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독 벗어나기 | 일중독 환자 대한민국?

일중독 벗어나기. 강수돌. p237

‘범생이 콤플렉스’를 벗어나 ‘반쪽의 범생이와 반쪽의 문제아‘가 되라!
중독이란 원래 질병의 일종이다

노동종속성? 일과의 일종의 강제 관계!(내면화된 자기 강제)

일중독자와 열심히 일하는 건강한 사람을 구분하는 기준은 “하던 일을 중단하거나 미루어버릴 수 있는가 여부”-페터 베르거, 독일 신경정신과 의사

성실한 사람, 모범적인 사람? 중독은 사회적으로 조장되거나 은폐되는 특수성이 있다!(노동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노동에 대한 ‘사회적 강제’가 작동하고 있어 노동 없는 삶의 대안을 생각하기는 더욱 어렵다)

***“모든 중독증의 뿌리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불충분한 성취의 두려움(프리랜서형)/ 몰락의 두려움(블루칼라형)/ 무능의 탄로에 대한 두려움(햄릿형)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는 각종 두려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것을 적극 관통해 정면으로 넘어가고자 하기보다는 그것을 은폐, 추방, 억압, 축출하는 등의 방법으로 회피한다. 그 회피의 한 방편으로 일중독이 나타난다. 즉 일중독이 일종의 ‘마취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 일중독에 관한 이론

중독? 뇌의 활동 왜곡되어 환각이나 강력한 각성 효과, 진통 효과 등이 발생한다!
일중독? 일 자체나 성과가 일종의 마약 역할!

정치경제학적 접근에서 일중독은 자본의 산물이자 자본의 토대다. 나아가 자본 자체가 중독 체제이다(하이데)

자본주의는 일중독뿐만 아니라 소비중독을 먹고 산다.
자본관계의 변화 없이 일중독의 치유는 불가능하다!
공동체적 유대감과 생동하는 모든 존재와의 연대를 고양할 때 비로소 일중독도 극복할 수 있다.

한마디로 일중독이란 자본주의 사회에서 폭력의 체계적 경험과 내면적 자율성의 결핍에 따라 생기는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자기방어’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다.

#3 일중독의 역사적 근원
땅과 사람의 분리, 내면과 외면의 분리
중세 종교 비판하면서 등장한 신교(프로테스탄트)
탈영성화란 인간이 보다 큰 우주의 일부라는 생각을 버리고 그 주인 또는 지배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일중독의 역사적 과정이란 자본주의 형성, 발전 과정에서 인간이 진정한 자아(내면)와 분리되는 탈영성화가 일어나는 것이 핵심이다.

***진정한 자아와 분리, 외적 정체성을 추구하게 된 원인? ‘공격자와 동일시‘ 개념-정신적 충격(트라우마) 때문이다

물질적 보상, 외적 성취에 몰입-자신을 공격하는 시스템의 논리를 스스로 내면화(공격자와 동일시)

어른들은 아이들과 ‘조건없는 사랑’으로 기쁨을 나누기보다 “이 아이가 나중에 무엇을 하면서 먹고살아야 성공할 것인가?”란 관점에서 교육시켜 노동시장으로 내보낸다.

“땅 파기 싫으면 공부해라”

바로 이런 가치관이야말로 땅과 사람의 분리, 내면과 외면의 분리를 부채질하며 자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일이 아닌가? 도대체 이런 가치관의 역사적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한반도의 근현대사: ‘강자와의 동일시’의 역사

조선 말기에 이르러 서양 제국주의 및 일본 제국주의와의 폭력적 관계 속에서 전통적인 삶의 가치관이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강자와의 동일시’라는 집단의식이 급부상했다.

유길준은 [서유견문]에서 제국주의적인 백인의 행태를 비판하기보다는 멸종해가는 인디언들이 “대대로 게으르고 학습 능력이 없으며 야만적”이라며 나무란다.

친일 논리나 독립 논리를 가리지 않고 뿌리를 뻗어간 개화기 사상? 부국강병의 논리!!
‘놀지 말자, 흥사단의 ‘무실역행’ 사상, “우리가 할 일이 많은 줄 압니다. 물산 장려도 해야 되고, 문화 운동도 해야 하고, 발명도 힘써야 하고, 할 일이 많지요…”

요컨대, 이 모든 생각들의 바탕에는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 깊이 깔려 있다!

해방 직후 미군? 유일한 목적은 미국과 미국 자본주의에 적대적인 것을 박멸하고 미국 자본주의 확산의 토대를 닦는 일이 었더. 그 이후 전국노돌조합평의회(전평) 등 온갖 진보세력들을 물리적으로 탄압했아며 마침내 한국전쟁과정을 통해 최소한 남한에서나마 저항세력을 일소하는 데 성공한다. 이 과정은 남한 사회에 심층적 상흔을 남기는 데 충분했으며 그 결과 일종의 생존전략으로 ‘강자와 동일시’를 강화하게 된다. 그 한 결과가 반공 히스테리, 즉 레드 컴플렉스로 나타났다(하이데)

새마을운동, 경제개발(산업화)? ‘빨갱이’가 아닌 사람들을 자본주의 산업화(국익)에 동원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자본주의 산업화 체제야말로 ‘강자’가 되는 지름길이자 ‘강자’ 그 자체를 상징하는 것이다.

오죽하면 외국 학자들이 서양에서 수백 년 동안에 가능했던 놀라운 경제성장을 단 30년 만에 가능하게 만든 1960~1980년대의 한국 노동자들을 보고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한다’라는 뜻의 ‘산업전사’라고 했겠는가?

근면한 노동이 곧 애국, 게으름은 매국 철저한 배역의 대상!

우리가 이런 일련의 역사적 과정들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느릿느릿’을 강조하던 조선 시대 양반의 풍경이 오늘날의 ‘빨리빨리’로 변해 한국 사람을 상징하는 국제어로 통용되는 배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다.

#4 일중독의 사회적 배경

삶의 중요한 공간들? 가정, 학교, 군대, 직장
*가정-아이들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자라야 건전한 인격체로 자라난다
일중독에 빠진 부모들은 아이들의 욕구를 솔직히 있는 그대로 충족시켜주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한과 소망을 대신 해결하려 하거나 아이들 자체에 무관심해 그 욕구를 무시한다.

칭찬의 역효과? 성과와 포상이 연결되어 있음을 반복 체험하면서 성과주의를 굳게 ‘내면화’한다.

*학교는 앞으로 노동시장에 팔려 나갈 노동력을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쓸모’ 있는 노동력을 만드는 공장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20년간의 교육 기간 동안 다양한 잠재력과 고유한 꿈과 소망을 가진 한 인격체가 아니라 오로지 일개 ‘생산요소’로 축소당하는 경험을 한다. 시험과 점수가 그 강력한 통제 수단이다.
일개 ‘생산요소’로 전락? 이것은 ‘환경파괴’보다 더 무서운 ‘인간 파괴’다!

‘야간자율학습’은 그 강제성과 타율성의 측면을 은폐한다는 점에서도 문제이지만 일종의 ‘사회적 DNA’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유의할 필요가 있다. 밤늦게까지 학습 습관? 나중에 직장에 가서도 똑같은 관성을 발휘한다!

군대? 특히 한국 사회에서 군대라는 조직과 문화는 내적 자율성의 박탈과 강자와의 동일시에 결정적 역할을 한다.
군필자 우대? 노동능력과 노동자세를 잘 갖춘 노동력을 원하는 자본이 이러한 군대 조직과 문화를 체계적으로 체득하는 사람들(군필자)을 선호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직장? 돈벌이 경제의 패러다임이나 ‘자원은 유한한데 인간의 욕구는 무한하다’는 엉터리 가설들, ‘경쟁력만이 살길이며 생산성 향상만이 모두 잘 사는 길’이라는 식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내면화하고 또 몸으로 직접 보여주어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어린 시절부터 어른이 될 때까지 반복적 경험 속에서 자신의 깊은 내면nature과 자아ego가 진정으로 하나의 통일체를 이루지 못할 때, 내면적 안정감과 자율성을 상실했을 때,…사람들은 모종의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그러한 두려움이 어떤 형태로는 외적인 것에의 종속성과 면역성, 금단 현상을 특징으로 하는 중독증을 불러오는데, 특히 성과주의적 삶의 원리의 내면화가 일중독을 촉진하게 된다.

#5 일중독의 현실

사람들은 자기정체성을 잃은 상태에서 체제가 강제하는 논리를 내면화하고 동원의 대상이 되면서 그 틀 안에서 작은 성공만을 위해 일생동안 몸과 마음을 바치려는 태도를 갖게 된다(하이데)

“요즘은 오히려 한가해지면 뭐할지 모르겠다”

퇴직 인생? 자신의 존재 이유인 ‘일’이 없어진다!

일중독 경영자? 모든 일을 자신이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완벽주의 경향, 다른 사람 불신, 조직 사기 저하!
중독조직, 중독사회
틈새증후군? 하루 4시간 수면 대기업 청수? 빈 스케쥴에 안절부절 못한다!

#일중독과 소비중독을 동시에 권하는 사회
일중독을 부채질하는 사회, 중독은 일종의 질병이다. 영원한 불만족 상태, 결과 중시하기에 통제만능주의에 빠지고 거짓말이나 조작도 잘 한다.(황우석 교수 사태)

#건설 마피아와 집단적 성장중독증
개발development? 정책적 개념 정립한 트루먼 대통령
‘저개발’ 지역 ‘개발’한다는 아이디어, 개발의 이미지는 긍정적이고 역동적 이미지로, 저개발은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이미지로 고정된다
후진국? 돈벌이를 위한 제국주의의 산물

평화? 세계 원주민들의 경우는 “그냥 내버려두어지는 것”을 평화라고 보는데도(이반 일리치) 마치 대부분의 우리들은 전쟁이 없는 상태 또는 전쟁을 예방하기 위해 모두 잘 살게 한답시고 개발을 서두르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개발주의는 어떤 면에서도 보아도 ‘위로부터의’ 프로젝트다.

[일본, 허울뿐인 풍요] 저자 개번 매코맥의 말대로 ‘토건 마피아’

#7 일중독 벗어나기
가장 먼저 중독증 환자 스스로 자신의 병을 ‘인정’해야 하며 동시에 주변 사람들(가족,동료)도 이 병의 진단과 인정, 치유에 동참해야 한다
조직적 차원의 질병은 결코 개인적으로 극복할 수 없다. 따라서 조직적 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삶의 건강성과 자율성을 회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조화로운 삶의 공식? 4-4-4!,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제)

자본주의 자체가 중독을 먹고 산다! 일중독은 자본의 산물이자 토대이기도 하다.

사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일에 끌려 다니는 질병인 일중독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갈수록 대중화 또는 보편화하고 있다.

결국 자본주의 경제 원리의 근본적 변동없이 불가능한 것이다. 결국 가치관 변화와 구조적 변화가 함께 상승 작용을 하며 대안의 실현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

일-여가-놀이의 통일을 추구하는 야마기시 공동체, 자본주의 문명을 거부하며 손노동과 검소함을 중시하며 살아가는 아미쉬 공동체 등이 가장 대표적이다.

니어링&스코트 부부의 조화로운 삶의 지혜? 4-4-4 시간제,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vity

‘나부터’ 먼저 ‘올바른 한 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폴 라파르그의 [여유로울 권리]
자본주의 문명이 지배하고 있는 모든 나라 노동자계급은 한 가지 중독증에 걸려 있다. 이 중독증은 다름 아닌 노동을 사랑하는 것이다(일중독)

노동할 권리를 혁명의 원칙으로 선언한 프랑스 혁명? 프랑스 프롤레타리아의 수치다!

모든 시도의 출발점은 일중독의 존재 자체를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다.
자발성과 생동하는 연대에 기초한 모임, 각자 모두가 중심이고 주인. 자립성과 독자성을 유지할 수 있는 토대.
사회적 병리를 치유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어가는 데도 중요한 통찰력을 주고 있다. 특히 대안 사회를 꿈꾸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는 개인과 조직들에 많은 시사점을 던지고 있다.

기적의 도서관 | 살아 있는 건축 이야기

기적의 도서관. 정기용.p341

순천기적의 도서관/제천기적의 도서관/진해기적의 도서관/제주기적의 도서관
도서관은 살아 있다. 건축은 살아 있는 유기체다

상상력 넘치는 공간의 시인,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비저너리, 공적 가치를 세우는 일이라면 망설임 없이 헌신하는 공익 근로자? 정기용!
공간의 시인, 비저너리, 공익 헌신 3박자? 바보의 조건(세상을 바꾸는 비이성적인 사람들)

“도서관을 이렇게도 지을 수 있구나”

한 살짜리 꼬맹이들도 안방에서처럼 기고 뒹굴고 놀 수 있는 어린이 도서관? “가능하지요”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어른들은 우리들이 어린 아이들을 잘못 교육시키고 있다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그런데 빠른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계속 세상이 바뀌기만을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빨리 자라나기 때문이다. 기적의 도서관이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사회적 효과는 간접적으로나마 아이들 스스로가 교육개혁을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서가에서 꺼내 창가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하는 그 순간, 그것이 바로 교육개혁의 시작이다.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하고 싶은 것을 방해받지 않고 자유롭게, 즐겁게,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는 것은 교육개혁을 앞당기는 일이기도 하고 어린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행복한 교육개혁, 어린이들에게 햄버거나 콜라가 아닌 상상 속의 꿈을 먹고 살게 하는 공간…기적의 도서관은 어른들이 마땅히 해야 할 해묵은 숙제이기도 하다. 어른들이여, 어느 기적의 도서관에나 아이들이 많을 때 조용히 방문하여 30분이라도 머물러 보라. 그곳에서 여러분들이 잊고 있었던 어린 시절의 행복과 불행을 눈물겹게 만날 것이다.

*다락과 토굴, 여기저기 숨는 공간들(최고의 놀이터는 자연)
자유로운 상상과 엉뚱한 몽상이 아니라면 무엇이 아이들을 키울 것인가? 자유로운 상상과 놀이의 시간을 철저히 빼앗기고 있는 지금 이 땅의 아이들에게 그런 자유의 시간, 숨 돌릴 시간, 몽상할 시간을 되찾아 주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
아이들 교육은 사회가 분담해야, 어린이 도서관은 사회적 기본 시설, 공동체를 일구는 풀뿌리 운동의 중심부

한국형 어린이 전문 도서관? 위대한 아줌마들의 힘! (그들의 실질적 체험과 생생한 이야기들)

진정한 지식인이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는 사람이다(Happiness is when what you think, what you say, and what you do are in harmony-간디)

[대담-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나다] -도정일

“책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이 마음 넣고 책을 보게 할 의무가 우리들 어른들한테 있다”

문화풍경을 구축하는 인문학 건축가
교감과 깨달음의 창조적 만남들

어린이 전용 도서관 설계? 그것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부를 해야 한다!

새로운 사회디자인? 새로운 건축을 위해 해야 할 일은 결국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곳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협치의 건축
그렇다. 모두가 하나같이 동의하고 공유하는 가치에 대하여 사람들은 크게 힘을 모아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주체가 다시 살아나고 올바른 이성과 결합하는 순간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엉뚱한 상상력? 그런데 이상하게도 스케치를 해놓고 느낀 것은, 도서관이라고 하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책상과 공상이 그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옥외공간도 ‘하나의 책’과 같이 고안

재미있는 것은 어느 한 순간도 각 지역의 조사관들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미리 예측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짧은 시간에 쫓기면서 순간순간 선택된 결과들이 나의 생각을 앞서간 것이다.

*공문서와 같은 공원
급조된 도시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도시다운 매력이 없다. 모두 농지 위에 신축하여 말쑥하기는 하지만 영혼이 없다.
신도시는 현대적?이고 고만고만한 box글의 초라한 나열인데 그 가운데 공원에 심은 소나무들이 불쌍하다

개념이 없이 그어진 획일적인 단지계획은 새 도시를 단조롭게 만든다

조그마나마 차이를? 새로운 건축 풍경!

*자기 집같은 도서관? 자유로운 자세의 자유로운 독서! 책도 만나고 세상도 만나고
천방지축인 아이들, 앉아서도 옆구리에서 책을 보고, 가장 편안하고 거침없는 자세로

아이들을 어른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게 기적의 도서관을 만드는 의의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최대한 자유롭게 책을 만나게 하고 그들의 잠재력과 상상력에 마음껏 집중할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어른들이 진정으로 바래야 하는 것이고 또한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강요된 교육 공간이 아닌 완전 해방된 공간
지금같이 어린 아이들을 어른들이 만든 제도와 법칙에 따라 요리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이 기적의 도서관의 목적이자 이 시대의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해야 되는 윤리이기도 하다

사회화 과정을 익히는 공간? 아이들이 자유롭게 선택하고 생각하게 하고 눈치 보지 않고 행동하게 하는 것(새로운 시작)

다락도 사라지고 지하철도 사라진 아파트의 단층으로 된 공간 속에서 아이들은 또다른 공간의 깊이와 높이와 크고 작은 체험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 도서관’? 건축을 종결짓는 것은 결국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대한민국 어디에서나 무조건 새것만 좋다는 생각, 신도시, 공문서와 같은 공원

한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협력하여 건축에 투영하고, 그것을 모두가 동의하고, 그 가치를 공유할 때 건축은 ‘문화’가 되는 것이다(모두가 참여하는 올바른 사회디자인)

건축은 주변과 관계를 맺는 일이다
보통 사람들의 시선은 늘 정확하여서 자로 재지 않고도 눈에 거슬리는 건물을 식별할 줄 안다(보통 사람들의 보편적 본능)

현란한 원색? 어른들이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어린 아이들 색’일 뿐이다!
사람과 책이 형상이라면 건축은 배경이다

#자기모순과 만나다
건축가들의 모순?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건축의 모든 것을 지금 결정해야 한다
자기가 설계한 집에 살지 않는다
심혈을 기울여서 설계한 건물 곳곳에 어린 아이들과 어머니들이 예기치 못한 태도와 자세로 책을 보고 만나고 하는 모습들은 상상상했던 것을 넘어서고 있었다

건축가인 원래 구성한 대로 다 실현되지는않는다. 그렇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제주 기적의 도서관은 아쉬운 점이 너무 많다.

“소나무를 베지 않고 설계하겠다”

나는 “소나무를 베지 않고 설계하겠다”고 말했고 사람들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지 의아해했다(서귀포 기적의 도서관)
건축은 늘 나무를 필요로 하지만 나무는 늘 건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때로는 ‘태도’ 또는 ‘관점’이 건축을 결정하기도 한다
자연 속에서 건축을 할 때 우리가 우선 건축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것은 시청과 같은 관이 아니라 자연이다. 우선 자연에게 물려주어야 한다.
자연 속에서 색이란 시간과의 함수관계에 있다. 자연의 색은 계절 따라 시간 따라 날씨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일정하지가 않다(자연과 어울리는 색? 솔이 생각은 ‘거울’색!!!)

책을 꼭 지식으로만 습득하지 않고(제도적 공간) 상상력의 날개를 펴고 여행을 떠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조성되어 있어야 한다

“건축은 살아 있는 유기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짓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그 건축물이 계속 살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세상을 치유하는 방법 중 도서관이 제일 약효가 좋더라’ [Heal the world]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 소박한 삶의 행복

플러그를 뽑은 사람들. 스코트 새비지. p270
The Plain Reader

궁극적으로 이 책은 기쁨에 관한 책이다. 막 읽고 난 뒤에는 절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다음 순간 당신은 당신 삶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해낼 것이다.

문명의 근본적 위기! 어떻게 살아야 하나? 생활의 틀을 바꿔야 한다(생태적인 발상은 전복적 사고다!)

가난하지만 영적으로 부유한 이들의 이야기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정기구독자 수의 증가를 스스로 거부하는 잡지? < 플레인Plain >, 정기구독자 5천명? 타자를 치고, 판형을 짜서, 손으로 찍어내는 잡지!

러다이트(기계혐오자)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
실천적 뿌리에서 우러나오는메시지는 ‘어땋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목소리로 남을 것이다
현대 기계문명의 속도지상주의에 반대하는 사람들

“제리와 저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미래로 빠져나가는 길을 택하겠습니다”(오래된 미래)

어머니까지 떼어놓게 만드는 사회제도, 우리가 있어야만 할 곳? 가정!
매일 책상 앞에 앉아 있느라 우리는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스스로 활기차게 몸을 움직여 일하는 것만이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회사에서 일하느라 누릴 수 없었던 엄청난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는 어린 시절이 지나기 전에, 우리 역시 너무 나이가 들기 전에 이런 일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삶을 근본적으로, 또 급진적으로 바꾼 사람들의 사연이 일주일이면 수십 통씩 쌓인다

소박한 삶을 위한 모임‘, 우리가 지향하는 소박한 삶에 이르는 과정에서 발견한 여러 놀라운 사실이 기존의 인쇄매체에서는 잘 소개되지 않는다고 생각해 잡지를 창간하게 되었다.

우리는 되도록 느리고 조용한 방식으로, 컴퓨터 대신 사람의 손을 이용한다. 그 결과, 직접 세심하게 양질의 책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노동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삶의 방식을 바꿀 용기
텔레비전의 플러그를 뽑는다면, 내리막길로 달음박질치는 현대 사회에서 벗어나 용기 있게 뒤로 첫 발자국을 뗀다면, 그 현명한 선택에 대한 보답으로 상상하지도 못한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점에서 소박하게 살겠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우리와 관계를 맺는 사람이나 장소, 물건의 지극히 사소한 부분들까지 다시 배워야만 한다는 뜻이다

Virtual? ‘완전히 같지 않음’을 뜻한다(가짜, 사이비)
아미쉬 같은 공동체를 그저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자신들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기 때문에 서로 겸손하게 연대할 수 있는 있다.
불완전함을 메우기 위한 방편?공동체!

전원 플러그를 뽑는 일만으로도 우리 삶을 억세게 구석에는 이 기계처럼 조직화된 문명의 손아귀에서 간단하게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때, 희망의 근거가 생긴다. 우리와 기계화된 조직 사이의 연결고리를 끊음으로써 우리의 에너지가 기술 세계로 공급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현대 문명의 힘은 은 우리에게서 비롯된 힘이다)

희망으로 풍만한 세계? 뒤집혀진 게 아니라 실은 그게 제대로 된 세계였다!

우리가 고용의 속박에서 벗어나려면 상호존중, 상호부조, 공동체가 필요하다

제한 없는 기술 개발은 또한 제한 없는 권력을 낳는다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삶의 모든 것이 되었다
우리 논밭 한가운데로 아무런 필요도 없는 고속도로가 건설!
저는 사유나 정치 운동을 통해 이 상황에 대처하기보다는 개인적 결단으로 맞서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경제적 독재 체제라면 공장 시스템으로 생산되는 계란의 독점 체제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자기가 먹을 계란을 직접 생산할 수 있습니다. 만약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먹기에 충분할 만큼의 계란을 가질 수 있다면 먹을 거리를 독점하고 생기는 권력은 분쇄될 것입니다.”

언제나 무엇이든 지금 시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공동체라는 오래된 외투와 같다? 없어진 다음에야 불편함을 느낀다!

시골에서 일하는 느낌? 자발적으로 일하는 것!
저는 신성한 노동이 있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을 즐기는 공동체 문화로 돌아왔습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가정? 우리 집은 이것들을 가질 자유보다는 이것들로부터의 자유가 더 필요했습니다.
손수 꾸리는 살림, 우리 마음대로 많은 것을 결정, 우리는 소비주의로부터 한층 더 자유로워졌습니다!
사회 기술자 양성소로 변질? 공교육 역시 우리가 거부하기로 결심한 것 중 하나!

가정? 우리에게 가정이란 일하는 곳, 엄청나게 높은 수준의 생산성을 만들어내는 거치 있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산부인과 강의? 임신은 일종의 병? 임신과 출산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과정!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검사를 하고, 두렵기 때문에 우리는 더 많은 정보를 모은다. 더 많은 사실을 알수록 더 많은 통제력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통제할 수 없는 것들까지 통제하려드는 시도는 무서운 시나리오로 우리를 이끈다. 이제 이 나라의 임산부들 대부분은 최소한 한 번 이상의 초음파 검사를 받는다(아직도 검증되지 않은 초음파 검사, 의학적으로 필요한 경우만 사용 권고 사항!)
그런 불확실한 검사를 받아야만 한다는 것 자체가 이 문화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죽음과 삶이라는 사실을 방증하는 일이다

하지만 모두들 함께 일한다면 어려울 것도 없다. 만약 이 모든 일을 혼자서 해야만 했다면 농사를 짓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먹을 거리를 누가,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재배했는지 알 수 있도록 생산자와 관계를 맺는 일은 정말로 대단한 선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모이는 시장은 지역에서 생산된 신선하고 몸에 좋은 먹을 거리를 나누는 일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우리에겐 많은 사람들과 서로 연결되는 사회적, 문화적 행사장인 셈이다.
공동체 문화가 없는 능률? 슈퍼마켓이 지닌 능률이라는 것도 대부분은 환상에 불과하다(흙과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유대관계가 사라진다는 측면에서 오래 지속될 리 만무하다)

#적게 벌고 많이 존재하기
돈은 쉽게 변하고 불안정하지만 때로는 엄청난 힘과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가게나 농부를 망하게 하는 ‘더 나은 거래’? 값싼 게 좋다? 낮은 가격은 때로 엄청난 비용을 동반한다(사회적 비용 전가)

화폐의 가치는 같은 시간과 같은 장소를 공유하는 한 지역 안에서 결정되어야만 한다(지역 화폐, 뉴욕과 인도 시골 마을에서 1달러의 가치는 완전히 다르다)
세계화 상인들이 행하는 착취! 공동체 안에서는 화폐가 일관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

노동의 교환? 기꺼이 수고를 나눌 수 있는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깨닫게 돼 절로 감탄이 흘러나왔다

정보 초고속도로에는 그다지 숭고한 목적이 없다? 이제 모든 사람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악다구니를 쓰는 온갖 소음을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라디오? “녀석은 더이상 말하지 않는단다. 이제 우리가 말하면 돼.”
라디오를 듣지 않는다는 것은 실제로 세계와 지역의 사건들에 대해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뜻한다.

필수품이든, 사치품이든, 일을 덜어주는 곳이든 그런 물건들 없이 살겠다고 결심했을 때 상상했던 것보다 우리의 삶은 훨씬 더 풍요로워졌다.

만약 이제까지 살아왔던 삶의 관성을 멈추고 싶다면, 그렇게 하라! 모든 공동체에 대안이 존재한다

#삶의 방식을 바꿀 용기
머리로 아는 지식도 필요할 때가 있지만, 대부분 손바닥에 조금은 굳은살이 박이는 게 한결 낫다

#당신의 아이가 정말로 원하는 것
훌륭한 장난감들이 많긴 하지만 필수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좋은 장난감이란 상상력과 함께 할 때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한다.
교육과정에 소모되는 낙담한 아이들의 마음? 이런 교육과정 때문에 많은 아이들은 평생 멍청하고 열등한 사람으로 살아가야만 한다

수많은 일상의 기적들 무시? 가을 길가에 줄지어선 나무들의 아름다움은 알아차리지 못하고 가을 단풍을 즐기기 위해 떼를 지어 4백 마일이나 떨어진 국립공원까지 차를 몰고 가는 우리 동네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을 가르칠 시간
이젠 누구나 알다시피, 달에 가는 일은 정말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정규 교육은 이제 중단없는 소비를 가르치는 ‘교회’로 바뀌었다

#어린 시절을 삭제해도 되겠습니까?
아이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이 예전에는 정교하고 세밀했는데 이제는 대개 조잡한 수준의 인공물로 대체되고 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아이들은 우리가 주는 모든 물건을 통해 배운다
아이들이 컴퓨터를 사용해야만 더 확장된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막연한 추측의 댓가로 포기해야 하는 것은? 컴퓨터들이 어린 시절에서 ‘delete’하는 다른 모든 차원과 경이로움!

Plain? 검소한, 소박한, 철저한
Plain People‘? 미국 아마쉬
반테크놀로지-반세계화 운동가적 기질
‘몸을 움직여 먹고사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왜 우리는 예전 사람들처럼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직장에 다니지 못하고 한 시간이나 자동차를 놀고 가야먄 하는가?
현대 사회가 말하는 편리함은 사실은 편리함이 아닌 것이다. 시간을 단축시켜준다는 컴퓨터는 오히려 시간을 더 빼앗았다.

미국의 청학동 사람들, 텔레비전은 물론 라디오까지 듣지 않는다!
텔레비전과 라디오는 여가 선용이나 정보 습득보다 소비사회를 유지시키기 위해 존재한다
술이 덜 깬 몽롱한 정신? 모두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아무런 의심없이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인가. 우리에게 의심을 품을 수 없게 만들고 있는 장본인은 바로 미디어다

왜 그런가? 숨가쁘게 돌아가는 이 궤도에서 이탈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최고가 되어야 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 하니까 끊임없이 달리지 않으면 비참한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미디어에서 떠들어댔기 때문이다.

평균적인 한국의 직장인들은 인간 이하의 삶을 살면서도 그 사실을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모두 소중하고 인간갑게 살 권리가 있음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상당히 위험한 책이다. 하지만 그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들에게는 지극히 실용적인 매뉴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