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즐거움 | 세상보기

글쓰기의 즐거움. 강준만. p344

‘글쓰기로 세상보기’를 하는 즐거움

#글쓰기의 고통 뒤에 오는 즐거움

공부를 하면 할수록 ‘저자의 죽음’이라는 말에 공감하게 된다. 몰랐거나 어설프게 알았을 때가 좋았다. 어떤 주장을 나만의 독창적인 생각으로 확신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책을 많이 읽다 보면 혼자 스스로 했던 생각을 이미 누군가가 엇비슷하게나마 했었다는 걸 알게 된다. 결국 나는 책을 많이 읽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나의 독창성으로 착각한 셈이다.(에코의 ‘반서재’, ‘지식의 원’과 함께 커지는 무지의 세계)

나는 포스트 모던 시대의 저자란 ‘편집자’에 불과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며, 그 동의의 실천을 지향한다(큐레이션, 편집의 시대)

‘글쓰기로 세상보기’를 하는 즐거움? 하지만 당장 문제가 되는 건 ‘글쓰기의 고통’일 게다!

글쓰기의 고통을 넘어설 수 있는 방법? ‘창작자’가 아닌 ‘편집자’가 되자

윤리적이고 겸허한 편집자의 자세를 갖게 되면 당연히 많이 읽고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어떤 주재에 대해 다양한 주장들을 다 알고 있어야 설득력 있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

리더가 하는 일 중 가장 중요한 것이 글쓰는 것 아니냐?!

“글쓰기는 단순히 생각이나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글쓰기는 생각을 만들어내고, 지식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글은 엉켜진 생각을 명료하게 정리해 주는 신비한 마력이 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새로운 생각을 만든다”

#01 전략적 사고
내가 쓴 글은 우선적으로 남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해를 돕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그 마음가짐이 바로 ‘전략적 사고’다.(쓰기의 목적은 읽히는 것!)

***겸손하면서 오만하고 오만하면서 겸손하라!
글에서 무언가를 보겠다는 욕심을 내는 일에서는 오만이 필요하며, 그런 욕심이 드러나지 않게끔 차분하게 논지를 펴기는 일에선 겸손이 필요하다

***글에 전반적으로 ‘당위’가 너무 많고 ‘어떻게’가 빈약하다? ‘당위’의 역설보다는 ‘어떻게’를 말하는 것이 더 값지다는 걸 잊지 말자!

#지면은 좁고 해야 할 말은 많다
‘말의 낭비’를 줄여야 한다
군더더기? ‘글쓰기 과정 중계방송’(지금부터 나는 ~에 대해 글을 쓰고자 한다)

#잘된 인용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작업법’? 여자의 마음을 훔치기 위해서는 말속에 구체적인 ‘팩트’ 또는 ‘디테일’을 담아야 한다!

역량을 초과하는 인용은 곤란하다

#’인식이 현실이다
정치에서는 인식이 현실이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를 향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나타나는 바what you appear to be(당신의 외양)를 보지만 당신이 정말로 무엇인지what you are(당신의 본질)를 인지하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진실은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마인드에 존재하는 인식이다. 포지셔닝 사고방식의 핵심은 인식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인식을 재구성해 원하는 포지션을 창출하는 것이다…’고객이 언제나 옳다‘라는 말을 신봉하라는 것이다…”(고객의 인식이 옳다)

‘승패는 고객의 마음속에 있다’

인식이 우리를 만들고 우리를 부수는 실체‘-<새로운 포지셔닝>

적절한 통계수치는 신뢰도를 높인다
‘오늘도 60명이 전북을 떠난다’

평소 주요 통계를 챙겨두자

브레인스토밍? 비판 배제/자유로운 의견개진(더 좋은 것을 생각해내는 것보다 터무니없는 것을 다듬어내는 더 쉽다)/질보다 양!

“가능한 한 마침표가 나오지 않도록 한 문장을 길게 늘여라”,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써라”, “어울리지 않는 비유법을 나열하라”, “같은 말을 되풀이하라” -작문수업 강의내용(습작훈련,1주일에 3번 10분씩)

이익의 갈등과 ‘죄수의 딜레마’가 던져주는 교훈? 자기만의 이익 선택이 집단이익 선택보다 더 나쁜 결과를 낳는다!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배경지식의 유무는 논술 답안을 차별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다!

박제된 지식? 실제 삶과 동떨어진 현학 욕망이 강하다(그럴싸해 보이는 어려운 지식)
현학의 이유? “독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이해하게 되었을 때, 그 신념에 강하게 집착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애쓴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흥미롭게도 학생들은 추상화 수준이 높으면 그 나름대로 쉽게 소화하는 방식을 갖고 있다. 구태여 자신의 삶과 연결시켜 볼 필요 없이 공식을 외우듯 머릿속에서 처리해 버리는 것이다. 사실상 이것은 입시 위주의 교육 체제에서 숨쉬듯 해 오던 것이라 이 치열한 입시 전쟁에서 살아남은 학생들은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어려운 텍스트를 끄떡없이 요약해낸다. 물론 이것은 전혀 바람직한 학문하는 방법이 아니나 학생들 자신이 무엇인가 어려운 것을 배웠다는 뿌듯한 느낌을 갖기에는 충분하다…”

#02 심리적 유혹
꼭 글쓰기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일상적 삶에서 관성과 타성에 가까운 심리의 유혹을 자주 받는다…검증 결과에 따라서 ‘익숙한 것과의 결별’도 필요하다.

#타협안을 모색하자
한국인은 ‘맞다. 그렇지만’보다는 ‘아니오. 왜냐하면’을 선호한다는 주장도 있다
잘못을 지적할 때, ‘No~because’ 방식보다 ‘Yes~but’ 방식이어야 합니다

선입견과는 달리, 타협점을 모색할 때에 오히려 더 강력한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다

접속어와 지시어 과잉? “말은 내적 연결성에 의해 연결되는 건데, 접속어를 이용해서 억지로 갖다 붙이려 합니다. 내용상 연결되지 않는 말을 접속어에 의해 억지로 연결시키면 더욱 뜻이 통하지 않게 됩니다”

#반복에 의한 강조는 하수다
반복법의 최상의 프로파간다? 반복은 지루하다, 변화를 주자! 같은 단어의 중복 사용을 피하면서 변화를 주자!

‘역지사지’를 위해선 들어야 한다

#이해를 해야 쉽게 표현할 수 있다
‘대중적 글쓰기’의 명암

“…알기 쉬운 문장은 일종의 위협으로 간주되어, 머리가 나쁜 것을 문장의 난해함으로 숨기고 있는 수많은 학자들에게 무언가 큰 타격을 입은 것처럼 느끼게 되는 것이다.”

학계에서의 생존•인정을 위한 글쓰기(전문용어 남발)

어떠한 경우라도 아이디어의 핵심은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어떤 아이디어가 너무 복잡해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다고 사람들이 말할 때 그것은 그들이 대개 그 내용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 간단히 표현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글쓰기 훈련은 생각하기 훈련이다

#03 감정의 통제

사회적 논쟁도 이미지 게임이다
대중은 개념보다 이미지를 더 좋아한다

그런데 왜 우리는 사회적 논쟁을 다룰 때에 이미지를 배제한 채 개념에만 집착하는가?

왜 여론전에서 밀리는가? 전교조의 이미지!

비분강개를 자제하라

문제의 전모와 복잡성을 드러내야 한다

비판?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따진다는 의미이지 비난과 동일시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 길들이기
“자본주의는 성공작이 아니다. 그것은 현명하지도 아름답지도 공정하지도 않으며, 고결하지도 않다. 그것은 우리의 기대에 어긋난다. 요컨대 우리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이제는 경멸까지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무엇으로 대체하는 것이 좋을까 생각해 볼 때 우리는 몹시 당혹스러워한다“-존 메이나드 케인스

“사회주의라는 견제장치를 잃어버린 21세기의 자본주의는 앞으로 더욱 병들게 될 거예요. 사회주의는 나름대로 자본주의의 병폐와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마이신 역할을 해 주었어. 앞으로 자본주의는 이런 마이신 역할을 할 어떤 것을 일부러라도 만들어내야 할 거예요.”-리영희

#04 수사학과 국어학
비단 글쓰기에서뿐만 아니라 우리 인생 전반에 걸쳐 ‘무엇’보다는 ‘어떻게’가 더 중요한 경우가 많다는 걸 잊지 말자

“…형식이 있어야 지식의 내용이 발생하기도 해요…모든 스토리는 형식이 필요하죠. 사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잘못된 건데, 그때는(80년대) 모든 형식을 내용으로 환원했던 거예요. 아무리 훌륭한 책보다 유인물 한 장이 훨씬 나은 거죠. 어떤 면에서는…이건 굉장히 위험한 사고방식이거든요…”
(내용을 담을 좋은 그릇도 필요하다)

#더블스피크
전쟁은 평화를 위한 것? 가치 체계의 전도!
double-speak? 말장난!
더블스피크상? “애매모호하고, 핵심을 벗어나며, 사안의 본질을 루리는 언어”의 탁월한 구사(“여러분은 계속 폭격이라고 쓰는데 폭격이 아니라 공중지원”-미 공군 공보담당관)

‘완곡어법’과 ‘더블스피크’의 차이
완곡어법? 부드럽고 간접적으로 표현, 예의와 감정 자제
완곡어법을 사용해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면 그 경우에 완곡어법은 더블스피크가 된다
F(Failed)-> NP(Not Passing)
KFC-fried(기름에 튀긴) 발음 방지

PC(Political Correctness)운동-다문화주의, 인종차별철폐 진보주의 언어운동

#모순어법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모순어법은 활발한 두뇌활동의 결과물이다.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단어를 결합시켜 우리를 더 높은 진리의 세계로 안내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다양하게 사용된 모순어법은 사고의 폭도 한없이 넓혀준다…”
oxymoron(모순어법)? 똑똑한 바보!

체념의 지혜? 체념은 포기가 아니다. 자신이 물려받은 조건과 환경을 제대로 아는 일이다. 체념은 희망의 시작이다.

사자성어의 묘미? 강한 압축성과 해석의 신축성

#주어를 사랑하자
주술관계는 기본이다
많은 경우 주술관계의 혼란은 문장을 길게 쓰는 데에서 비롯된다? “학생들은 얕은 사고의 깊이가 드러나는 것에 겁을 먹는다. 본능적으로 그것을 복잡한 구조의 문장으로 위장하려고 한다. 그러나…아무리 포장을 해도 위에서 내려다보면 다 보이는 법이다. 좀 더 솔직해질 필요가 있다.”

*단문으로 정확하게 쓰는 게 제일 좋다

최악의 문장 형태? 법조계 문장(이중삼중의 부정이 등장하고 마침표는 인색, 귀족의 연속 장문의 판결문)

#언어의 목적은 커뮤니케이션이다(글쓰기의 목적은 읽히기!)

#겹말 또는 이중표현
‘들’이 많으면 문장이 너저분해진다
복수에 꼬박꼬박 ‘들’ 붙여 쓰는 것은 영어식 표현

미국의 빈부격차는 세계적으로 악명이 높다(초부자hyper rich)

피로사회 | 긍정의 배신

피로사회. 한병철. p128

출간되자마자 열광적인 반응? 이 시대의 뇌관을 건드린 책!

성과사회의 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그러한 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기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하는 것이다.

#신경성 폭력

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

21세기의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이지도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소진증후군)

면역학적 타자의 부정성이 아니라 긍정성의 과잉으로 인한 질병이다 (긍정의 배신)

면역학적 행동의 본질? 공격과 방어(타자성 자체, 이질적이라는 이유만으로 제거의 대상이 된다!)

새로운 구도? 이질성과 타자성의 소멸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한다

면역학적 패러다임은 세계화 과정과 양립하기 어렵다!

면역의 근본 특징은 부정성의 변증법이다? 자아는 타자의 부정성을 부정함으로써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을 확인한다!

21세기 신경성 질환? 긍정성의 변증법? 긍정의 과잉에서 비롯된 병리적 상태!

“같은 것에 의존하여 사는 자는 같은 것으로 인해 죽는다.”-보드리야르

(“현존하는 모든 시스템의 비만 상태” 지적)

같은 것은 항체의 형성을 초래하지 않는다
과잉행동, 과잉가동, 과잉 커뮤니케이션이 초래하는 긍정성의 폭력은 ‘바이러스적’이지 않다. 면역학은 그러한 폭력에 대해 아무런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과다에 따른 소진, 피로, 질식 역시 면역 반응은 아니다)

긍정성의 폭력은 적대성을 전제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관용적이고 평화로운 사회에서 확산되며 그 때문에 바이러스성 폭력보다도 눈에 덜 띈다!

세계의 긍정화는 새로운 형태의 폭력을 낳는다. 새로운 폭력은 면역학적 타자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내재적 성격으로 인해 면역 저항을 유발하지 않는 것이다.(내재성 테러!)

여기에는 부정성이 없기 때문이다. 긍정성의 폭력은 박탈하기보다 포화시키며,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고갈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직접적으로 지각되지 않는다.

동질적인 것의 과다, 긍정적인 것의 대량화(과잉)

21세기의 사회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 변모했다(복종적 주체가 아니라 성과주체로, 자기 자신을 경영하는 기업가)

규율사회는 부정성의 사회이다(‘~해서는 안 된다‘가 지배적인 조동사,’No’가 지배적)
성과사회의 탈규제화? 무한정한 ‘할 수 있음’이 성과사회의 긍정적 조동사이다(Yes We Can)
사회적 무의식 속에는 분명 생산을 최대화하고자 하는 열망이 숨어 있다(능력의 긍정성은 당위의 부정성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다…따라서 사회적 무의식은 당위에서 능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된다)

…우울한 자는 컨디션이 완전히 정상이 아니다. 그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는 요구에 부응하려고 애쓰다가 지쳐버리고 만다(욕망의 환상!)

소진증후군? 탈진한 자아의 표현보다는 다 타서 꺼져버린 탈진한 영혼의 표현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 후기근대적 노동사회의 새로운 계율이 된 성과주의 명령
타자의 강요없이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일과 능력의 피로? 아무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자유와 강제가 일치하는 사회? 성과사회의 심리적 질병은 바로 이러한 역설적 자유의 병리적 표출인 것이다!

#깊은 심심함
긍정성의 과잉? 지각은 파편화되고 분산된다

문화는 깊이 주의할 수 있눈 환경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깊은 주의는 과잉 주의에 자리를 내주며 사라져가고 있다

단순한 분주함은 어떤 새로운 것도 낳지 못한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것을 재생하고 가속화할 따름이다!

심심함이란 “속에 가장 열정적이고 화려한 안감을 댄 따뜻한 잿빛 수건이다”. 그리고 우리는 꿈꿀 때 이 수건으로 몸을 감싼다.

귀 기울여 듣는 재능? 지나치게 활동적인 자아에게 그런 능력은 주어지지 않는다!

#활동적 삶-한나 아렌트
삶의 가속화와 존재의 결핍
성과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며 계솟 새로운 강제를 만들어 낸다…주인 스스로 노동하는 노예가 되는 노동사회를 낳는다…그렇게 인간은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이로써 지배 없는 착취가 가능해진다.

사유는 활동적 삶의 활동 가운데서도 가장 활동적인 것이며 순수한 활동성의 면에서 모든 활동을 능가한다!

#보는 법의 교육
사색적 삶은 보는 법에 대한 특별한 교육을 전제한다
인간은 보는 것을 배워야 하고, 생각하는 것을 배워야 하고, 말하고 쓰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회의 긍정성 증가? 부정적 감정도 약화된다!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힘

무위의 부정성은 사색의 본질적 특성이기도 하다? 공에 도달하는 것은 극도로 능동적인 과정이다(참선? 주권적 중심이 되는 연습)

#필경사 바틀비
모든 주민이 노동하는 동물로 전락해버린 비인간적 노동 세계

베껴쓰기는 도무지 어떤 자발성도 허용하지 않는 활동이다

#피로사회
활동사회라고도 할 수 있는 성과사회는 서서히 도핑사회로 발전해간다…도핑은 성능 없는 성과를 가능하게 한다
활동사회는 그 이면에서 극단적 피로와 탈진 상태를 야기한다. 이러한 심리 상태는 부정성 결합과 함께 과도한 긍정성이 지배하는 세계의 특징적 징후이다. 과도한 성과의 향상은 영혼의 경색으로 귀결된다.

성과사회의 피로는 사람들을 개별화하고 고립시키는 고독한 피로다…이런 분열적인 피로는 인간을 “볼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는다. 오직 자아만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피로는 폭력이다. 그것은 모든 공동체, 모든 공동의 삶, 모든 친밀함을, 심지어 언어 자체마저 파괴하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피로는, 본래 그럴 수벆에 없겠지만, 아무 말 없이, 필연적이다 폭력을 낳았다. 아마도 이러한 폭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오직 타자를 일그러뜨리는 시선 속에서뿐이었을 것이다.”

탈진의 피로는 긍정적 힘의 피로다. 그것은 무언가를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간다. 영감을 주는 피로는 부정적 힘의 피로, 즉 무위의 피로다.(안식일, 무위의 날? 쓸모없는 것의 쓸모가 생겨나는 날)

##우울사회
성과주체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믿지만 실은 프로메테우스처럼 묶여 있다. 끝없이 다시 자라나는 프로메테우스의 간을 먹는 독수리는 성과주체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재2의 자아라고 해석할 수 있다

치유적 피로? 그것은 “줄어든 자아의 늘어남“으로서의 피로, 건강하고 “세상을 신뢰하는 피로”이다. 반면 자아 피로는 고독한 피로, 세계가 없는, 세계가 부족한, 자아를 고립시키는 나르시즘적 자기 관계의 대가로 타자와의 모든 관계를 파괴해버리는 피로다.

성과사회를 규정하는 조동사는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할 수 있다”이다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의무적인 일에 매달리지 않는다…그가 노동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쾌락의 획득이다. 그의 노동은 향유적 노동이다…

타자로부터의 자유가 해방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자유에서 새로운 강제가 발생한다는 데 자유의 변증법이 있다. 타자로부터의 자유는 나르시즘적 자기 관계로 전도되며, 이는 오늘날 성과주체가 겪는 많은 심리적 장애의 원인이 된다.

끝없는 기대? 결코 만족감을 맛 볼 수 없게 되고, 이와 나란히 무언가를 완결시킬 수 있는 능력도 상실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성격”은 부정성의 현상이다!
우울증 환자는 무형적이다. 그는 성격이 없는 인간이다. 더욱 일반화하여 말한다면 후기 근대의 자아는 성격이 없다

오늘날의 정신 질환은 심적 억압이나 부인의 과정과는 무관하다. 그것은 오히려 긍정성의 과잉, 부인이 아니라 아니라고 말할 수 없는 무능함, 해서는 안 됨이 아니라 전부 할 수 있음에서 비롯된다.

자유와 탈규제의 이념을 내세우는 오늘날의 성과사회는 규율사회의 근간을 이루던 제한과 금지를 대대적으로 철폐한다

새로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 기술도 타자를 향한 존재의 두께룰 더욱 줄여 놓는다…가상현실 속의 상상적 공간에서 나르시스적 주체가 마주하는 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다.

과도한 선택의 자유를 누리는 후기근대의 성과주체는 강력한 유대의 능력을 잃어버린다. 우울증은 모든 유대를 끊어버린다. 우울증에는 아무런 중력도 없다.

우울증에 자주 선행하여 나타나는 소진Burnout은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힘이 빠져가는 주권적 개인의 증상이라기보다는 자발적인 자기 착취의 병리적 결과다!

절대적 경쟁?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면서 끝없이 자기를 뛰어넘어야 한다는 파괴적 강박 속에 빠진다. 자유를 가장한 이러한 자기 강요는 결국 파국으로 끝날 뿐이다

자기 착취? 타자에게서 오는 폭력이 사라지는 대신 스스로 만들어낸 폭력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그러한 폭력은 희생자가 스스로 자유롭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자본주의 경제는 생존을 절대화한다. 자본주의 경제의 관심은 좋은 삶이 아니다. 이 경제는 더 많은 자본이 더 많은 삶을, 도 많은 삶의 능력을 나을 거라는 환상을 자양분으로 발전한다

사회가 원자화되고 사회성이 마모되어감에 따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보존해야 할 것은 오직 자아의 몸밖에 없다. 이상적 가치의 상실 이후에 남은 것은 자아의 전시가치와 더불어 건강가치뿐이다. 벌거벗은 생명은 모든 목적론, 건강해야 하는 이유를 제공하는 모든 목표의식을 지워버린다. 건강은 자기 관계적으로 되면 목적 없는 공허한 합목적성으로 전락한다

호모 사케르의 생명은 모든 가치를 상실하고 생명 기능과 생명 활동이라는 내재적 가치로 축소되었다는 점에서 벌거벗은 것이다. 이제 문제는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해서 생명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일뿐이다. 성과사회는 그 내적 논리에 따라 도핑사회로 발전한다.

포스트모더니즘? 부정성의 패러다임에서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 전환
긍정성의 패러다임은 포스트모던니즘적 유토피아를 약속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병철은 바로 이러한 긍정성의 과잉이 자아를 새로운 궁지로 몰아가고 있다고 진단한다…자기 자신 마모…그 결과 스스로를 낙오자로 느끼는 우울증 환자가 넘쳐나고, 성과를 위해 약물을 불사하는 도핑주체도 증가하고 있다…오늘의 주체는 오히려 무한한 자유의 무게에 직눌려 소진되고 있는 것이다. 피로는 성과주체의 만성질환이다.

한병철이 이야기하는 규율사회에서 성과사회로의 전환, 부정성의 패러다이에서 긍정성의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은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도 매우 생산적인 의미를 지닌다.

새로운 입시 교육 구호?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 갈 수 있다’
이 구호는 자기 자신과 경쟁하며 자발적으로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주체의 등장을 예고한 것이 아니었을까?

건강‘과 ‘벌거벗은 생명‘이 성과사회의 최후의 가치가 된다면, 미국산 소고기 문제가 최근의 어떤 이슈보다도 압도적으로 더 큰 규모의 시위로 이어졌다는 사실은 그러한 성과사회의 징후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생산성에 대한 후기 자본주의의 기본 요구와 착취의 진화? 타자 착취에 의한 생산성의 향상이 한계에 부딪힌 상황에서 더욱 효율적인 방법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 바로 자기 착취라는 것이다!

성공의 유혹? 성공적 인간이라는 이상에 유혹당한 사람들의 열망과 실천이 자본주의 시스템 전체의 확대 재생산에 기여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작 인간 자신은 소진되고 마모된다. 이것이 누구도 거역할 수 없이 세계를 지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문제라면,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운명을 피할 수 있을까?

그러한 욕망의 허구성에 대해 각성하는 데서 비로소 시스템의 변화도 시작될 수 있다
병의원 진단은 나왔지만 그 병의 원인을 제거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우울증의 배후에 놓인 성과사회의 압력은 단순한 외적 강제가 아니라 유혹의 형태를 취하며, 오직 인간 자신의 욕망을 매개로 해서 관철된다. 따라서 성과사회의 압력은 끝없는 성공을 향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개개인의 반성과 자각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