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는 삶 | 배움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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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하는 삶La Vie Intellctuelle.앙토냉 질베르 세르티양주.p383

성 토마스 아퀴나스 ‘지식의 보물을 획득하기 위한 16가지 조언’
‘사용’은 우리의 저장고를 풍요롭게 하는 방법

자기 완성을 추구하는 공부
공부를 위해 절제하고, 신체를 돌보고, 식사와 수면에 신경을 쓰고, 일상생활을 단순화하고, 사교활동을 삼가고, 내면의 고요를 유지하라

“인격적 자질이야말로 다른 모든 것에 앞선다. 지적 능력은 도구에 지나지 않으며 지적 능력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 효과의 본질이 결정된다.”

“하루에 두 시간을 공부에 할애할 수 있는가? 그 두 시간을 온전히 열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그럴 수 있다면 자신감을 가져라. 아니, 고요한 확실성 안에서 편히 쉬어라.”

신이 내려준 재능이 부합할만큼 우리 자신을 완전히 계발하려면 통찰력과 꾸준함, 방법론적 노력이 필요하다

아득히 멀리 떨어진 만년설을 동경하는 천식 환자, 모호한 열망? 대가를 치르지 않고 무언가를 얻으려는 것은 일반적안 욕구다. 그러나 그것은 비겁한 심장과 나약한 두뇌의 욕구다!

설령 느릿느릿 가는 듯이 보이더라도 그는 더 멀리까지 갈 수 있다

때로는 대중이 자극을 주기도 하지만 대개는 정시는 방해하고 주의를 흐트러뜨린다..이런 것들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열정적인 고독이다. 그 고독 안에서는 하나의 씨앗이 백 개의 낱알을 맺고, 충분한 태양빛이 모든 땅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때문이다.

매일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제한된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법을 배워라.

#지성인은 혼자가 아니다
고독은 활력을 불어넣지만, 고립은 우리를 무기력하고 메마르게 만든다. 고립은 비인간적이다.

모든 진리는 실제적이고, 모든 진리에는 구원하는 힘이 있다
진리는 언제나 새롭다. 반짝이는 이슬을 머금은 이른 아침의 잔디처럼 오래된 덕목은 모두 새롭게 싹트기를 기다리고 있다

모든 진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작은 지류에 승선했을지라도 강으로, 다 멀리 바다로 나아가는 것이다
시력은 좋으나 눈 먼 영혼, 건전하고 똑똑하지만 어리석은 영혼이 있다

사유가 순수하려면 영혼이 순수해야 한다
“위대한 사유는 심장에서 나온다”-파스칼, [팡세] 심장은 경험,자각, 직관을 포함하는 총체적 인간을 의미한다

면학을 방해하는 두 가지 악덕? 태만과 헛된 호기심
“너의 손이 닿지 않는 것을 구하지 마라”, “곧장 바다로 뛰어들지 말도 먼저 개울에 몸을 적셔라.”

독학의 약점? 혼자 힘으로 공부해서는 처음부터 시작할 수 없다

“모든 공부는 영원에 대한 공부다”

자연과 영혼을 통해 이 둘의 근원으로 향하는 것 외에 우리가 달리 어디로 갈 수 있겠는가? 우리가 그 근원에 도달하기 못하는 이유는 길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매일 운동해야 한다. “운동할 시간이 없다는 사람은 반드시 아픈 시간이 있을 것이다”

#삶을 단순하게 만들어라
반드시 삶을 ‘단순화’해야 한다. 당신 앞에는 험난한 여행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많은 짐을 짊어지고 떠나지 마라.
삶의 속도를 늦추어라, 인위적으로 삶의 온갖 복잡한 의식들, 사교활동은 공부에 치명적이다.
관습을 고분고분 따라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안내자가 되어 관습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라.

정신을 가볍고 자유롭게 하려면 물질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한다

#고요하게 묵상하라
“지나친 친밀함은 경멸을 낳고 정신을 흐트러뜨리는 원인이 된다”
“세상 사람들의 언행에 분주히 참견하지 마라”
“포도주 저장고에 들어가고 싶다면 너의 작은 방을 사랑하라”
은신처는 정신의 실험실이다. 내적 고독과 공포는 정신의 두 날개다. 세상의 구원을 포함한 모든 위업은 적막한 것에서 준비되었다.
은둔하지 않고서는 영감을 얻을 수 없다
고독 속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을 만날 수 있고, 이것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싶다면 꼭 필요한 일이다.

“고독은 강한 자들의 고향이요, 고요는 그들의 기도다”

“시간을 최고로 활용하는 유일한 방법이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고요하게 정신노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현재 위치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마땅히 제 역할을 수행할 때마다 우리는 삶을 선용하는 것이다”

고요가 지나치면 도리어 영혼을 어지럽힌다

고독은 결실의 어머니! 고요한 정신은 삶 전체에 스며들어야 한다

저녁! 저녁을 성스럽고 조용하게 보내는 법. 쾌락을 쫓는 사람들이 저녁을 어떻게 보내는가에 대해서는 길게 얘기하진 않겠다
열중하면 영감이 찾아온다, 시간을 줄여서라도 집중해서 사용하는 편이 나으며, 그것이 공부의 핵심이다

시간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시간이 충분하다. 그는 시간을 늘리지는 못하지만 시간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 무엇보다 그는 시간을 갉아먹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많이 읽지 마라
넘치게 읽기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자연이라는 책과 함께 상쾌한 공기를 들이쉬면서 긴장을 푸는 편이 낫다

다른 이들이 이미 걸어간 길을 따르지 말고 당신 자신의 길을 가라

물론 뉴스를 알아야 하지만 사실 우리가 읽을만한 뉴스는 많지 않다

성찰할 수 있을 때는 절대 읽지 마라. 휴식 시간 이외에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와 관련이 있는 것만 읽어라. 그리고 내면의 고요를 깨뜨리지 않기 위해 적게 읽어라.

천재는 대상을 단순화한다. 가장 위대한 발견은 응집된 사유가 한순간 번개처럼 섬광을 내쏘는 것이다. 위대한 격언은 다양한 경험이 응축된 것이다.

“네가 읽은 것만을 말한다면 아무도 너를 읽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기억하고 이용할 것이가? 기억하려는 것을 정돈하라, 기억하려는 것에 깊이 몰두하라, 기억하면서 것은 자주 생각하라, 기억한 것을 회상할 때는 나머지를 떠올리게 해줄 기억 사슬의 한쪽 끝을 잡아라

우리는 비교적 적기 읽어야 한다. 그보다 훨씬 적게 기억해야 하며, 어차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

이따금 화려한 문장 때문에 생기는 열정을 피하기 위해 구절을 곧바로 옮겨 적지 말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적어라

나는 읽기만 하지 않고 읽으면서 적는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를 만난 뒤에는 그 사람의 사유를 적기보다 나의 사유를 적는다

머뭇거리고 기다리다가 재능을 낭비하고 병에 걸린 싹처럼 비생산적인 사람이 되고 만다
“문체가 곧 그 사람이다” 나의 문체, 나의 품은 나 자신을 표현하고 영원한 진리에 관해 이해한 바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도구다.

문체가 갖추어야할 특성? 진실, 개성, 간결함
진실성이란 장황한 말을 조금도 보태지 않고 영감을 드러내는 것만을 표현하는 것이다
진부한 표현, 상투 어구? 낡은 진리 혹은 공유재산이 된 문구!

풀잎이 이슬이 맺히고 동굴 벽에 종유석이 생성되듯이, 피에서 살이 자라고 수액에서 목질 섬유가 형성되듯이 글을 써야 한다는 애머슨의 말은 글쓰기의 이상을 표현한 것이다

실제 세계에 장식이란 없다. 오직 유기적인 필연성만 있다.

한 문장, 한 구절은 살아 있는 가지처럼, 뿌리의 섬유처럼, 나무처럼 이루어져야 한다.
좋은 문체는 쓸모없는 것을 모조리 배제한다. 문체는 풍요 속의 긴축이다.
“아름다운 것이란 모든 과잉을 제거한 것”-미켈란젤로
가진 것 때문에 방해를 받고 스스로를 제한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간결함을 고생스럽게 익히는 수밖에 없다

이기적인 사람은 손대는 것마다 가치를 떨어뜨린다
“무엇이든 타인만을 위해 사유한 것은 대체로 자연스럽지 못하다”

생산적인 일을 위한 덕목? 꾸준함, 인내,끈기
착실하게 작업에 매진하는 꾸준함, 어려움을 견디는 인내, 의지가 약해지지 않게 다잡는 끈기

“얘야, 시계를 자주 보지 말거라”, 위대한 발명가 에디슨은 한 아이에게 기억에 남을 만한 말을 해달라고 부탁받았을 때 미소를 머금고 이렇게 말했다

자투리 시간이야말로 공부를 준비하거나 정리하고, 참고문헌을 확인하고, 노트를 살펴보고, 문서를 분류하는 등의 일을 하기 위한 시간임을 잊어버린다

야외나 서재에서 걷는 것은 무해한 각성제다. 공부하는 이들은 대개 팔다리를 움직임으로써 뇌도 움직인다

“충만한 삶은 길다” 천천히 서둘러라. 시간이 쫓기는 사람의 호들갑과 야단법석을 피하라
길 자체가 목표이고 결말이 수단인데 무슨 까닭으로 서두르는가?

사유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그토록 어렵고 보통사람이 가진 것보다 훨씬 큰 용기를 요구하는 주된 이유는 그 기술을 익히는 데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끈기 없이 간혹 큰 걸음을 내딛는 것은 어디에도 이르지 못하는 쓸모없는 움직임에 지나지 않는다

“너를 넘어서는 것을 추구하기 마라”

“공부에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쓰는 것은 나태다”

“모든 비난과 관련해 내가 아는 답은 딱 하나, 다시 나의 공부로 돌아가는 것이다”-에머슨
잘못을 바로잡고 침묵을 지키라는 것은 위대한 격언이다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논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변호하지 않는다. 그는 말하거나 듣는다. 그는 대상의 의미를 명확히 밝히거나, 그 의미를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사람들은 듣지 않는 이 앞에서는 악하게 말하지 않는다”

실패할까 두려워 위축되는 순간 우리는 이미 실패를 경험한 것이 아닐까?
당신은 지금 무언가에 실패하겠지만, 그 실패를 밑거름 삼아 훗날 다른 무언가에 성공할 것이다.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것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누구라도 틀림없이 성공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성은 세상만을 열망하지만, 신앙은 이성을 무한으로 이끈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 不亦悅乎)!

고민하는 힘 | 질문이 답이다

고민하는 힘

고민하는 힘. 강상중.p177

감정 기복이 심했던 내 청춘을 수놓은 위대한 존재? 나쓰메 소세키와 막스 베버
나는 이 두 사람에게서 ‘고민하는’ 것이 ‘사는’ 것이며, ‘고민하는 힘’은 ‘살아가는 힘’임을 배웠습니다
그들이 문학과 학문을 통해 계속해서 던지고 온몸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물음. 그것은 ‘근대’라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인간적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였습니다

#지금을 살아간다는 고민
“호모 페이션스(고민하는 인간)의 가치는 호모 파베르(도구의 인간)보다 더 높다”-빅터 프랭클

현대의 가장 큰 특징? 세계화
자유가 확대되었다지만 그에 어울리는 행복감을 맛보며 살고 있습니까? 만족감과 안도감을 맛보고 있습니까?
실제로는 새로운 빈곤이 퍼져 나가고 있고, 빈부 격차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는 경험하지 못한 고립감에 시달리고 있는 듯합니다
‘변하지 않는 가치’와 같은 것은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렇지만 인간은 ‘변하지 않는 가치’를 찾으려고 합니다.

#근대 문명의 어둠을 밝힌 소세키와 베버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고민의 대부분은 ‘근대’라는 시대와 함께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소세키가 품고 있던 문명에 대한 생각? 문명이 발전할수록 인간의 고독은 깊어지고 구원받기 어렵다
막스베버는 서양 근대 문명의 근본원리를 ‘합리화’로 보고, 그것을 통해 인간 사회가 해체되고 개인이 등장해서 가치관과 지식의 모습이 분화해 가는 과정을 해명하려고 했습니다
막스 베버의 ‘사회학’으로 통해, 나쓰메 소세키의 ‘문학’을 통해 ‘근대’라는 것이 인간의 생활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를 배웠습니다
소세키와 베버는 ‘개인’의 시대가 시작되었을 때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있으면서도 그 흐름에 따르지 않고 각각 ‘고민하는 힘’을 발휘해서 근대화는 시대가 내놓은 문제와 마주했다

#1 나는 누구인가?
자아는 타자와의 ‘상호 인정’에 의한 산물,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인정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를 타자에 대해 던질 필요가 있다. 타자와 상호 안정을 하지 않는 일방적인 자아가 존재할 수 없다. 확실하게 말하면 타자를 배제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와 자주 혼동을 일으키는 ‘자기중심주의’? 타인의 기분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생각만을 밀어붙이는 사람. 이런 사람과 함께 있으면 ‘자기만 생각하는’ 모습에 피곤함을 느낄뿐

#사회의 해체와 자아의 과잉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자기와 타자를 각각 자아로 독립해 있는 것으로 보면 인간 사회는 각양각색의 ‘자아의 무리’가 되고 만다
문명은 우리를 고립시킨다고 다이스케는 해석했다
자기의 성만을 만들려고 하면 자기는 세워지지 않는다? 자아라는 것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성립한다!
‘상호인정’ 이외 다른 방법은 없다
‘진지함’이란 ‘어중간함’과 반대되는 말이다

#2 돈이 세계의 전부인가?
현대 사회에서 돈 때문에 고민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 가족 사이의 갈등이나 인간관계나 일의 갈등에서 사회 범죄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심각한 문제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돈이 문제가 얽혀 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고작해야 돈, 그리도 돈’!
“보라, 근대적 세계는 이런 것이다.”-막스 베버

#과거의 제국주의 , 현재의 월스트리트
돈은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성질을 지니고 있어 ‘노동의 보상’과 같은 의미를 떠나 ‘돈’으로 독립하게 되면 그 자체가 목적이 되고 만다. 원래는 ‘돈을 위해 일을 한 것이 아닌’ 사람들도 점점 ‘돈을 위해 일을 하게’ 되고 점점 원래의 모습에서 벗어나 ‘돈을 위해 돈이 도는’ 상태로 변하며, 결국에는 ‘돈이 돌면 돌수록 돈이 늘어나게’ 된다(‘세계화’가 국경을 넘어 세계를 넘나드는 현재의 상황)
IT기술을 구사해서 글로벌 머니 네트워크를 구축한 금융자본
돈만을 만들기 위한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모험가들뿐만 아니라 ‘돈과 관계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의 인간성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
자본주의에 기생하며 살아가는 ‘등을 치는’ 논리

#3 제대로 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알고 있다(know)’와 ‘사고하다(think)’는 다르다. ‘정보(정보통)’와 ‘지성’은 같지 않다. 박식함과 지성의 차이
옷의 주머니에 잔뜩 휴지 조각으로 꽉 채워 놓은 듯한 지성, 이것을 ‘알고 있잖아?!’뿐인 지성

#과학은 모든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자기들이 미개사회보다 훨씬 진보했고 미국이 선주민들보다 훨씬 자기 생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모두 전차를 타는 방법을 알고 있으며 아무런 의문 없이 전차를 타고 목적지로 가지만 차량이 어떤 메커니즘으로 움직이고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미래사회의 인간들은 자기들이 사용하는 도구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잘 숙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주지화나 합리화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생활의 지식을 늘려주는 것은 아닙니다.”-막스 베버, 직업으로서의 학문(과학)
“…즉 과학은 그 행위의 궁극적이고 본래적 의미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대답하지 못합니다”
“현대 문명은 완전한 인간을 매일매일 불구자로 망가뜨리며 앞으로 나아간다고 평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오래된 야만 시대에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기 스스로….”
모든 것의 경계가 허물어진 사회? 엄청난 정보들!
자연에서 얻는 지식을 다시 보아야 하지 않을까? 현실의 육체나 감각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기 세계를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형태로 한정한다. 그 경우에 세계를 닫는 것이 아니라 계속 열어 둔 차로 자기 신체에 맞춰 한정한다. 그렇듯 자연에서 얻은 ‘지’의 모습은 그 세계에 있는 것에대해서는 속속들이 알고 있다. 이것은 ‘반과학’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는 ‘비과학’도 아니다.

#4 청춘은 아름다운가?
우리 모두의 인생 속에 반드시 존재하는 ‘청춘’을 알지도 못하고 끝내거나 그 소중한 청춘을 매일 한 장씩 떼어서 버리는 것, 그것은 불행이 아닐까? 그렇게 살다가 10년 후에 자기 삶을 돌아보면 거기에는 삭막함만이 남이 있을 것입니다.

해답이 없는 물음을 가지고 고민한다
따라서 나는 청춘이란 한 점 의혹도 없을 때까지 본질의 의미를 묻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방문 서울대 모습? 내가 목격한 것은 학생들이 “필요 없는 것을 생각하고 있을 여가가 있으면 스킬을 몸에 익히고, 전문지식을 몸에 익히고, 유용한 정보를 가능한 많이 획득해야 한다. 놀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분위기에서 미국화된 프로그램을 필사적으로 소화시키고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청춘은 좌절이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실패가 있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5 믿는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을까?
인생이란 자기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택해야만 하는 순간들의 집적이며, 그것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믿고 해답을 발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자유로부터 도망치고 싶어한다
과학과 합리주의의 세례로 ‘탈마술화’ 된 근대이후의 종교? 근대 이전과 비교할 때 그 어떤 종교도 ‘유사 종교’가 될 수밖에 없다!(막스 베버가 말했듯이, “인식의 나무 열매를 먹은” 뒤였기 때문)
모두가 교주가 되는 1인 종교의 세상? 궁극적으로 ‘믿는다’는 것은 ‘그 어떤 것을 믿는다’가 아니라 ‘자기를 믿는다’를 의미합니다(자기가 교주)
확신할 수 있을 때까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6 무엇을 위해 일을 하는가?
일을 한다? ‘사회 속에서 자기 존재를 인정받는다’
일을 통해서 비로소 ‘거기에 있어도 좋아’라는 인정을 얻는다
그래서 나는 ‘사람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타자로부터의 배려” 그리고 ‘타자에 대한 배려’라고 말하겠습니다. 그것이 없다면 일하는 의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일이 그 사람에게 보람이 있는지 없는지, 그의 꿈을 실현시켜 줄지 그렇지 않을지는 다음 단계의 이야기입니다.
자기 존재를 확인받기 위해

#7 변하지 않는 사랑이 있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면 사랑은 그때그때 상대의 물음에 응답하려는 의지입니다. 사랑의 모습은 변합니다. 행복해지는 것이 사랑의 목적이 아닙니다. 사랑이 식을 것을 처음부터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8 왜 죽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예외 상황과 마음의 준비
죽음이 무의미하면 삶도 무의미하다!
“자유와 고립된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 그 대가로 쓸쓸함을 맛보아야만 하겠지요”
관계를 계속해서 찾아라
타자를 인정하는 것은 나를 굽히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상대를 인정하고 나도 상대에게 인정을 받는 것입니다. 거기서 얻은 힘으로 나는 내가 되어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내가 비로소 내가 된다는 의미에 대해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나로서 살아가는 의미를 확신할 수 있게 되면 마음이 열립니다

#9 늙어서 ‘최강’이 되라
분별없는 노인들만 생긴다
다음으로 생각해 볼 것은 노인은 ‘분별력’이 있어 ‘원숙’한 지혜를 갖고 있다는 이미지입니다
제 2인생? 이제는 고령자가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시대

살벌한 세상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사회?
고민은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적인’ 고민을 ‘인간적으로’ 고민하는 것은 살아 있다는 증거
길을 찾고 보따리를 찾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민하는 것이다. 고민 속에 거대한 미로와 같은 우리 삶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또한 우리가 서 있는 지점을 알 수가 있다.

막스 베버의 ‘의미의 거미줄(web of meaning)’에 매달려 있는 거미, 우리는 이 거미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다만 그 의미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지는 상당 부분 우리에게 달려 있다. 그리고 길은 얼마나 깊고 넓게 고민하는가를 달려 있다.

그 사람이 무엇을 고민하느냐가 결국 그 사람의 그릇이다

마음을 다스리는 간디의 건강 철학 | 행복을 위한 건강

 마음을 다스리는 간디의 건강 철학-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는 또 하나의 경전 마음을 다스리는 간디의 건강 철학- 우리의 삶을 고양시키는 또 하나의 경전

마음을 다스리는 간디의 건강 철학. 모한다스 K. 간디. p339

사람이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물건이 구속된다‘고 여기며 흙과 나무로 지은 오두막에서 평생을 보냈다. 소유물의 보관처가 아니라 사람의 쉼터였던 간디의 오두막.
그의 작은 거처에서는 자연과의 조화를 통한 기쁨과 인간을 행한 사랑과 진리의 힘이 충만해 있었다.

병이란 불결한 것이 몸의 특정 부분에 축적되었다는 자연의 경고일 뿐‘ 이라고 간디는 말한다. 그러므로 ‘약을 먹어 병의 더러움을 덮어둘 게 아니라 자연으로 하여금 제거하도록 하는 게 지혜로운 일‘이다. 약을 먹는 사람들은 오직 자연의치유 기능을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의사나 의료인이 많다는 것이 진정한 문명의 표시는 아니다. 우리가 몸을 지나치게 애지중지하지 않아야 우리 자신과 세계에 이롭다.”

현재의 의학 체계는 우리로 하여금 자기 통제력을 잃게 하고 그런 만큼 인간으로서의 위엄을 잃게 만든다

진정으로 건강한 사람은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진정한 건강 없이 진정한 행복은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진정한 건강은 미각을 엄격하게 통제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간디는 그 어떤 전제나 기장 사실도 당연시하지 않았다. 간디는 탐구심을 지닌 정직한 의사였다.

우리가 더 이상 분뇨를 농사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것은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 우리가 경악할 더러움은 다른 종류의 것이다.(공해와 제초제,…)

경전과 기도와 묵언의 간디의 영혼을 만들어냈다면, 채식과 금욕과 절제와 단식은 간디의 몸을 만들었다.

#1 영혼의 인간을 위하여

진정한 행복은 진정한 건강 없이는 불가능하고, 진정한 건강은 미각의 엄격한 통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미각이 통제되고 나면 모든 다른 감각들은 자동적으로 통제된다. 글고 자신의 감각을 통제한 사람은 진정으로 세계를 통제했다고 할 수 있으므로, 신의 일부가 된다.

‘인간은 능력과 자유는 마음에서 나온다’
병이란 단순히 우리의 행동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진 생각의 결과이기도 하다. (병 자체보다 병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는 사람이 더 많다!)

무지는 병의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먼 것보다 가까운 것을 더 모르다니 얼마나 기묘한 일인가…우리의 몸만큼 우리와 긴밀한 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몸에 대해 우리의 무지는 너무나도 심각하고 우리의 무관심은 너무나도 지독하다.

의학은 대부분 추측 작업? 의사들이 실상이 조금밖에 알려져 있지 않은 약을, 약보다 더 알려져 있지 않은 인체에 투여하는 건 정말 경악할 일!

우리는 의사 없이는 그 어떤 병도 나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착각 속에서 고생하고 있다.
경험상 우리는 어떤 지역에서 의사들의 수가 늘어나면 그에 비례해 병도 늘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병원은 죄를 퍼뜨리는 기관이다? 사람들이 몸에 신경을 덜 크게 만듦으로써 부도덕을 증가시킨다!
오늘날의 의학은 종교와 유리되어 있다(마음의 집을 고칠 때)
깨끗한 정신은 반드시 깨끗한 몸을 만든다

몸보다는 영혼이 훨씬 중요하다. 병든 마음을 담은 몸은 병든 것일 뿐이다

인도의 현대 교육은 우리의 일상 생활과 무관하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의 몸에 대해 거의 무리한 상태이다.

#2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부자들의 부엌에서 그들과 식솔들이 필요한 양보다 훨씬 많은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은, 바로 가난한 사람들의 몫에서 그만큼을 빼앗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가난한 사람들이 굶주림으로 죽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이것이 사실이라면, 필요 이상으로 먹는 모든 음식은 가난한 사람의 위장에서 훔쳐온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맑은 공기가 의사보다 낫다
질병에 걸리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야외에서 사는 것이다(아웃도어 라이프)

자연의 맛과 영양
“통일은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고 해도 훌륭한 식품이다. 그것은 대구의 간유와 수프를 합산 것보다 영양적으로 우수하다.”

술은 악마의 발명품이다

입맛을 어지럽히는 양념, 채소의 영양가 손실

#3 소박한 밥상

사람들은 스스로의 몸에 대해 더할 수 없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 우리는 몸을 신의 성전이 아니라 도락의 수단으로 사용하면서, 그 도락을 증가시키고 지상의 거처를 이용하기 위해 의사에게 달려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생식,채식주의
이런 식품들을 조리하는 것은 돈의 낭비일 뿐 아니라 ‘풍부한’ 맛을 잃는 것이기도 하다
불기운이 닿지 않은 음식에는 생명력이 있다(화식이 죄-니시의학)

아침 일찍 식사를 할 필요한 없다. 수면 자체가 식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단식은 육체적인 활력을 증가시킬 뿐 아니라, 일정한 목적을 가지고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한 경우라면 정신도 명료하게 만들어줍니다. 정신적인 어려움이나 골치 아픈 일이 닥칠 때마다 저는 단식을 합니다. 누구와 맞서야 할 때도 단식을 합니다…”-폴란드인 교수의 편지

단식과 식이요법이 가르쳐준 깨달음
인간의 정념은 대체로 미각의 즐거움과 같은 선상에 놓여 있다.
미각의 만족이 아니라 몸을 위해 음식을 먹어야 한다. 각각이 감각 기관이 몸에 복종하고 몸을 통한 정신적 쾌감이 소멸하는 이후에야, 몸은 비로소 자연이 의도한 대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4 마음을 다스리는 건강 철학

생각이 그 사람을 만듭니다. 생각은 행동으로 나타나야만 완성되고, 그 행동은 다시 행동을 규정합니다. 그 둘 사이에 완벽한 조화가 이루어져야만 충만하고 자연스러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9시취침, 4시 기상)

나는 농부의 삶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배운다
물론 모든 사람들이 농부가 될 수는 없다. 이렇게 농부의 삶을 설명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삶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인도인에게는 인도 옷이 좋을 수 밖에 없다
내가 전통 의상을 입는 것은 그 옷이 인도인에게 가장 자연스럽게 잘 어울린다는 믿기 때문이다. 유럽식 복장을 모방하는 것은 우리의 타락과 굴욕과 나약함의 표시이다. 우리의 기후에 가장 잘 맞고, 단순성과 예술성과 경제성에서 지구상의 어떤 옷보다도 훌륭하고 위생적인 인도 옷을 버리는 것은 국가적차원에서도 범죄를 저지르는 일이다. 쓸데없는 자부심과 체면만 아니었더라면, 인도에 온 영국인들도 오래 전에 인도 옷을 입었을 것이다.

건강과 위생에 관한 근본적인 법칙은 단순하고도 쉽게 배울 수 있다. 어려운 것은 실천이다!

‘청결은 신성에 버금간다’

40년을 젊게 사는 교수의 조언? 걱정을 하지 마라, 잠을 자주 자라

다리를 쓰지 않게 만드는 현대의 도시 생활은 건강의 적이다. 승강기를 이용하는 것은 간에 나쁘다. 오늘날 교통 수단의 문제점들 중에 간과되는 것으로 소화불량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자기 다리로 걷지 않은 사람은 이미 의사에게 가고 있는 셈이다.
건강은 힘들여 얻었을 때만 기쁘게 누릴 수 있다.

묵언 건강법
침묵을 통해 짜증을 피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인생은 끝이 없다
초조는 가벼운 병의 원인이다. 우선 마음이 조초해지고 곧 몸이 따라간다. 하지만 서두르는 것은 낭비일 뿐이다. 세상이 불타고 있다고 해도 초초감으로 불을 끌 수는 없다.
도저히 끌 수 없는 불에는 소방수들이 물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구하는 데 집중한다.
우리는 단지 가능한 것만을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초연한 정신은 내 삶의 기둥

마하트마, 인류의 위대한 유산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내적 방식으로 20세기이 중요한 세 가지 혁명, 곧 식민주의, 인종주의, 폭력주의를 타파한 혁명을 이끌어낸 간디
‘혼자서 단숨에’ 인간 전체의 질적 함량을 높여 놓았다

인간이 갖춰야 할 몸과 마음의 양식
진정한 건강 없이 진정한 행복은 없다

Happiness is when what you think, what you say, and what you do are in harmo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