하루. p405
30년 동안 아이들과 함께 한 초등학교 교사의 신나는 교실 만들기

신나는 교실! 배우는 건 괴롭기만 한 게 아니고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마음으로 실감합니다.

작은 감동들을 풍성하게 맛볼 수 있는 교실은 너무나 이상적인 곳이었습니다. 그 교실은 늘 신선한 공기가 흐르고 모두가 지혜와 마음을 다해 자발적으로 공부하고 의욕을 고취시키는 ‘살아 있는 교실’이기 때문입니다.

더 나은 교실 드라마?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생각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걸어가 줄, 자신들보다는 다소나마 경험이 많은 ‘배움의 파트너’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희비가 엇갈리는 교실 드라마를 공유해 줄 ‘의지할 만한 동반자’를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학교생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 수학여행이 아니라 ‘산촌체험학습‘이었다(자연은 최고의 신나는 교실! 자연학교!)

#보물찾기

재능이란 인간이면 누구나 내면에 갖추고 있는 보물이라고 생각한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재능. 이것을 찾아내기 위해 인간은 계속 배우는 것이다. 학교라는 존재는 그 발견을 위한 터전이라고 생각한다.
신학기가 시작되는 날은 그 ‘보물찾기’가 시작되는 날이기도 하다.

#학급붕괴
가고시마에서 온 고등학교 교사는 ‘요즘 아이들은 학교에 갔을 때만 놀이 상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아이들끼리 좀 많은 시간을 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발언했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흘릴 정도로 잘 놀고 나면 답답한 마음도 많이 사라질 것이다’라고 하는데 나 역사 그렇다고 확신하고 있다.

나라에서 온 중학교 교사는 ‘지금 자신이 무엇에 대해 화를 내고 있는지도 잘 모르지만 기분이 답답한 아이가 많다’고 말한다. 몸 안에 스트레스가 쌓일 대로 쌓여 그 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들은 어른의 입장에서 상상한 것이다!
왜 최근에 이러한 일이 학교에서 일어나게 된 것인지 그 원인을 아이의 눈과 마음이 되어 물어보자. 아이에게는 아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중독 벗어나기 | 일중독 환자 대한민국?

일중독 벗어나기. 강수돌. p237

‘범생이 콤플렉스’를 벗어나 ‘반쪽의 범생이와 반쪽의 문제아‘가 되라!
중독이란 원래 질병의 일종이다

노동종속성? 일과의 일종의 강제 관계!(내면화된 자기 강제)

일중독자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미루어버릴 수 있는가 여부”-페터 베르거, 독일 신경정신과 의사

성실한 사람, 모범적인 사람? 중독은 사회적으로 조장되거나 은폐되는 특수성이 있다!(노동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강제’가 작동하고 있어 노동 없는 삶의 대안을 생각하기는 더욱 어렵다)

***“모든 중독증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불충분한 성취의 두려움(프리랜서형)/ 몰락의 두려움(블루칼라형)/ 무능의 탄로에 대한 두려움(햄릿형)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각종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적극 관통해 정면으로 넘어가고자 하기보다는 그것을 은폐, 추방, 억압, 축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회피한다. 그 회피의 한 방편으로 일중독이 나타난다. 즉 일중독이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일중독에 관한 이론

중독? 뇌의 활동 왜곡되어 환각이나 강력한 각성 효과, 진통 효과 등이 발생한다!
일중독? 일 자체나 성과가 일종의 마약 역할!

정치경제학적 접근에서 일중독은 자본의 산물이자 자본의 토대다. 나아가 자본 자체가 중독 체제이다(하이데)

자본주의는 일중독뿐만 아니라 소비중독을 먹고 산다.
자본관계의 변화 없이 일중독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공동체적 유대감과 생동하는 모든 존재와의 연대를 고양할 때 비로소 일중독도 극복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일중독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폭력의 체계적 경험과 내면적 자율성의 결핍에 따라 생기는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방어’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3 일중독의 역사적 근원
땅과 사람의 분리, 내면과 외면의 분리
중세 종교 비판하면서 등장한 신교(프로테스탄트)
탈영성화란 인간이 보다 큰 우주의 일부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 주인 또는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일중독의 역사적 과정이란 자본주의 형성, 발전 과정에서 인간이 진정한 자아(내면)와 분리되는 탈영성화가 일어나는 것이 핵심이다.

***진정한 자아와 분리, 외적 정체성을 추구하게 된 원인? ‘공격자와 동일시‘ 개념-정신적 충격(트라우마) 때문이다

물질적 보상, 외적 성취에 몰입-자신을 공격하는 시스템의 논리를 스스로 내면화(공격자와 동일시)

어른들은 아이들과 ‘조건없는 사랑’으로 기쁨을 나누기보다 “이 아이가 나중에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성공할 것인가?”란 관점에서 교육시켜 노동시장으로 내보낸다.

“땅 파기 싫으면 공부해라”

바로 이런 가치관이야말로 땅과 사람의 분리, 내면과 외면의 분리를 부채질하며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일이 아닌가? 도대체 이런 가치관의 역사적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반도의 근현대사: ‘강자와의 동일시’의 역사

조선 말기에 이르러 서양 제국주의 및 일본 제국주의와의 폭력적 관계 속에서 전통적인 삶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강자와의 동일시’라는 집단의식이 급부상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제국주의적인 백인의 행태를 비판하기보다는 멸종해가는 인디언들이 “대대로 게으르고 학습 능력이 없으며 야만적”이라며 나무란다.

친일 논리나 독립 논리를 가리지 않고 뿌리를 뻗어간 개화기 사상? 부국강병의 논리!!
‘놀지 말자, 흥사단의 ‘무실역행’ 사상, “우리가 할 일이 많은 줄 압니다. 물산 장려도 해야 되고, 문화 운동도 해야 하고, 발명도 힘써야 하고, 할 일이 많지요…”

요컨대, 이 모든 생각들의 바탕에는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 깊이 깔려 있다!

해방 직후 미군? 유일한 목적은 미국과 미국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것을 박멸하고 미국 자본주의 확산의 토대를 닦는 일이 었더. 그 이후 전국노돌조합평의회(전평) 등 온갖 진보세력들을 물리적으로 탄압했아며 마침내 한국전쟁과정을 통해 최소한 남한에서나마 저항세력을 일소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은 남한 사회에 심층적 상흔을 남기는 데 충분했으며 그 결과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강자와 동일시’를 강화하게 된다. 그 한 결과가 반공 히스테리, 즉 레드 컴플렉스로 나타났다(하이데)

새마을운동, 경제개발(산업화)?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을 자본주의 산업화(국익)에 동원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자본주의 산업화 체제야말로 ‘강자’가 되는 지름길이자 ‘강자’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외국 학자들이 서양에서 수백 년 동안에 가능했던 놀라운 경제성장을 단 30년 만에 가능하게 만든 1960~1980년대의 한국 노동자들을 보고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다’라는 뜻의 ‘산업전사’라고 했겠는가?

근면한 노동이 곧 애국, 게으름은 매국 철저한 배역의 대상!

우리가 이런 일련의 역사적 과정들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느릿느릿’을 강조하던 조선 시대 양반의 풍경이 오늘날의 ‘빨리빨리’로 변해 한국 사람을 상징하는 국제어로 통용되는 배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4 일중독의 사회적 배경

삶의 중요한 공간들? 가정, 학교, 군대, 직장
*가정-아이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건전한 인격체로 자라난다
일중독에 빠진 부모들은 아이들의 욕구를 솔직히 있는 그대로 충족시켜주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한과 소망을 대신 해결하려 하거나 아이들 자체에 무관심해 그 욕구를 무시한다.

칭찬의 역효과? 성과와 포상이 연결되어 있음을 반복 체험하면서 성과주의를 굳게 ‘내면화’한다.

*학교는 앞으로 노동시장에 팔려 나갈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쓸모’ 있는 노동력을 만드는 공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년간의 교육 기간 동안 다양한 잠재력과 고유한 꿈과 소망을 가진 한 인격체가 아니라 오로지 일개 ‘생산요소’로 축소당하는 경험을 한다. 시험과 점수가 그 강력한 통제 수단이다.
일개 ‘생산요소’로 전락? 이것은 ‘환경파괴’보다 더 무서운 ‘인간 파괴’다!

‘야간자율학습’은 그 강제성과 타율성의 측면을 은폐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일종의 ‘사회적 DNA’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밤늦게까지 학습 습관? 나중에 직장에 가서도 똑같은 관성을 발휘한다!

군대?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군대라는 조직과 문화는 내적 자율성의 박탈과 강자와의 동일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군필자 우대? 노동능력과 노동자세를 잘 갖춘 노동력을 원하는 자본이 이러한 군대 조직과 문화를 체계적으로 체득하는 사람들(군필자)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직장? 돈벌이 경제의 패러다임이나 ‘자원은 유한한데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는 엉터리 가설들, ‘경쟁력만이 살길이며 생산성 향상만이 모두 잘 사는 길’이라는 식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내면화하고 또 몸으로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반복적 경험 속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nature과 자아ego가 진정으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지 못할 때, 내면적 안정감과 자율성을 상실했을 때,…사람들은 모종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그러한 두려움이 어떤 형태로는 외적인 것에의 종속성과 면역성, 금단 현상을 특징으로 하는 중독증을 불러오는데, 특히 성과주의적 삶의 원리의 내면화가 일중독을 촉진하게 된다.

#5 일중독의 현실

사람들은 자기정체성을 잃은 상태에서 체제가 강제하는 논리를 내면화하고 동원의 대상이 되면서 그 틀 안에서 작은 성공만을 위해 일생동안 몸과 마음을 바치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하이데)

“요즘은 오히려 한가해지면 뭐할지 모르겠다”

퇴직 인생? 자신의 존재 이유인 ‘일’이 없어진다!

일중독 경영자? 모든 일을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완벽주의 경향, 다른 사람 불신, 조직 사기 저하!
중독조직, 중독사회
틈새증후군? 하루 4시간 수면 대기업 청수? 빈 스케쥴에 안절부절 못한다!

#일중독과 소비중독을 동시에 권하는 사회
일중독을 부채질하는 사회, 중독은 일종의 질병이다. 영원한 불만족 상태, 결과 중시하기에 통제만능주의에 빠지고 거짓말이나 조작도 잘 한다.(황우석 교수 사태)

#건설 마피아와 집단적 성장중독증
개발development? 정책적 개념 정립한 트루먼 대통령
‘저개발’ 지역 ‘개발’한다는 아이디어, 개발의 이미지는 긍정적이고 역동적 이미지로, 저개발은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고정된다
후진국? 돈벌이를 위한 제국주의의 산물

평화? 세계 원주민들의 경우는 “그냥 내버려두어지는 것”을 평화라고 보는데도(이반 일리치) 마치 대부분의 우리들은 전쟁이 없는 상태 또는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모두 잘 살게 한답시고 개발을 서두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개발주의는 어떤 면에서도 보아도 ‘위로부터의’ 프로젝트다.

[일본, 허울뿐인 풍요] 저자 개번 매코맥의 말대로 ‘토건 마피아’

#7 일중독 벗어나기
가장 먼저 중독증 환자 스스로 자신의 병을 ‘인정’해야 하며 동시에 주변 사람들(가족,동료)도 이 병의 진단과 인정, 치유에 동참해야 한다
조직적 차원의 질병은 결코 개인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조직적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삶의 건강성과 자율성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조화로운 삶의 공식? 4-4-4!,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제)

자본주의 자체가 중독을 먹고 산다! 일중독은 자본의 산물이자 토대이기도 하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에 끌려 다니는 질병인 일중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수록 대중화 또는 보편화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경제 원리의 근본적 변동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가치관 변화와 구조적 변화가 함께 상승 작용을 하며 대안의 실현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일-여가-놀이의 통일을 추구하는 야마기시 공동체, 자본주의 문명을 거부하며 손노동과 검소함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아미쉬 공동체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니어링&스코트 부부의 조화로운 삶의 지혜? 4-4-4 시간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vity

‘나부터’ 먼저 ‘올바른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폴 라파르그의 [여유로울 권리]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모든 나라 노동자계급은 한 가지 중독증에 걸려 있다. 이 중독증은 다름 아닌 노동을 사랑하는 것이다(일중독)

노동할 권리를 혁명의 원칙으로 선언한 프랑스 혁명? 프랑스 프롤레타리아의 수치다!

모든 시도의 출발점은 일중독의 존재 자체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자발성과 생동하는 연대에 기초한 모임, 각자 모두가 중심이고 주인. 자립성과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
사회적 병리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데도 중요한 통찰력을 주고 있다. 특히 대안 사회를 꿈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는 개인과 조직들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기적의 도서관 | 살아 있는 건축 이야기

기적의 도서관. 정기용.p341

순천기적의 도서관/제천기적의 도서관/진해기적의 도서관/제주기적의 도서관
도서관은 살아 있다. 건축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

상상력 넘치는 공간의 시인,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비저너리, 공적 가치를 세우는 일이라면 망설임 없이 헌신하는 공익 근로자? 정기용!
공간의 시인, 비저너리, 공익 헌신 3박자? 바보의 조건(세상을 바꾸는 비이성적인 사람들)

“도서관을 이렇게도 지을 수 있구나”

한 살짜리 꼬맹이들도 안방에서처럼 기고 뒹굴고 놀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 “가능하지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어른들은 우리들이 어린 아이들을 잘못 교육시키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빠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계속 세상이 바뀌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빨리 자라나기 때문이다. 기적의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사회적 효과는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들 스스로가 교육개혁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서가에서 꺼내 창가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교육개혁의 시작이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즐겁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교육개혁을 앞당기는 일이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행복한 교육개혁, 어린이들에게 햄버거나 콜라가 아닌 상상 속의 꿈을 먹고 살게 하는 공간…기적의 도서관은 어른들이 마땅히 해야 할 해묵은 숙제이기도 하다. 어른들이여, 어느 기적의 도서관에나 아이들이 많을 때 조용히 방문하여 30분이라도 머물러 보라. 그곳에서 여러분들이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행복과 불행을 눈물겹게 만날 것이다.

*다락과 토굴, 여기저기 숨는 공간들(최고의 놀이터는 자연)
자유로운 상상과 엉뚱한 몽상이 아니라면 무엇이 아이들을 키울 것인가? 자유로운 상상과 놀이의 시간을 철저히 빼앗기고 있는 지금 이 땅의 아이들에게 그런 자유의 시간, 숨 돌릴 시간, 몽상할 시간을 되찾아 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아이들 교육은 사회가 분담해야, 어린이 도서관은 사회적 기본 시설, 공동체를 일구는 풀뿌리 운동의 중심부

한국형 어린이 전문 도서관? 위대한 아줌마들의 힘! (그들의 실질적 체험과 생생한 이야기들)

진정한 지식인이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이다(Happiness is when what you think, what you say, and what you do are in harmony-간디)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

“책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마음 넣고 책을 보게 할 의무가 우리들 어른들한테 있다”

문화풍경을 구축하는 인문학 건축가
교감과 깨달음의 창조적 만남들

어린이 전용 도서관 설계?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부를 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디자인? 새로운 건축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결국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곳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협치의 건축
그렇다. 모두가 하나같이 동의하고 공유하는 가치에 대하여 사람들은 크게 힘을 모아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주체가 다시 살아나고 올바른 이성과 결합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엉뚱한 상상력?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케치를 해놓고 느낀 것은, 도서관이라고 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책상과 공상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옥외공간도 ‘하나의 책’과 같이 고안

재미있는 것은 어느 한 순간도 각 지역의 조사관들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미리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쫓기면서 순간순간 선택된 결과들이 나의 생각을 앞서간 것이다.

*공문서와 같은 공원
급조된 도시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도시다운 매력이 없다. 모두 농지 위에 신축하여 말쑥하기는 하지만 영혼이 없다.
신도시는 현대적?이고 고만고만한 box글의 초라한 나열인데 그 가운데 공원에 심은 소나무들이 불쌍하다

개념이 없이 그어진 획일적인 단지계획은 새 도시를 단조롭게 만든다

조그마나마 차이를? 새로운 건축 풍경!

*자기 집같은 도서관? 자유로운 자세의 자유로운 독서! 책도 만나고 세상도 만나고
천방지축인 아이들, 앉아서도 옆구리에서 책을 보고, 가장 편안하고 거침없는 자세로

아이들을 어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 의의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책을 만나게 하고 그들의 잠재력과 상상력에 마음껏 집중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어른들이 진정으로 바래야 하는 것이고 또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강요된 교육 공간이 아닌 완전 해방된 공간
지금같이 어린 아이들을 어른들이 만든 제도와 법칙에 따라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기적의 도서관의 목적이자 이 시대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야 되는 윤리이기도 하다

사회화 과정을 익히는 공간? 아이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생각하게 하고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하게 하는 것(새로운 시작)

다락도 사라지고 지하철도 사라진 아파트의 단층으로 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또다른 공간의 깊이와 높이와 크고 작은 체험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도서관’? 건축을 종결짓는 것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무조건 새것만 좋다는 생각, 신도시, 공문서와 같은 공원

한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협력하여 건축에 투영하고, 그것을 모두가 동의하고, 그 가치를 공유할 때 건축은 ‘문화’가 되는 것이다(모두가 참여하는 올바른 사회디자인)

건축은 주변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늘 정확하여서 자로 재지 않고도 눈에 거슬리는 건물을 식별할 줄 안다(보통 사람들의 보편적 본능)

현란한 원색? 어른들이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어린 아이들 색’일 뿐이다!
사람과 책이 형상이라면 건축은 배경이다

#자기모순과 만나다
건축가들의 모순?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건축의 모든 것을 지금 결정해야 한다
자기가 설계한 집에 살지 않는다
심혈을 기울여서 설계한 건물 곳곳에 어린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예기치 못한 태도와 자세로 책을 보고 만나고 하는 모습들은 상상상했던 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건축가인 원래 구성한 대로 다 실현되지는않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주 기적의 도서관은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소나무를 베지 않고 설계하겠다”

나는 “소나무를 베지 않고 설계하겠다”고 말했고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지 의아해했다(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건축은 늘 나무를 필요로 하지만 나무는 늘 건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때로는 ‘태도’ 또는 ‘관점’이 건축을 결정하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건축을 할 때 우리가 우선 건축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것은 시청과 같은 관이 아니라 자연이다. 우선 자연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자연 속에서 색이란 시간과의 함수관계에 있다. 자연의 색은 계절 따라 시간 따라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일정하지가 않다(자연과 어울리는 색? 솔이 생각은 ‘거울’색!!!)

책을 꼭 지식으로만 습득하지 않고(제도적 공간) 상상력의 날개를 펴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건축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짓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그 건축물이 계속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을 치유하는 방법 중 도서관이 제일 약효가 좋더라’ [Heal the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