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 라이프 | 행복한 공존

슬로 라이프. 쓰지 신이치(이규).p303
우리가 꿈꾸는 또 다른 삶

새로운 세계의 입구에서
당신은 이제 새로운 세계의 입구에 서 있다!
우리는 돈, 효율, 경제성장 같은 것을 우선시하는 사회에 살면서, 삶의 사소하고도 당연한 즐거움, 아름다움, 편안함 등으로부터는 멀어졌습니다. 이와 같은 ‘패스트 라이프’를 돌아보면서 이제 인생에 있어 ‘가치의 우선순위’를 바꿔놓기 시작한 당신은, 이미 새로운 삶의 국면을 위한 중요한 키워드를 포착한 것입니다.(플립, 거꾸로 희망)

아무도 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꽃은 작고, 들여다보는 일에는 시간이 걸리니까.
그렇다. 친구를 사귀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조지아 오키프

#슬로 라이프_느리고 단순한 삶은 우리의 마지막 선택이다
속아서는 안 된다. 매스컴이나 대기업이 말하는 ‘슬로 라이프’를 떠받치는 것은 다름 아닌 대량 생산•대량 소비•대량 폐기의 ‘패스트 이코노미’다( 미국형 ‘여유로운 전원생활과 주말의 아웃도어 라이프’)

이제까지의 돈벌이는 전쟁이라든가 환경 파괴 같은 것을 모두 정당화하는 더러운 게임이었다(선악에 대한 구별이 없는 GDP)

은퇴 후의 느긋한 삶을 위해 지금은 맹렬히 일한다? 먼저 각자가 ‘지금 여기’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뺄셈을 시작하여 서서히 줄여가는 길밖에는 없다!

#걷기_슬로 라이프의 첫걸음은 산책을 되찾는 일이다
그냥 발길 닿는 대로 걷는 산책
한쪽에 더 빨리 효율적으로 도달해야 한다는 목표가 있다면, 다른 한 쪽에는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무엇이든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인간의 존재 방식, 본질적인 시간의 사용 방식

#방랑-진정한 풍요를 위해 물질과 돈에 의지하지 말자
나나오의 시는 발로 쓴 것이다
그의 건강 비결은 소식이다. 대변은 언제나 말끔하게 끊어져 화장실 휴지가 필요 없을 정도다. 80세인 지금도 매일 산길을 10킬로미터 이상 걷고, 겨울에는 눈이 많은 곳으로 가서 설피를 신고 걷는다.

‘경쾌하고도 믿음직스러운 경제 사회로 나아가는 길’(10가지 조항)
4.허영과 낭비의 상징인 과대 광고를 거부하자
5.최대의 낭비인 군국주의에 연관되지 말자
7.새로운 생산과 유통 시스템을 시도하자
10.야생을 향한 첫걸음-잘 웃고 자주 노래하고 잘 놀자

#근면-게으름_생각해보자, 누구를 위한 근면인지…
일의 내용보다는 일한다는 것 자체만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역사적으로 볼 때, 과거에는 생산물을 힘으로 빼앗은 지배자들이 생산자들에게 노동의 존엄성이라는 도덕을 강하게 심어줌으로써, 착취구조를 은폐하려고 했다고 러셀은 지적한다. 생산자들의 노동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지배자들의 생활을 지탱시킨다는 사실이, 노동의 존엄 사상을 통해 가려진 것이다.

#패스트 하우스-슬로 디자인_입고 먹고 사는 일 모두를 다시 디자인하기
과거의 집이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이 직접 만들어 나갔던 공간이다. 하지만 오늘날 주거 문제에서 전문가 집단의 독점 지식이나 기술, 기계에 의존하지 않을 수 없는 우리들은 그 문제에 대해 완전히 수동적일 수밖에 없다.(주거의 맥도날드화)

음식과 주택 모두 우리 문화의 근간이다
윌리엄 맥도너에 따르면, 환경 위기란 ‘나쁜 디자인’을 뜻한다. 이제까지 디자인이라는 말과 환경문제 사이에 일련의 관계가 있음을 알아차린 디자이너는 그리 많지 않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이반 일리히

#맥도널드화
중요한 점은 식품을 제조하는 쪽뿐만 아니라, 그것을 먹는 소비자 쪽의 식생활에도 중대한 결함이 있음을 인식하는 일이다. 음식 문화의 쇠퇴나 그에 따른 식습관의 왜곡에 대해 우리들이 지닌 위기 의식은 놀라울 정도로 아직 일천하다.

음식 문화가 빈약해지고, 식습관이 왜곡됨으로써 화학물질에 오염된 식품이 활개를 치게 된 것이다(슬로푸드?문화 재생의 노력없이 ‘식품의 안전’은 있을 수 없다)

#반세계화_세계는 상품이 아니다
슬로 푸드는 새로운 외식 아이템? 그런 이들은 지금 전 지구적 물결을 이루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의 중심에 슬로 푸드가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다.
조제 보베(보베와 아홉 명의 동지들,’미요 10′)

우리에게는 자유무역이나 값싼 음식물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공동체, 문화, 미각, 일 그리고 자연이라고.-쓰지 신이치, [슬로우 이즈 뷰티풀]

#슬로 푸드_우리는 맛있는 음식을 천천히 먹기 위해 세상에 태어났다
슬로 푸드 선언(http://www.sliwfoodkorea.com)
슬로 푸드 지지자들은 음식을 즐기는 쾌락주의자들이다. 금욕주의만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지켜낼 수 없다!(즐거운 불편)

“다소 거창하게 말한다면, 슬로 푸드란 입으로 들어오는 음식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천천히 되묻는 작업이다…”-시마무라 나쓰진, <슬로 푸드적 인생!>

오늘날 미국과 전세계 사람 대부분은 비자연적인 음식에 길들여지고, 그런 음식을 남용한다.
‘저장된 썩은 것’을 먹느냐 ‘밭에서 갓 따온 싱싱한 푸성귀’를 먹느냐의 선택권은 우리에게 있다.-[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생산한다-기다린다_우리는 생산자가 아니라 대기자일 뿐이다
먹는 것은 환경문제의 중심 테마다(음식은 살아 있다!)

“현대사회는 몇 가지 아주 치명적인 오류를 안고 있는데, ‘생산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신념이 그 중 하나이다.”-E.F. 슈마허 <작은 것이 아름답다]

농사를 짓는다는 건 작물의 시간을 함께 살아내는 일이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주는 일에 다름이 아니다. 기다림을 뺀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슬로 푸드란 먹을거리를 통해 ‘기다리는 일’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이 아닐까)

#농업-농사_농업이 잃어버린 생명의 시간이, 농사에는 아직 흐르고 있다
농업!=농사? (농사는 산업이 아니다)

#씨앗_종자를 보존하는 일은 생태계를 지켜 내는 일이다
반다나 시바는 다국적기업에 의한 종자의 독점이 인류가 현재 직면한 최대의 위협이라고 한다.

#잡일_잡스러움을 허용하지 않는 삶은 공허하다

#슬로 러브_사랑이란 본디 시간을 포함하는 일이다
육아.사회화.교육 등은 모두 시간이 걸리는 느린 과정이다. 효율화? 그것의 본질을 훼손하는 수밖에 없는 ‘가장 비효율적인 프로세스’일지도 모른다!

#공포-안심_공포라는 산의 정상에 안심은 없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사회에도 얼마나 많은 공포들이 가득 차 있는가. 미디어는 그러한 공포를 선동하고, 한층 더 부풀려진 그 공포 위에 날로 번성한다.
미국의 경우, 총기 규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폭력에 대한 스스로의 방어가 불가능한 데 따르는 위험을 주장하면서 공포를 부추킨다. 그 공포 너머 저편에는 분명 평화와 안심이 있다고 말한다.

핵무기 경쟁? 더글러스 러미스에 따르면, 애당초 경쟁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본적인 정서가 바로 공포다.

안심은 방심의 근원, 자기만족은 자기 타락의 시작, ‘지금 여기‘는 뛰어남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소비행위는 타자와의 경쟁이며, ‘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자신과의 경쟁이다.

보험을 통해 안심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공포를 누그러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지금 여기’를 부정하고 축소시키면서 ‘장래’를 계속해소 사들인다. 공포를 이용한 ‘사업’은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공포? 사색은 없다? 그럴 경황이 없는 것이다. 경황조차 없는 긴박함과 절박함을 갖추어야만, 바로 그것이 공포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현대사회가 바로 공포의 체제인 듯하다. 거기서는 돈으로 안심을 사들이고, 경쟁에서는 무조건 이겨야 한다. 일종의 ‘의자 빼앗기’ 게임과도 비슷해서, ‘더 많이, 더 빨리’라고 외치며 늘 앞으로 고꾸라질 듯한 아슬아슬한 자세로 영원히 얻을 수 없는 안심을 뒤쫓고 있다. 그것이 숨가쁘게 돌아가는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다.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단다.
씨앗을 뿌리는 사람이 걷는 속도로
걸어서 가면 된단다.
-기시다 에리코,<남쪽의 그림책> 중에서

그렇다. 씨앗이 자라는 속도를 넘어선 곳에는 공포만 있을 뿐, 안심은 있을 수 없다!

#편리함-즐거움_편한 것이 반드시 즐거운 것은 아니다
‘편리교’, 편리함의 가장 큰 문제는 공해와 환경 파괴다(즐거운 불편)

#GDP_선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지출 총액일 뿐.
경제성장의 신화? GDP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화폐의 흐름이나 지출 총액뿐이다. 그곳에는 마이너스 부호란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을 희생하고 ‘더 나은 미래’를 목표로 계속 달려 온 우리들은 어느 틈엔가 그 미래마저도 저당잡혀 버리고 어리둥절해 있다. 이제 우리는 서서히 깨닫는다. 경제성장이라는 것이 실은, 비경제성장이었음을.

#슬로머니_왜곡된 경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또 하나의 돈‘이 필요하다
공동체? 이미 화폐 경제 안에서 와해되거나 공동화되고 말았다!

#개발_봉우리를 억지로 꽃피우고 아이를 빨리 어른으로 만드는 것이 개발이라면?
세계화는 결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새로운 빈곤
빈곤은 사람들이 시장에 의존하는 정도가 크면 클수록 더 깊어진다

#지구 온난화-멸종_경제 시간이 생태계의 시간을 앞질러가다가 생긴 이상 현상
이산화탄소 가스 배출속도가 동화•흡수하는 지구의 느긋한 속도보다 빨라서 생긴 이상 현상

#생명 지역_내 발밑의 땅아 살아 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대체 가능한 인간? 그들에게 자연이란 그저 대체 가능한 자원에 불과하다

#슬로 워터_우리는 지구의 물을 빌려 쓰고 있을 뿐

#흙_흙과 오랜 세월 사귀어 온 작물로부터 그 태평스러운 사귐을 배우자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표토의 유실은 새로운 토양을 형성하는 자연의 속도를 뛰어넘으며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슬로 타운_속도를 늦추면 눈앞의 풍경이 달라 보인다

#있는 것 찾기_없는 것 애달파하는 대신 있는 것을 찾자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이곳에 없는 것’에만 향해 있었다
‘분발하지 않기 선언’

#원주민 달력_자연의 시간에 인간의 삶을 순응시키자

#유전자 조작-딮 에콜로지_인간만을 위해 존재하는 생물은 지구 어디에도 없다

#빠빠라기_우리는 쓰고 남을 만큼의 충분한 시간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인디언 타임_중요한 건 시계가 아니라 상황과 형편에 따른 배려다

#신체 시간_왜 그렇게들 서두르지? 그래 봐야 빨리 죽는 것밖에 더 없는데…

#비폭력_인간 중심의 사고야말로 폭력적이다

#민주주의-슬로 폴리틱스_속전속결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투표권? 직접 참가라는 의미는 풍화, 어느새 ‘남에게 맡기는 일’이 되어 버린 듯하다

#전쟁_낭비 애국주의 결정판!

#진보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들은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실은 자기 자신이 없습니다

#놀기_헛되기 때문에 비로소 충실해지는 것

노는 아이들의 소리는 우리의 영혼까지도 뒤흔들어 놓는다

‘가난한 사람들은 존재하지만, 가난은 존재하지 않는다’(에도 시대 외국인에게 비친 일본)

#플러그-언플러그_시스템에서 플러그를 뽑고, 공동체에 플러그하기

#비전(력)화_아주 조금만 불편해질 용기를 가져 보자
에너지와 화학물질의 과도한 사용

#텔레비젼_남의 욕망이 아니라 내 욕망을 들여다 볼 것
광고? 불필요한 것을 필요하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 광고다!

#자동판매기-물통_나쁜 디자인 vs 좋은 디자인

#자동차_이 속도가 절약해 준 시간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테크놀로지의 사명? 시간 절약!
시간 감소가 아니라, 더 먼 거리를 주파!
고속도로 건설 비용? (보조금! 자동차의 숨겨진 가격!)

전통적인 잡곡식의 부활은 세계 각지의 식량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커다란 도움이 된다

푸드 마일리지 1위 일본 약 5천억(톤/킬로미터), 2위 한국 1천 500억, 3위 미국

#뺄셈의 발상_덧셈은 시시하다 뺄셈은 짜릿하다

#지역통화_보이는 돈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돈
이자가 붙지 않는 돈! 살림의 경제
John Lennon’s Imagine
‘또 하나의 돈’은 그러한 상상력을 우리 안에서 키우기 위해 필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에코 투어리즘_여행지의 시간을 나의 시간으로 파괴하지 않기

“위대한 모험이란, 같은 얼굴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것을 발견해 내는 일이다”(알베르트 자코메티)

#쉰다_목적의 세계로부터 벗어나기. 그곳만으로도 충분한 것
빈둥거리기

슬로 라이프? 영혼회복, 영혼을 자유롭게 뛰놀게 하는 일!

#촛불_가끔씩 어둠을 아름답게 되찾아 보자
전기를 끄는 일은 무엇보다 어둠을 되찾는 일을 의미한다

#우리는 천천히 살기 위해 태어났다
우리의 무지를 일깨우고, 다 함께 우리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자고 권유한다

‘지금 여기’를 충분히 음미하고 즐기면서, 느릿느릿, 그리고 어슬렁어슬렁 삶의 기쁨을 맛보자!!

국가란 무엇인가 | 진보정치

국가란 무엇인가. 유시민(@u_simin). p287

훌륭한 국가 없이는 훌륭한 삶을 살 수 없기에, 사람들은 묻고 시도하고 좌절하고 또 도전한다. 도대체 국가란 무엇인가? 누가 국가를 다스려야 하는가? …대한민국을 더 훌륭한 국가로 만들려면 국민은 각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정치를 통해 이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은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가? 나는 이런 의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다. 이 책은 오늘의 시점에서 내가 찾은 대답이다. 이 대답이 옳을 수도 있고 옳지 않을 수도 있다…국가에 대해서는 절대적 진리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다만 사람들과 더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

바람을 거슬러 나는 새들에게

“훌륭한 국가 없이는 시민들의 훌륭한 삶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훌륭한 국가에서 살고 있는가? 흔쾌히 답할 수가 없다.

우리 삶에서 훌륭한 나라에서 태어나 살고 후손들에게 더 훌륭한 나라를 물려주는 것만큼 가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모든 종류의 위험에서 시민을 보호하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행동하는 국가”가 훌륭한 국가라고 생각한다(정의,공정사회)

#1 국가란 무엇인가1-합법적 폭력
주권자의 어떤 행위도 백성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한다. 입법권과 사법권, 전쟁선포권도 모두 주권자의 것이다. 주권은 분할할 수도 없고 견제를 받아서도 안 된다. 주권자의 명예는 백성 전체의 명예보다 위대하다. 주권자 앞에서 백성은 태양 앞의 별빛과 같다.-토마스 홉스,[리바이어던]

남일당 빌딩에 나타난 국가-’용산 참사’, 이 비극을 불러들인 책임은 누구에게? 국가!

국가는 그들을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도시게릴라’로 취급했다. 그날 그곳에서 죽어간 시민들에게 국가는 무엇이었나?

1)국가가 해야 할 일을 했다
2)국가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3)국가가 원래 그런 것
4)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국가는 무엇을 하는, 또는 무엇을 해야 하는 존재인가?
이 간단한 질문을 두고 수천 년 동안 동서고금의 철학자들이 상충하는 대답을 여럿 내놓았다.

1)국가주의 국가론(합법적 폭력)- 토마스 홉스
2)자유주의 국가론(공공재 공급자)-존 로크, 애덤 스미스, 하이에크. 오늘날 모든 문명국가의 자유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보수적 국가론
3)마르크스주의 국가론(계급지배의 도구)-진보주의
4)목적론적 국가론(정의수호)-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리바이어던, 국가의 탄생
국가의 기원? ‘사회계약’
자연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 국가 창조! 국가는 평화와 안전을 지속적으로 인민에게 제공함으로써 신약을 이행한다. 물론 그런 신약이 실제로 맺어진 적은 없었다. 현실에서 주권자는 곧 왕, 그것도 그냥 왕이 아니라 모든 권력을 독점하는 존제군주를 말한다.
국가는 ‘세속의 신’이다. 국가가 죽으면 세상은 자연상태로 돌아간다.

#만약 국가가 없다면-소말리아
소말리아의 근본문제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동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키아벨리위 통치술-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신민의 사랑을 받지는 못하더라도 미움을 사는 일은 피해야 한다

홉스의 국가론과 마키아벨리의 통치술은 잘 어울리는 이론서와 매뉴얼이다.

국가를 절대화하고 개인을 국가에 종속시키는 전체주의 체제는 언제나 현실적 또는 가상적 위협에 대한 대중의 공포감을 토대로 성립했다

#대한민국의 기원-한국전쟁
대한민국은 전쟁의 피바람을 마시면서 성장했다
다시 말하지만 분단국가 대한민국의 발생사는 홉스의 국가론과 너무나 잘 어울린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이 철학적으로 홉스를, 통치기술로 마키아벨리를 추종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가주의 국가론을 따르는 사람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사회질서유지와 국가안전보장이다.

자유주의 국가론이나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선호하는 사람들은 ‘이념형 보수’를 무식하다고 경멸하거나 시간이 흐르면 사라질 것으로 기대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현실과 희망사항을 잘 구별하지 못한 소치일 가능성이 높다.

#2 국가란 무엇인가?-공공재 공급자
인간사회에서 누구든, 개인이든 집단이든, 다른 사람의 행동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는 경우는 오직 한 가지, 자기보호를 위해 필요할 때뿐이다.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면, 국가가 그 사람의 의지에 반해서 권력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하다. 이 단 하나의 경우 말고는, 문명사회에서 구성원의 자유를 침해하는 그 어떤 권력행사도 정당화할 수 없다.-존 스튜어트 밀, [자유론]

#법치주의-통치자에 대한 구속
일부 권력자들의 심각한 오용 때문에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라는 개념이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 법치주의는 법으로, 법률에 따른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것과는 예나 지금이나 아무 관계가 없다. 법률과 형벌로 국민을 다스리는 데는 어떤 주의()도 필요하지 않다. 그것은 권력 그 자체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법을 만들 수 있는 힘을 필수요건으로 한다. 법을 만들지 못하는 권력은 권력이 아니다. 법치주의는 권력이 이러한 속성을 제멋대로 발현하지 못하도록, 권력자가 자의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만든 원칙이다.
헌법과 법률이 정한 한계를 넘어서 그 의도를 실현하기 위한 권력행사를 하지 말라는 것, 이것이 바로 법치주의이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처음부터 국가가 악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소극적 이론이었다.

홉스는 정치적 혼란 그 자체를 극복해야 할 악으로 보았지만, 로크는 항구적인 법률이 아니라 즉흥적이고 임의적인 명령으로 통치함으로써 혼란을 야기하는 권력의 형태가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자유가 너희를 풍요롭게 하리라-애덤 스미스

#국가와 정부는 다르다-루소
정부는 국가와 주권자를 연결하는 중계 단체일 뿐이다
자격이 없으면서 왕권을 찬탈한 사람이 폭군이다
폭군은 법률에 따라 정치를 하기 위해 법률을 위반하는 자이고, 전제군주는 스스로 법률 위에 서는 자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침해할 수 없는 자유-밀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소로
‘가장 좋은 정부는 가장 적게 다스리는 정부’-<시민정부에 대한 저항>(소국과민)
납세 거부, ‘시민의 불복종’, “사람 하나를 부당하게 가두는 정부 밑에서 의로운 사람이 진정 있을 곳은 역시 감옥”
악을 저지르지 않는 정부(자유주의적 색조를 띤 국가론)

#시장형 보수-자유주의
시장경제와 대의민주주의를 경제적•정치적 기본 질서로 채택한 모든 국가에서 지배적 담론

##3 국가란 무엇인가3-계급지배의 도구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조국이 없다
국가는 착취의 도구? 필연적 소멸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진실을 포착해 현실을 잘 설명한 이론이다. 그러나 이 이론을 전적으로 신봉하는 일은 무척 고통스러운 일이다. 이론은 근본적 사회혁명을 예고하지만, 현실은 결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 최고로 발전한 인간공동체
국가주의•자유주의•마르크스주의 국가론 어느 것도 모든 사람을 온전하게 만족시키는 대답이 되지 못한다. 이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 또 다른 관점 하나를 마저 검토해야 한다. 바로 ‘목적론적 국가론’이다

##4 누가 다스려야 하는가
사악하거나 무능한 지배자들이 너무 심한 해악을 끼치지 않도록 어떻게 정치제도를 조직할 수 있는가? 이것이 정치철학이 다루어야 할 올바른 질문이다.-카를 포퍼, [열린 사회와 그 적들]

#철학자가 왕이 되어야 한다-플라톤
국가가 무엇이며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람은 아무 목적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플라톤은 만물에는 모두 그 고유의 텔로스(telos,목적)가 있다고 생각했다. 플라톤이 국가의 텔로스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정의였다. 그러면 정의는 무엇인가?

#군자가 다스려야 한다-맹자
맹자는 군주를 민심의 바다에 뜬 배와 같다고 보았다. 물을 거스르면 배는 뒤집어진다. 백성은 무겁고 군주는 가볍다.

#악을 최소화 하는 방법-민주주의?
민주주의는 그야말로 교묘한 위선으로 잘 무장한 최악의 인물이 달콤하지만 실현할 수 없는 약속을 내세워 권력을 장악하는 중우정치로 타락할 수 있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런 결점 때문에 민주주의를 좋아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자는 대체로 이 문제에 관심이 적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선거는 어차피 지배권력 내부의 군력다툼일 뿐이다. 정치로는 사회를 바꾸지 못한다.(사회혁명뿐)

#5 애국심은 고귀한 감정인가

그런데 애국심은 다른 사랑의 감정과는 다르다. 사랑의 대상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국가는 폭력을 행사하는 조직이다…다른 어떤 사랑의 대상도 국가와 같지 않다.

국가는 배타적 공동체? 애국심이 성립하려면 사랑하지 말아야 할 외부의 대상이 있어야 한다!

#영원한 것은 조국뿐이다-피히테

애국심은 사악한 감정-톨스토이
인위적이고 유해한 감정, 자기 국민만 사랑하는 감정

함께 귀속되고자 하는 인민의 의지-르낭

자유주의자와 진보주의자들이 되도록 애국심을 거론하지 않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국가주의자와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다수 국민이 고귀한 감정이라고 생각하는 애국심의 사용권을 독점하도록 허용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람은 언어로 생각하고 소통한다. 민중이 고귀하다고 여기는 어떤 말을 빼앗기거나 넘겨주면 권력도 함께 넘겨줄 위험이 뒤따라온다.

애국심은 “국가라는 하나의 공동체에 함께 귀속되어 훌륭한 삶을 영위하고 공동위 선을 실현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6 혁명이냐 개량이냐

사회를 계획하고자 하는 가장 열망적인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로 계획할 수 있게 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계획을 조금도 인내하지 못하는 가장 위험한 사람이 된다. 성자와 같은 일편단심의 이상주의자로부터 미치광이 광신자까지의 거리는 단지 한 발짝에 불과할 때가 많다.-프리드리히 하이에크,

적어도 절반 정도는 ‘있는 그대로의 국가’를 적절하게 묘사한 이론? 마르크스
국가는 선과 악을 동시에 행한다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두려워하는 공동의 권력’이 있어야 한다

혁명의 조건? 사회의 근본적 모순을 민중이 인지/민중이 지배권력이 해결의지가 없다고 생각/폭력이 아닌 다른 모든 수단 행사

#사회혁명은 국가가 앓는 열병이다!
사회혁명의 한계? 인간 일반의 한계!
방만한 자본주의는 경제적 간섭주의에 굴복해야 한다

카를 포퍼의 ‘점진적 공학’

개량의 길이 봉쇄되면 혁명의 문이 열린다

케인즈의 이론을 알았단 몰랐든, 이 이론대로 행동한 사람이 둘 있었다? 히틀러(아우토반)와 루즈벨트(뉴딜 정책)

공통된 전체주의? 케인즈와 마르크스의 차이? 자본주의의 시한부 생명 진단 vs 영생 약속

#7 진보정치란 무엇인가

자연은 텔로스(목적) 없이는 아무것도 만들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목적이 있다…국가는 모든 인간공동체의 텔로스이며, 국가가 충분히 발전해 최선의 상태에 도달하면 최고의 선과 훌륭한 삶을 실현한다. 모든 학문과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선이다. 모든 학문과 기술의 으뜸인 정치의 선은 정의다. 정의는 특정한 사물을 평등한 사람들에게 평등하게 분배하는 것이다.-아리스토텔레스,

*인간은 모두 보수적이다-베블런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는 모두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제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정신적 태도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변화의 흐름을 인지하고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는 정도의 차이?)

보수주의의 핵심?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옳다”
진화의 법칙을 인간의 제도에 적용하면 “존재하는 것은 무엇이든 틀렸다”고 해야 마땅하다.

사유습성과 생활양식을 바꾸고 조정하는 작업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누구에게나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유한계급과 아무 관계가 없는 하위 소득계층의 유권자들이 보수적인 태도를 보인다? 너무 가난해서 보수적이다? 일상적 생존투쟁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한다!(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기존의 사유습성은 더욱 강력한 지속성을, 에너지는 점점 부족해져 보수는 생물학적 필연이다!

보수주의는 생물학적 본능이고 진보주의는 목적의식적 지향이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 진보는 본능을 거슬러 간다. 한 번 무너지면 복구하기 힘들다.
진보는 바람을 거슬러 나는 새,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물고기와 같다. 열정과 신념이 무너지면 바람에 날리고 물살에 휩쓸려 떠내려가게 된다.

#진보는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것-김상봉
‘짝퉁진보’, ‘좀비정당’? 재벌해체는 시작에 불과!

#인간의 자유를 확대하는 것-이남곡
인간이 행복을 위해 자유를 확대해나가는 과정

정치란? “국가를 운영하거나 국가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막스 베버

진보주의자들은 자유주의 국가론과 마르크스주의 국가론 사이를 끝없이 방황한다. 자유주의 국가론은 이념적으로 만족스럽지 않고,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따르자니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국가의 텔로스는 정의-아리스토텔레스

#8 국가의 도덕적 이상은 무엇인가

개인을 중심에 놓고 보면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이타성이다. 그러나 사회는 여러 면에서 어쩔 수 없이, 도덕성이 높은 사람들이 결코 도덕적으로 승인하지 않을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종국적으로 정의를 추구해야 한다. 이 두 도덕적 입장은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양자 사이의 모순도 절대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쉽게 조화되는 것도 아니다.-라인홀트 니버,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니버
사회에 요구할 수 있는 최고의 도덕적 이상은 정의(justice)(개인은 이타성)

#정의란 무엇인가
공정 사회

#시장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는다
정의롭게 분배되고 있나?

자유주의의 기본? 모든 기회의 균등(현실은?)

#진보자유주의
진보정치? 국가로 하여금 최고의 도덕적 이상인 정의를 실현하도록 하는 정치

진보자유주의자는 어떤 가치 하나를 절대화하여 다른 가치를 종속시키거나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믿는다

진보정치에는 자유주의적 기풍과 철학이 필요하다(유연성?많은 에너지!)

#9 정치인은 어떤 도덕법을 따라야 하는가

정치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인 힘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범우주적 인간 사랑과 자비를 역설한 위대한 대가들은 폭력이라는 정치적 수단을 가지고 일한 적이 없다. 자신의 영혼과 타인의 영혼을 구제하려는 사람은 이것을 정치라는 방법으로 달성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정치는 전혀 다른 과업을 가지고 있다. 정치의 과업은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해서만 완수될 수 없다.-막스 베버,

#정치는 결과로 책임지는 일-막스베버

#졌지만 이긴 정치인-베른슈타인
수정주의자, 개량주의자? 냉철한 현실주의

이데올로기 교조는 무서운 것이다. 진보적 이념도 보수적 본능과 결합하면 경직된 교조가 된다

#연합정치와 책임윤리

진보의 힘은 ‘순수’에서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진보의 힘은 ‘섞임’에서 나온다!

#훌륭한 국가를 생각한다
국민 개개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는 국가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소로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시민

국가를 떠나서는 훌륭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없다. 훌륭한 국가 없이는 시민의 삶도 훌륭하기 어렵다. 그리고 세상 그 무엇도 국가를 대신하지 못한다.

두 종류의 직업정치인? 정치를 ‘위해서’ 사는 사람, 정치에 ‘의존해서’ 사는 사람

정치인의 글쓰기는 훌륭한 삶을 위해 훌륭한 국가를 원하는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 오불여노농吾不如老農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이병철. p274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

삶의 주체요 근본인 내 생명의 절대적 조건이 무엇인가. 컴퓨터, 휴대폰, 자동차 등 그 무엇도 생명의 조건이 되지 않는다. 오직 자연과 음식만이 내 생명을 살리고 유지하게 한다. 내 생명에 절대적 조건인 음식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는가?

농자천하지대본을 아는가?
만일 근본을 모르고 있다면 그 지식은 쓰레기 지식이다.
농자천하지대본을 믿는가?
근본을 믿고 있지 않다면 그 믿음은 버려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의 길을 가고 있는가?
만일 다른 길을 가고 있다면 지금 당장 돌아가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을 꿈꾸고 있는가?
만일 다른 꿈을 꾸고 있다면 하루 빨리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농자천하지대본의 삶을 살고 있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인생을 헛살고 있는 것이니 더 늦기 전에 참된 삶을 모색함이 옳다.

천하의 근본을 모르고 함부로 하는 것은 마치 첫 단추를 잘못 꽨 상태에서 다음 단추를 계속 꿰는 것과 같다. 근본을 망각하는 한 우리가 하고 있는 종교,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그 모든 것들이 자기 생명을 파멸의 함정으로 몰아넣는 자기모순에 빠져 들게 된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연히 현대 문명의 모순과 위험을 통찰하는 눈 밝은 사람의 절절한 호소에 귀 기울일 일이다. 생명의 근본, 삶의 근본을 응시하는 깊은 눈을 가진 사람의 지극한 기도에 함께 할 일이다. 근본 원칙을 붙잡고, 황소처럼 우직하게 걸어가는 용감한 사람의 사무친 절규에 겸손할 일이다.-도법스님 추천글

#숲안마을 가는 길-귀농을 꿈꾸는 당신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귀농이란 단지 농촌으로 돌아감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닐 겁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땅과 가까운 삶으로, 자연과 함께하는 삶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더 올바른 뜻이라 할 수 있겠지요.
달리 말하면 귀농이란 단순한 직업의 전환이 아니라 삶의 전환이라는 것이지요. 뿌리 뽑힌 삶에서 뿌리내리는 삶으로, 자연을 거스르는 삶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상생 순환의 삶으로, 소모적이고 파괴적인 삶에서 생산적이고 살리는 삶으로, 의존적인 삶에서 자립적인 삶으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귀농은 귀본이요, 귀일입니다.

#다시 단순 소박한 삶의 회복을 위하여
이 시대에 우리가 추구하는 귀농을 경제적 가치를 중심으로 한 직업의 전환으로서가 아니라 자연과 조화되는 삶 자체를 중심 가치로 삼는 생태적 삶으로의 전환이라고 정의한다 하더라도, 농촌 농업이 급격히 무너져 내리는 현실 앞에서 생태적 삶을 실현한다는 것이 더욱 어렵고 힘들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의 무게 때문에 지금 어려움에 처해 있는 귀농 식구들도 적지 않으리라 짐작됩니다.
이럴 때일수록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면서 우리가 귀농하고자 하는, 또는 귀농하면서 추구했던 그 목적과 이유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려울 때, 앞이 막혀 나가기 힘들 때 다시 처음을 생각해 보는 것은 다시 일어서는 데 힘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왜 귀농인가?’를 다시 물어보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지금 그렇게 살아라.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지금 그 일을 하라.”(일과 삶을 일치시키는 길)

자발적 가난?(Simple Living의 번역?)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할 수 없는 더 소중한 가치에 대한 자각없이는 이러한 삶의 전환은 불가능합니다

실제로 우리가 가난하다고 느끼고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물질 그 자체의 궁핍 때문이라기보다는 돈에 의지하여 사서 쓰다 버리는 소비에 길들여진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소비 중독 바이러스?

인류의 역사상 최대의 풍요를 누리고 있다는 이 시대에 우리 사회는 탐욕에 감염되고 있다. 인간은 더 많이, 더 좋은 것, 더 새로운 것을 살 수 있는 가능성에 모두 넋을 빼앗겼다. 전 세계가 지금 소비 중독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그 속에서 이제 인간마저 소비되고 있다.

우리의 필요를 진정한 쓸모에 바탕을 둔다면 그렇게 많이 소유할 필요가 없고 물질적 궁핍 때문에 고통 받지 않아도 됩니다.
소비 중독증에서 벗어난 삶의 건강성을 일구기 위한 질문!!

“그 물건이 당신에게 꼭 필요한 것인가?”
“그것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당신이 직접 만들어 쓸 수는 없는가?”
“다른 사람의 것을 함께 이용할 수는 없는가?”

“더 많이 소유하는 삶 대신 더 많이 존재하는 삶”-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
(단순한 삶, 풍요로운 존재)

#정성으로 땅을 살리며 삶을 가꾸기
정성을 다한다? 몸과 마을을 오롯이 한 곳에 모으는 것(일하는 것이 곧 기도하는 것)
우리가 농사를 지어 생산한 농작물은 그 자체로 우리 인격의 반영이다!
가꾸는 삶 vs 꾸미는 삶
가꾼다? 본 모습을 잘 보이게 한다. 장식은 제거한다. (뺄셈의 생활방식)
꾸민다? 장식을 더한다. 본 모습을 감춘다 (덧셈의 생활방식)

생태농업의 핵심은 땅을 살리는 데 있습니다.

“인류는 원자폭탄의 발명 이래 무서운 공포에 시달려 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속도가 느리긴 하지만 훨씬 더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또 다른 현상은 대다수의 사람들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가 생존을 의지하고 있는 대지를 고갈시켜 황폐화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인간은 재난의 의미를 천재지변이나 전쟁의 의미로만 받아들이고 있다.”-영국토양학회의 경고

대지에 일어난 일은 대지의 자식에게도 일어난다-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연설

농부는 땅을 지키고 돌보며 그 속에서 생명을 기르고 가꾸는 사람입니다.

생태적 뒷간? 대지의 질서를 지킨다는 것은 대지에서 밥을 얻었다면 그 밥을 먹고 만든 똥을 다시 대지의 밥으로 되돌리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그동안 너무 많이 대지의 질서에서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제 길은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그 한 길뿐임이 분명해졌습니다.

#꽃이 피고 들이 푸르러지는 것 또한 사랑입니다
농사란 결코 혼자서 지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품앗이나 두레 등으로 여럿이 함께 일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그보다 먼저 부부가 함께 해야 하는 일이라는 뜻입니다.(여럿이 함께 먹고, 함께 어울리고,..)

봄입니다. 저 불임의 도시, 시멘트 숲에야 제대로 봄이 오기 어렵겠지만 이곳 대지에는 벌써 봄이 한창입니다.

사뭇한 그리움, 간절한 기다림,…사랑!!

#다시 바른 농업으로 돌아가기
온난화, 기상이변? 새삼 절기를 잃어버린 것이 문제하기보다는 절기를 그렇게 변하게 만드는 우리의 무지함과 어리석음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금 우리 농업이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근본 원인은 본질에서 벗어난 데 있다!
수출 위주의 근대화 정책 등으로 이 땅의 농촌, 농업을 구조적으로 소외시키고 희생시켜 온 정치경제적 원인이 있음은 분명합니다

***바른 농업이란?
1)자기 실현-농산물 자체가 곧 자기 자신의 인격의 표현
2)생태적-”병든 몸을 치유하기 전에 먼저 병든 땅을 치유하라”
3)소비자, 뭇 생명과 함께하는 공생농
“나락 한 알 속에 온 우주가 다 들어 있다” 농업이란 본래 농사짓는 사람뿐 아니라 온 우주, 곧 천지 대자연과 함께 하는 일입니다(“밥이 하늘이다”)

상품화? 소비자와 생산자의 철저한 분리
소비자와 함께하는 농사, 생명 연대를 이루는 공생농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의 지저귐을 들어 보라.
내일이면 냄새를 잃어버릴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라.”-헬렌 켈러

#마음으로 짓는 농사
귀농학교? 귀농은 이 시대의 구원의 길, 새로운 공부, 이제까지 경험하지 못한 또 다른 풍요로움!
작물을 기르는 농사의 마음? 의식이 물질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신과학이 규명한 중요한 성과입니다

계절의 환희를 느끼지 못하는 생태맹!

그것이 옳은 일일수록, 그것을 원하는 것일수록 자연스럽게 해 나가는 것이 오래가고 바르게 가는 바탕이라는 생각이지요. 요컨대 우리가 ‘단순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것은 그것이 옳은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렇게 사는 삶 자체가 즐겁고 편하기 때문이라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知者)

#조화로운 삶의 단순성
철 모르면 농사 자체를 놓쳐버린다
제대로 된 농사꾼은 ‘도에 가까운 사람’? 천지 운행에 조화로운 삶을 산다

‘살아 있는 밥상’의 기준은 땅과 얼마만큼 가까운가에 두어야 한다(땅과의 연결! 발을 땅에, 살아있는 흙에 닫지 않고서는 살아 있는 밥상을 마련하기안 불가능하다? 삶의 뿌리를 땅에 둔 밥상!)

내 작은 텃밭? 땅을 가꾸는 것은 밥상을 가꾸는 것이고 내 존재를 가꾸는 일임을 다시 새깁니다.
음식을 내 손으로 직접 장만하고 나누는 일? 음식을 장만하는 일이 걷는 것과 더불어 내면의 평화를 일구는 좋은 수행이라는 걸 뒤늦게 공감하면서 갖게 된 꿈입니다.

문명 속 생태맹? 이제 세 살인 저 아이도 식물을 구별하기 시작하는데, 지금 도시에서 나고 자란 어른들 대부분이 작물과 들풀을 구별할 줄 모릅니다. 그렇게 오랜 기간 학교와 사회에서 배운 지식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생각하면 씁쓰레한 기분을 좀체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야성의 회복을 위하여
문제는 잡초의 강한 생명력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가 기르고 있는 작물의 야성, 본래의 자연스러운 생명의 힘을 잃어버린 것에 있다
인류 문명의 야만성은 야성의 건강한 회복을 통해서만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곧 야성을 회복하는 길, 자연성의 회복)

문명이란 문화란 이름으로 자연과 철저히 분리시켜 온 것입니다

#걸으면서 만나는 삶을 위하여
세계화의 대안? 지역적 자립? 마을 단위의 자립적 경제 회복
인도 비노바 바베의 토지 헌납 운동(부단 운동)

생태맹의 극복이란 농심의 회복에 있습니다
흙에 뿌리박기란 토착민으로 살기와 같은 말입니다. 이 시대의 불행, 이 문명의 한계는 초청장을 없애 버린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건강한 삶의 토대는 단순하다. 땅에 발을 붙이고 살며 먹을거리를 유기농으로 손수 길러 먹는 곳만로도 충분하다.”-니어링 부부의 <조화로운 삶>

농업에 있어서 대형 농기계의 사용은 한마디로 대지의 질서를 거스르는 방법으로 자연의 생태 순환 시스템의 파괴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농가 부채의 대부분도 대형 농기계 때문!)

먹을거리는 상품이 아니라 생명이며, 생산과 소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통일된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는 직거래, 서로 얼굴을 알고 거래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관계의 협동조합

단순한 삶? 소유에 얽매이지 않는 삶

#농사법에 대하여
자연에 의지한다는 것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법도를 믿고 이에 따르는 것이며 변화를 알고 함께 변화해 가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지요(무위농법, 자연의 이치에 따르는 사람인 농부가 곧 도인!)

#우리 쌀 지키기와 뿌리내리기
‘쌀은 생명이다’! 쌀은 국민 모두의 생명이다. 이 절박한 문제가 단순히 농민들의 경제적 이해 문제로만 여겨지는 것 같아 더 안타깝습니다.

#문명의 전환과 깨달음
자본주의나 사회주의나 다 같이 ‘모자람’에서 나왔다. 모자라니까 더 생산하자거나, 모자랄수록 나누어 먹는 것이 먼저라는 주장에서 두 체제가 나누어진 것이다. 이제 그 ‘모자람’이라는 전제가 무너졌기 때문에 자본주의나 사회주의 체제 둘 다 무너지는 중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이지요.(풍요를 너머 과잉의 시대, 죽음에 이르는 성장이 된 과잉생산 체제!)

새로운 생태 문명으로의 전환을 위해 필요한 깨달음이란 자연과 내가 하나라는 일원론으로의 귀의!

복귀기근(復歸其根)-노자 16장,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삶의 회복

웰빙? 참살이! 삶의 자연성 회복, 삶의 뿌리 회복

#오래된 미래를 다녀와서
“당신이 깍으려고 하는 그 금액이 당신에게는 푼돈에 불과하겠지만 우리에게는 샹계가 좌우되는 매우 큰돈이다.”

#감사하는 삶의 풍요로움
우리가 감사할 때 비로소 참다운 만족을 얻을 수 있다
감사함이 있을 때 풍요가 있고 사랑이 있습니다(감사는 행복과 풍요의 원천)

행복한 삶의 세 가지 요소? 단순한 삶, 자연과의 교감, 자립적인 삶

#귀농, 그 하나로 돌아가기
자연과 조화되는 삶이란 결국 철을 알고 제때 그 철에 맞추어 사는 것이겠지요.

#비움으로써 채우는 풍요로움
창자를 비우면 육신이 가벼워지고 몸이 가벼워지면 마음이 절로 맑아집니다(비움으로 태우는 새로운 충만!)

“21세기는 생태주의 시대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영국의 생태학자 조너선 포릿의 지적은 이에 대한 적절한 경구입니다.

귀농은 고행하는 삶의 선택이거나 현실에서 도피하는 수단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외는 정반대로, 해방된 자로서 세계의 해방을 위한 적극적인 삶의 결단으로 그런 삶을 선택한 것이다.(스스로 자립 실천)

#우리 몸의 회복
아는 것처럼 식사란 잔치며 동시에 공양입니다… 소박하지만 제철, 살아 있는 땅에서 거둔 생명이 충실한 밥상을 마련하여 자신에게 올리는 일이 자신의 몸을 제대로 돌보는 생태적 삶의 첫번째 조건입니다.

“활력과 건강을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것은 토양인데, 인간은 증가하는 인구수에 맞추어 식량을 생산하려고 애쓰고 있지만 그러는 와중에서 자신의 육체가 흙에서 온 것임을 잊어버렸다.”-앙드레 부아젱

식물과 동물의 질병을 없애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일은 바로 토지를 비옥하게 가꾸는 것임을 믿었던 앨버트 하워드

우리가 직면한 토양의 위기의 성격? 그것은 한마디로 인디언 추장 시애틀의 유명한 연설처럼, 대지에서 일어난 일은 대지의 자식에게도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하네
농부야말로 ‘아끼는 사람’? 이 아낀다는 의미가, 버릴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데 있다!

오불여노농吾不如老農, 나는 늙은 농부에 미치지 못한다.
분수를 아는 명언?!
이 분들이 떠나시면 흙과 함께 일구어 오던 문화, 자연을 공경하고 삼가던 그 농심의 문화가 또한 사라지고 말 것이라 생각됩니다

농사일이란 가장 바탕이 되는 일이라 마치 물처럼 공기처럼 오히려 그 중요성을 잊은 채 세상에서 흔히 맨 밑바닥 같은 처우를 받는 동시에 그것 없이는 세상 사람들이 한시도 살 수 없는 근본인 까닭에 가장 으뜸가는 일일 수밖에 없음을 생각합니다.

#생명 운동으로서의 귀농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
생명 운동의 실천 원칙은 자연의 법도인 상생 순환의 원리에 따르면서 섬김과 삼감, 보살핌과 아낌의 삶을 구현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