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 전쟁 문화 전쟁 | 음식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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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전쟁 문화전쟁. 주영하. p324

음식에 얽힌 인간의 행위는 인간의 삶 자체이다. 음식을 먹고 마시는 인간의 행위 속에는 너무나 인간적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문학적인 표현들이 가득하다. 다만 우리가 그러한 의미를 요사이 들어서 자각하고 있을 뿐이다.
문화인류학이란 학문의 안경을 쓰고 살펴본 우리의 먹고 마시는 행위

#기근과 포식으로 점철된 인류 역사
왕조의 성립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먹을거리를 통치자에게 집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비록 식욕이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고 하지만, 그것이 권력과 탄탄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사람들의 음식 욕심은 독 정치적 욕구가 되었다
“음식으로 가득한 위장이 최고의 도덕”이라는 말은 로마인을 위해 만들어졌다

신대륙의 발견과 19세기 유럽 각국의 식민지 경영은 유럽인들을 기근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 결정적 사건이었다.
결국 20세기는 적어도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포식의 시대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의 주도권을 쥔 미국을 중심으로 식품산업이 급속하게 성장했다

인류학자 라페와 콜린스는 가뭄과 기근 그리고 굶주림의 원인이 단순히 표면적인 가뭄 때문만은 아니라고 단언했다…1920년대부터 프랑스의 식민지 관리들에 의해 면화 생산을 위해 시작된 집단적 농업은 토지를. 척박하게 만들있고, 가축을 먹일 초원 지대가 줄어들게 했다. 특히 자의적으로 그어진 국경선은 목축민들의 이동을 어렵게 했고 결국 자연 환경 파괴를 가속화시켰다. 이것이 1970년대부터 시작된 이 지역의 지속적인 가뭄과 그로 인한 기근과 아사를 조장한 것이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이 지역의 기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제1세계의 시민들이 엄청난 기부금을 투자하고 있지만, 이미 파괴된 자연 환경을 되돌리기에는 여전히 역부족인 것 같다.

음식으로부터 여성의 해방? 오랜 시간 동안 부엌에서의 지식을 독점했던 여성들이 갑자기 사라지면서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공장과 식당에만 의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장과 식당에서 만드는 음식은 자본주의적 논리가 가득 찬 음식이다.
‘요리=여성의 일’이라는 관념? 오로지 ‘인간다운 음식’이 더욱 요구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실패한 식혜? 전통 음식이란 대체로 속도의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동시에 이것은 가내에서 몇 사람의 가족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패스트푸드로 만들겠다는 발상은 마치 아날로그 방식의 전화를 무조건 디지털 방식에 끼워서 왜 통화가 안 되지 하며 근심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날로그는 아날로그이며 디지털은 디지털이다. 서로 호환할 수 있는 시스템은 가능하겠지만 완전히 바꾸려면 하드웨어 자체를 바꾸어야 한다.(새로운 개념인 ‘슬로푸드’의 등장)

‘흰 쌀밥에 고깃국으로 배불리 먹자’? 한편 농사 정책을 쌀에만 집중시킨 남북한 양쪽은 이제 자연환경의 파괴에까지 이르렀다. 개펄을 논으로, 오염의 지원지로, 화학비료와 농약의 대량 살포, 무리한 관대 농업은 지하수 고갈, 황폐화된 땅

얻는 만큼 주어야 하는 것이 자연인데, 얻은 만큼 주지 않고 계속 빼앗기만 해 온 일류의 역사는 이제 거대한 함정에 빠졌다(부족한 유기농의 생산량? 적게 먹으면 된다!)

#음식과 기술
근대 식품 공업의 시작은 자본주의의 출발과 같은 선상에서 이루어졌다. 자본주의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시장 경제의 논리다. 이른바 소비자의 욕구에 충실히 맞추어 제품을 생산한다는 것이 공장주나 자본가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다. 밀가루에 표백제를 쓰게 된 이유는 단지 소비자들이 흰색의 밀가루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아마도 제분업을 하는 자본가들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노라는 것인 많은 판매이지 결코 소비자의 건강한 신체를 염려하는 것은 아니었다.

불고기는 한국 것이 아니고 일본 것? ‘맥적’이나 ‘너비아니’로 알려진 불고기는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천대받은 유기농? 유기농업 농산물의 수확량은 결코 많지 않다!
비싼 가격과 기아문제의 해결이 가능한가? “사람들이 먹는 양을 줄이면 된다”-원경선 풀무원장

#음식과 경제
공동체 음식에서 경쟁적인 음식으로
전통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음식들을 스스로 소비하기 위해 생산했기 때문에 상표명이나 제품의 이름을 내세운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스럽게 등장한 가공 식품은 사람들로 하여금 제품 자체의 고유한 명칭과 상표를 혼동하게 만들었다.

#음식과 공동체: 식사 습관과 맛의 사회화
음식의 진짜 맛을 잘 아는 ‘미식가’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음식은 어떠한지를 잘 구별해 내는 ‘맛의 감별사’가 존재할 뿐이다…그것을 맛본 외국인은 그저 맵다고만 느낀다. 그들은 고추장 속에 숨어 있는 깔끔한 맛을 결코 발견하지 못한다. (느낌의 차이)

‘어떻게 하면 모든 국민이 쌀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겠는가’
그러나 3공화국 정부가 펼친 벼농사 중심의 농업 정책은 결국 한반도에서 콩이나 밀과 같은 잡곡 농사를 소멸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농산부에서 낸 통계 자료에 의하면, 1965년 보리와 콩은 자급자족이 되고도 남았다. 그러나 1989년에 와서는 쌀과 보리만 자급자족하고, 콩은 국내에서 거의 생산되지 않아 외국산에 기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기술은 문화의 한 요소이다. 문화란 사람이며, 문화인류학은 그 사람의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사람이 지닌 기술을 이해한다는 것은 사람을 이해하는 작업과 같다. 한 사람이 만들어 내는 음식은 그가 지닌 기술이며 그가 지닌 문화이다.
한국의 전통 음식이 지닌 보이지 않는 기술은 전통 세대의 삶 속에 있다. 그 삶을 재구성하면 기술이 보인다.

더러움의 본질은 ‘제자리에 있지 않은 물질’

#음식과 민족

오늘날 우리는 음식을 선택하면서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판단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 소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러한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우리가 매일같이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행하는 음식 선택은 예전 사람들에 비해, 심지어 신석기 시대 사람들에 비해 덜 자유스럽다.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음식 중에서 약 30% 이상을 식품공장에서 생산된 것들에 기대고 있다. 나머지 음식 재료들 역시 판매를 목적으로 식품 원료를 재배하는 농민들 선이 의지할 수밖에 없다.

민족음식? 경험적 합리성에 기초한 식사 구조

핀드혼 농장 이야기 | 생명, 넘치는 생명

핀드혼 농장 이야기.핀드혼 공동체.(조하선) p296

#1 신은 인간을 가꾸고 인간은 농장을 가꾼다_피터

핀드혼 농장에서 우리은 진실로 창조의 비밀을 배우는 개척자들이라고 느꼈다

내가 받았던 가르침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어디에서 누구와 있든, 무엇을 하든 사랑하라‘는 것이었다

모든 것이 가능하고 그렇게 되리라는 것을 믿어라. 항상 기억하라. 내가 너희들에게 공급해주는 것은 하루하루의 필요한 것들이라는 것을. 그러므로 아무 것도 저장해 두지 말라…너희가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뭔가를 저장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 때마다 이 점을 기억하라. 결코 앞을 내다보지도 말고 뒤도 돌아보지 말라. 단지 지금 이 순간을 완벽히 살라. 그리하여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이 충족될 때마다 항상 감사하라.

나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사랑과 전적인 집중을 쏟는다면 흙에 빛을 넣어 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진정한 협력은 인간, 데바 그리고 자연령들이 동일한 생명력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은 새로운 것이며, 이 방법을 통해 세계는 재창조될 것이다. 너희들은 다양한 방법으로 창조의 비밀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창조의 법칙? 자연과 협력을 통한 완벽한 농장 만들기

이것은 이제껏 분리되었던 것들을 전체화, 통일화시키는 작업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꾸준함이다

농장을 창조해 나가는 데는 매순간 고도의 집중이 요구되었다. 나는 한순간도 다른 상념에 젖는 법이 없이 나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해서 일해 나갔다.

네가 일을 한 번에 하나씩 처리해 나감에 따라 농장은 자연스럽게 발전해 나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많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말아라.

완벽한 조화? 그러나 나는 그에게 이것은 전혀 계획하여 된 일이 아니라고 고백해야 했다!

인간들이 독성을 함유한 화학물질을 주입한다거나 기타 자기의 이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우주법칙을 거스르는 행위들을 자행하는 것은 모두 우리의 작업을 방해하는 것들입니다. 이 농장에서처럼 모든 것이 조화롭게 되었을때, 우리의 창조력은 방해받지 않고 가속화되어 행사될 수 있는 것입니다.

꽃을 자르는 일은 도살행위? 그 요정들은 금작화의 꽃 속에 살고 있었던 것이다!(인간의 무지로 인한 파괴적 행위)

가지치기는 꽃들이 개화하기 전에

넘치는 생명, 꽃들은 문자 그대로 빛으로 충만해 있었다

우리의 재정정책? “그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사람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과 그의 의지에 자신을 맡기면서 신은 그의 풍부한 창고로부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신은 이 문외한에게 모든 통로와 상황들을 보이며, 한 인간이 내부에 있는 신의 인도함을 좇아서 자연과의 진실한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농장은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협력한다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지 핀드혼은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생명!
바로 그것이다!
그렇다.
만일 누가 내게 핀드혼 농장에 대해 한마디로 묘사하라고 한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생명, 넘치는 생명’ 이라고.

유기농법과 사랑의 힘
거기엔 분명 다른 비결이? 땅 위에서, 땅에 의해서, 땅을 사랑하며 사는 이 그룹은 실제로 자신들의 삶을 통해 지혜와 자유를 최상의 형태로 꽃 피우는 철학을 몸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오컬트적인 설명만이 가능하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우리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하겠다. 우리가 설명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가…아주 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하여 거대한 산림을 이루는 이 기적을 생각해 보라.

인간과 자연의 조화
존재계의 다양성은 신 아래에서, 하나의 세계, 하나의 일, 하나의 목적을 위해 각기 다른 통로를 통하여 표현되어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 의식의 개화를 위하여
실제로 우리 농장의 성장은 인간혼의 성장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신은 이 문외한에게 모든 통로와 상황을 보이며, 한 인간이 내부에 있는 신의 인도한을 쫓아서 자연과의 진실한 협력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
인간과 자연이 서로 협력한다면 어떤 일을 해낼 수 있은지 핀드혼은 확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2 빛의 왕국을 찾아서_에일린

너의 길은 진실하고 단순하다. 그 길은 인간과 내가 손잡고 함께 이야기하며 거닐던 태초의 길이다. 신은 내 안에 있다.

비록 맡은 일은 서로 달랐지만 그 일을 통해 배운 한 가지는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렇게 해서 우리 주변에 새로움을 창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네가 하나의 일을 하게 될 때마다 그것이 무엇이든 그 일에 대한 네 태도가 올바른지 바라보라. 그러면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알게 될 것이다. 네 태도에 따라 일의 결과는 분명히 차이가 나는 것이다.

네가 휴식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마다 주변을 가볍게 산책하며 자연의 경이로움을 즐기도록 하라.
자신의 눈을 열기만 한다면 자연의 경이로움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삶은 단순함 그 자체이다. 너희가 그것을 복잡하게 만들었을 뿐이다. 너희에게 삶이 너무 힘겹고 무겁게 느껴질 때, 멈춰 서서 어린아이들을 바라보라.
아이들은 완전히 순간을 살며, 자기가 지금하고 있는 일을 즐긴다. 아이들은 내일 일을 걱정하지 않고 내일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바로 너희가 살아야 하는 삶의 태도인 것이다. 삶의 경이로움을 항상 의식하도록 하라.

일체성의 진리

완벽한 순환, 자연스럽게 생명의 일체성은 우리가 매일 겪는 일상의 경험이 되었다(생태순환적 삶)

우리의 일은 바로 영혼을 가꾸는 농사꾼이 되는 것이다.

#3 데바가 전해 준 메시지들_도로시

환희에 차 있거나 사랑에 빠져 있을 때, 경쾌한 기분에 있다거나 자유로움을 느낄 때, 그 때 우리는 데바들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본질? 모든 것은 하나의 생명이다!

인간들은 너무 자신들의 오감에 제한되어 있고 그것에 의존해서 세계를 의식하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과 인간의 시간관념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에너지를 변화시키고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데바계와의 접촉을 통해 내가 받은 가장 큰 영향은 바로 그들과의 교감을 위해서 내 자신의 의식을 보다 깨어 있는 상태로 고양시켜야만 했다는 것이다. 내가 우울하거나 화가 나 있거나 여러가지 부정적인 감정상태에 놓여 있을 때는 빛과 기쁨으로 충만한 그들의 세계에 들어갈 수 없었다.

무거운 마음으로는 우리 세계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우리 세계에 들어오려면 당신의 의식은 어린아이와 같이 자유롭고 밝은 상태여야만 합니다.

당신이 선택하기만 하면 자유는 항상 당신의 것입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구태의연하게 옛날의 관습에 젖어 있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한 생명 안에서
데바계가 생명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한 그들은 우리의 일부분인 것이다. 사실, 의식을 충분히 확장시켜 본다면 모든 것들이 내부에 존재한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면 당신은 우주의 어떤 것과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가장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들이 실제로는 농장일을 통해 가장 실제적인 효과를 보여 주었다(오컬트적인 지식?)

***이러한 의식의 변형을 이루기 위한 열쇠는 모든 생명의 일체성을 깨닫는 데 있다!
만일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의 행동 또한 변화될 것이다(존재하는 모든 것에 신이 내재한다)

***우리가 자신을 생명의 바다 안에 존재한다고 생각하고 또 그것과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인류와 자연의 협력은 필연적인 것이 될 것이다!!!

선악의 분리? 결코 생명은 분리시킬 수 없다!

#4 자연의 영과 함께하는 삶_록

당신은 단순히 사물을 보는 것입니까. 아니면 당신 눈에 보이는 것을 진실로 ‘보는’ 것입니까?

식물과 이야기하는 것이 바보스로운 것인가? 아무도 바보 취급을 당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남들에게 보이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용히 속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다

직관? “왜죠? 당신은 책이 아니더라도 원하기만 하면 모든 지식을 가질 수 있어요.”

“나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내 나무는 생명나무로 불립니다. 나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대로입니다.”

#5 지배에서 화합으로_데이비드

뉴 에이지의 물결이, 모든 생명의 일체성과 그 생명 속에 깃든 창조적인 신성에 대한 자각에 기초하여,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 주위에 그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고, 이런 인식이 나의 내면에서 강하게 자라나서 구체적인 행동으로 표현되기를 요구했다!(언행일치)

놀라운 생명력!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식량생산의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오염의 문제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오늘날, 그 해결책이 바로 영적인 데 있다는 실질적인 증거가 바로 그 안에 들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자연은 이용하고 착취해야 할 상품이 되어 버렸고, 정복하고 지배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서구문화의 이러한 사상에 배경이 된 원형적인 패러다임은 성서에 나오는, ‘인간은 신의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지상의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이 부여되었다’는 내용이다!(창1:26~28)
우리가 자칫 이 구절의 진정한 의미을 잘못 이해한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물질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우를 범하게 될 것이다

자연의 생명, 정령은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애니미즘, 범신론의 기본사상!

비교(신비로운 가르침)에 따르면, 자연의 내부와 외부에 있는 실재들을 이해할 수 있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다면 자연 또한 이해할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이 자신의 생활 양식만을 좇다 보면 지구에 부조화를 초래할 것이며 그것은 진화와 발전의 노정으로부터 스스로를 이탈시키는 행위가 되고 마는 것이다(진보의 함정?)

지구를 자기 생각대로만 만들어 가려 했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의 권능에 속해 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무지하고 잘못된 방법으로 접근했던 것이다. 흙에 화학 약품을 투여할 필요도 없으며, 무지막지한 힘을 행사하여 자연의 형상을 자신의 계획에 억지로 뜯어 맞추려고 할 필요도 없다. 인간은 사랑과 존중과 협력 으로 함께 일할 자유로운 공간을 허락해야만 한다.

인간들은 세계와의 일체성, 우리와의 일체성을 이해하고 배우지 않고서는 성장이 불가능하다. 인간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인간의 유산인 그의 본성을 끌어내어 고양시키는 것이다.

사랑을 통한 재배
신은 모든 생명 안에 존재한다. 자연계의 존재들은 당신들 인간보다 저급하지도 더 위대하지도 않다. 그것들은 단지 인간과 다를 뿐이다!

창조의 힘과 법칙이 가장 잘 기능할 수 있는 것은 거기 사랑이 있을 때뿐이다

#6 농장의 현재

판자촌에서 흔히 쓰는 모토? ‘모든 일에 융통성을 발휘하라’

우리 농장에서는 농사규칙 따위는 없다? 왜냐하면 규칙이라고 하는 것은 나날이 성장하고 진화하고 있는 것들을 한정시켜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규칙을 세우기보다는 식물들과의 통신에 문을 열어 두는 것이 더 중요하다(일체성 속에서 교감하는 것, 농사법이 아니라 자연과의 교감을 발견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랑은 항상 식물의 필요에 우리가 깨오 있도록 인도해 주는 근원적인 열쇠가 되어 준다.”

잡초와 해충? 투쟁이 아니라 협력과 사랑을 할 수 있는 태도의 변화가 필요

우리가 진정으로 배워야만 하는 것은 흙을 살아 있는 존재로서 대하는 방법이다!

전체성? 하나를 위해 또 다른 하나를 부정한다는 것은 불균형만 초래할 뿐이다!

사랑은 분리된 모든 생명들을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것들을 연결시켜 주는 에너지이다!

우리가 지구를 살아 있는 하나의 유기체로서 생각할 때, 지구 또한 내면 깊숙이 완성에 대한 심상을 갖고 있으며. 그 심상에 대한 발현수단으로서 자연의 모든 것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성장과정의 본질은 신성이다

핀드혼 농장 이야기? 당신은 당신 자신과 당신이 가진 생명의 본성에 대해 읽은 것이다. 당신이 당신 운명의 씨앗인 자기 존재에 대한 원예가이다!

녹색평론선집2 | 환상과 야심을 버려라

녹색평론선집2.김종철

#공생두레농-농업위기와 그 대안_천규석
과거의 보릿고개 같은 상대적 결핍과는 전혀 달리 수입개방에 따른 결핍적 과잉이란 점에서 일찍이 경험한 바 없는 위기로 파악된다(풍요 속 빈곤)

농업정책의 부재

시장의 확대란 자원(생명)파괴의 확대의 다른 말이다

신농정의 엘리트주의? 못 배운 무식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배웠다는 무식이야 구제불능으로, 이 세상 망치는 화근의 불씨다!

#한에서 희망으로_정경식
무농약 농사의 출발? 매고 또 매어도 끊임없이 돋아나는 풀매기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잡초는 없다)

“오늘의 농법은 땅을 죽이고 생명을 죽이는 죽임의 농법이니 생명농법으로 전환시키자면 그 정도의 통증이 따르지 않으면 안됩니다. 어머니들이 견디기 어려운 진통을 겪은 후 비로소 한 생명을 잉태하는 것과 마찬가지지요. 지금 당신들의 그 통증은 새로운 생명농업을 잉태하기 위한 축복받은 진통인 것이오. 그러니 모든 걸 자연에 맡기시오. 자연은 자연의 순환법칙을 통해 그대의 그 통증을 치유해줄 것이오.”

붉은 노을 아래 펼쳐진 나락은 유난히도 불게 보였다….생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나서 농약을 쳐야 되겠다는 생각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겠다는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상처를 입고서도 자연치유가 되기를 기다리는 자세와 같다. 흐르는 피가 저절로 멎어 아물 때까지 상처의 고통을 참고 견뎌야 하듯이, 무농약 농사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외적 조건과는 물론 자기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벼농사에 뿌리박은 삶-일본의 생활자치운동_후루사와 코유

인간적 규모의 비집중화된 경제
오늘날 일본에서 쌀에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 삶의 거의 모든 면이 경제적 합리성의 지배를 받고 있다
과잉생산과 그에 따른 국제적인 곡물가격의 불안정

협동조합 ‘생활클럽’-정치는 나날의 생활에서 시작된다! “부엌으로부터의 정치개혁”
신뢰에 기초한 협동조합, 농민과 소비자 사이의 직접적인 접촉을 크게 중요시한다!!!

‘젊은 잎사귀들’ 협동조합에는 400가구와 11개 농가가 들어 있다.
‘젊은 잎사귀들’ 같은 협동조합에서 소비자들은 여러 면에서 이익을 얻는다. 농작물은 거의 다 익었을 때 수확되고, 통상적인 경로로 분배될 때보다 훨씬 빨리 소비자들에게 도달한다. 이것은 더 맛있을 뿐만 아니라 건강에도 더 좋은 음식을 제공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철에 나는 것을 먹고 자기 지방에서 자란 음식을 먹으면 보다 큰 영양적 가치를 얻는 것이다!(생산적 소비)

#아미쉬-살아있는 생태공동체_토머스 포스터
산업문화와 반대되는 가치를 구현하고 있는 공동체
농업중심의 생활과 적정기술의 이용에 대한 도덕적 헌신이 있고, 그와 함께 도시적 생활양식과 공장기술에 대한 도덕적 거부가 있다.
생태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검소한 공동체’(자발적 간소함,simple living)

자급자족! 아미쉬들은 여하한 종류의 정부농업보조금이나 복지금도 받기를 거부한다…그들은 자신들을 스스로 보살피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사회보장제도 제외해달라 법원 청원, 수락된 유일한 집단)

적정기술과 화석연료로부터의 해방
에너지 효율적인 노동집약적 농법? 적자에 허덕이는 값비싼 현대기술을 이용한 첨단(?)농법보다 높은 수익성!!

소비지향 교육으로부터의 자유? 아미쉬학교들의 주요 목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외부가치들, 즉 개인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로부터 아동들을 단절시키는 것이다!(상업 라디오, 텔레비전, 그리고 잡지광고로부터도 단절되어 있다)
물질중심주의와 소비주의의 끝없는 욕망? 그러나 사람이 자기의 욕구를 제한하도록 교육된다면 만족이 가능하다는 사실에 대하여 그들은 아마 의견일치를 보였을 것이다(탐욕의 반대말은 무욕이 아니라 만족이다!)

##가이아의 얼굴

#삶의 도랑에서_장일순
한밤의 풀벌레 소리에 놀랄 때? 이럴 때면 내 일상의 생활은 생활이 아니고 경쟁과 투쟁을 도구로 하는 삶의 허영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그 풀벌레는 나의 거룩한 스승이요,…

#삶의 진실_박경리
물질이 유한이면 그것은 현재이고, 무한은 미래다. 눈앞의 것은 보이지만 먼 곳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보이는 확실한 것만이
우리를 구제해준다는 것은 망상이며, 가시적인 것이 결코 전체는 아니다. 가시적인 것, 현재만을 믿고, 보이지 않는 것, 미래를 망각한다면 개인의 경우도 그러하지만 민족과 인류 모두의 욕망은 일그러질 것이다.

#이박삼일의 남도기행_박완서
나에게 시골이란 말은 고향과 거의 같은 뜻을 지니고 있었다
여행을 한 적은 많지만 시골맛을 본 것하곤 달랐다. 나에게 시골맛이란 완전한 평화와 안식을 의미했다!

근대화? 도시사람이 눈에 불을 켜고 돈과 편리를 추구하는데, 농촌이라고 그러지 말란 법이 없었다!
오염 안된 시골이란 환상? 도시의 간교함과 농촌의 촌스러움을 조잡하게 뒤섞어 놓은 것처럼 어중간한 시골 인심에 접하는 것은 민망하고도 피곤한 일이었다

서울역의 혼잡함? 멀미 중 제일 고약한 사람 멀미!(인도주의니 인류애니 하는 것이 실은 얼마나 믿을 게 못되는가?!)

수없이 정거하는 시외버스와 시골풍경? 감동이라고 해도 좋았고 개안이라고 해도 좋았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여행은 과정을 무시한 목적지 위주의 여행이었다. 그게 얼마나 바보 여행이었던가를 알 것 같았다

자연은 위대한 영혼을 낳기도 하지만 위대한 영혼 또한 자연의 정기가 되어 자연을 빛나게 한다(초의선사의 일지암과 다산이 넘었다는 험준한 봉우리)

#먼저, 마음을 무(無)로 하십시오-환경을 건지는 원점_오시다 시게토

사람이 나라는 ‘자아(ego)’의 입장에서 다른 존재를 보았을 때, 하나하나의 존재는 참된 제 얼굴을 내보여주지 않습니다. 우리들의 욕망이 거기에 반영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나만의 세계를 떠나서 마음이 무가 되었을 때, 한 존재, 한 그루 나무의,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귀함을 느끼는 것입니다…산소를 내주고 있다는 그것뿐이 아니라, 그 존재 때문에 나도 삶을 허락받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한 느낌이 있을 때 비로소 환경이라는 말을 할 스 있는 것이며, 그것을 소중히 한다는 것이 곧 환경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뜻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하나의 살아있는 존재, 흙도 돌맹이도 살아있어요. 하지만 나(에고)라는 입장에서 보면 전부가 물건으로 보이는 거예요. 이것이 현대문명입니다. 무명(無明)의 세계이지요. 이걸 문명이라고 그러고 편리하다고 하고 좋은 것인 줄로 알고…자연이 무엇과고 대신할 수 없는 존재임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고 말았어요.

***환상과 야심을 버려야 한다!
1+1=2라는 것은 그런 것 같다는 기분이 들뿐이라는 자각이 없는 한, 수(數)라는 것이 금같이 귀중해집니다…썩어야 할 물건에 썩지 않게 하는 물질을 넣으면 생명의 순환에 해독을 준다는 것쯤은 알 터인데, 머리로 생각하는 놈들은 그것도 몰라요. 천연스럽게 방부제를 넣지요. 자기가 돈을 벌기 위해서.
1+1=2가 진리라는 교육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인간이 형성돼버리는 것이예요. 그런건 전혀 진실이 아니에요.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 뿐입니다.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존재란 셀 수 없는 겁니다. 그것은 서유럽에서 들어온 환상이지요. 수를 절대화하고 기하학을 절대화하는 것은 서유럽적인 환상입니다.

##교육이냐 폭력이냐

#학교교육의 횡포_존 테일러 개토
[바보 만들기-강제적 학교교육의 감추어진 과정]

학교가 제일 잘 가르치는 것은? 멍청함!
오늘날 멍청한 사람은 단순히 무지한 것이 아니라 진부한 개념을 생각없이 받아들임으로써 생긴 피해자이다
타임지, CBS, 뉴욕타임즈에 정통한 멍청한 사람들? 그들의 일은 남들이 한 생각, 얻어들은 의견들 중에서 어느 것이 제일 마음에 드는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이 새로운 무지의 제국에서 남들의 생각을 가장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엘리트이다.

대규모의 멍청함은 현대사회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멍청한 사람은 심리적 조작을 하기에 아주 좋은 유순한 사람들이다.

진정한 지식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사고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집단토의나 집단치료에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오직 혼자만의 외로운 시간에서만 생겨난다.

새로운 멍청함-수용된 개념에 대한 무사고-은 단순한 무지보다 훨씬더 위험하다.

사고의 통제는 학교교육이 의도적으로 수행하는 일의 일부? 미국 최고위 교육행정가 윌리엄 토레이 해리스의 [교육의 철학]!
“백명 중 아흔아홉명(의 학생)음 조심조심 정해진 길을 따라 걷고 정해진 관습을 따르는 자동인형들이다”라고 쓰고 있다. 이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실질적인 교육의 결과인데, 과학적으로 정의하자면 교육은 개인의 평준화이다”라고 해리스는 설명한다.

받아들여진 개념들, 남들이 이미 다 해놓은 생각들의 무게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개인들은 스스로 사물을 평가하려는 노력을 포기해버렸다. 학교에 대중매체들이 기성품으로 됭 생각과 판단을 수없이 제공하고 있는데 왜 그것을 스스로 하려고 애쓴단 말인가?

새로운 멍청함은 순응을 강요하는 수많은 요구에 의해 이미 경박스럽게 되어있는 중산층이나 중상류 사람들에게서 특히 심각하다.

쓸모있는 교육? 쓸모있는 지식?(집짓기, 목선 만들기)

우리에게 학교교육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다!
평균적인 스웨덴 사람은 학교교육을 너무 많이 받은 미국인들보다 낫다. 어째서 여러분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가? 여러분이 모르고 있기 때문에 이익을 보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학교의 과학과 진짜 과학? 과학교사가 과학자, 즉 자연의 신비에 대한 열정을 지니고 자신의 시간에 이런 관심사를 추구하는 사람인 경우는 거의 없다!

텔레비전이 남의 눈을 통해 본 모습, 남들이 해본 생각, 그리고 불건강한 환상을 제공함으로써 사람의 사고능력을 파괴해버린다는 것을 알면서도 PNS 공영텔레비전은 예외일 거라고 믿는 가련한 지식인들도 어리석기는 마찬가지이다.

진짜 책과 학교 교과서는 다르다? 위장된 교화 도구? 가르치는 사람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도록 의도된 그림 짜맞추기 같은 교과서!

프러시아식 학교교육
지휘요원에게만 생각하는 훈련을
국가적 교육의 목적은 지적 훈련이 아니라 복종과 예속
점수와 보고서가 측정하는 것은 지적 성장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복종? 정교한 교육학. 학교교육이 세속의 종교, 공식적인 국가종교!
학교교육의 중심목표? 집단화
교과서는 군중통제의 수단이다
마취제로서의 텔레비전의 기능 그 자체야말로 좋은 프로그램과 나쁜 프로그램 간의 하찮은 차이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력한 것이다

진정한 책은 교육을 하고 학교 교과서는 훈련을 시킨다

#심성교육과 작은 학교_사티쉬 쿠마르
어머니는 가장 좋은 스승이다

나는 누구도 어머니보다 윗자리에 둘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의 가르침에서는 어머니가 나에게 무어라도 가르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생각이나 관념, 견해를 나에게 준 일이 없습니다. 오직 사랑을 주었을 뿐입니다.

“그대의 아이들은 그대의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갈망하는 생명이다”-칼릴 지브란, [예언자]
아이들에게 사랑은 주어도 되지만 생각은 주어서는 안된다
위험한 생각들을 썯아넣느라 바쁘게 돌아서면서 한 조각의 사랑도 주지 않는 학교교육

나의 어머니의 관점에서는 아이가 텅 빈 물통이 아닙니다. 아이는 하나의 씨앗, 한 개의 도토리입니다.
“어린애가 뭘 알아”
“얘야, 너는 모든 걸 알고 있다. 네 속에, 너의 영혼 속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어. 도토리처럼”

때로 사람들은 오만하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마이크로 칩이나 컴퓨터 디스크나 CD 같은 멋진 것들을 만들어냈다. 그 속에 얼마나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가. 이 하나의 디스크에 몇 메가바이를 저장할 수 있는가!” 사람들은 조금 겸손해져서 도토리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몇 메가바이트의, 얼마나 많은 정보가 거대한 참나무로 자라나서 수백년을 살고 수백만개의 도토리와 나뭇잎과 가지들을 만들어낼 저 조그만 도토리 속에 들어있는 것인가?

꿀벌은 우리의 스승입니다
꽃과 꿀벌 사이에는 완전한 비폭력적 관계가 이루어져 있습니다…인간은 자원이 끝장이 날 때까지 갑니다.
우리는 쓰레기를 만들어내는 사회입니다. 우리는 꿀을 만들어내지 않습니다.

“시간을 절약해?”
“시간이 부족하니? 신이 시간을 만들 때 넉넉히 만들었단다. 어리석은 아이야. 무한한 것을 절약하려고 하는구나! 그리고 너는 한도가 있는 것을 소비하려 하고 있어. 전기니, 금속이니, 기계를 만드는 데 쓰는 모든 재료들, 그런 것은 한도가 있는 자원이다. 너는 무한한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한도가 있는 자원을 쓰라고 말하고 있는 거야. 그만둬, 나는 바늘을 쓰는 게 좋아!”

작은 학교-촛불 밝히기
어둠을 저주하고 있어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촛불을 켜는 것이 더 낫습니다.
거대한 학교들 계속 비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음식 만들기는 가장 기본적인 학과목입니다

땅에 뿌리를 내린 교육
기본적인 배움으로서 우리는 음식에 대하여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트랜드의 작은 학교에서 우리는 마을 전체가 우리의 학교라고 말합니다

#사회정의와 공생의 기술_나린다 싱
조금 도식적으로 말해본다면, 처음에 기술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적인, 즉 인간적인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기술이 선택되고 나면 기술은 저 나름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 극단적으로 환원주의적인 기술적 효율성의 개념이 생존의 조건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그보다 다른 것은 기대할 수 없다.

뿐만 아니어 그것은 인간생활의 기초적 필요의 충족이 아니라 인위적인 욕망의 생성과 자극을 중심으로 조직되는 것인 만큼 결코 합리적인 사회가 될 수도 없다.

***진정한 사회진보는 ‘욕망’에 기초한 경제로부터 일차적으로 ‘필요’에 기초한 경제로 옮겨갈 수 있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자동차로부터 자전거로의 비약적 전진이 있어야 한다고 호소하는 것이다.

#삶과 죽음_소기얼 린포체
서구에서는 삶과 죽음을 하나의 전체로서 보도록 가르침을 받자 않습니다. 죽음을 따로 떼어 봅니다. 이것은 우리거 삶에 몹시 집착하여, 죽음을 거부하고 부인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신은 서구세계가 죽음에 대한 태도를 바꾸는 것이 개인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지구를 위해서도 중요하다고 느끼시지요?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부정이 함축하고 있는 것은 그것이 장기적인 어떠한 안목도, 우리의 행동의 결과에 대한 어떠한 생각도, 그리고 어떠한 진정한 자비심도 없는 세계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그것은 환경파괴에 대한 우리들의 무책임성에 간접적으로 기여합니다.

간단히 말하여, 깨달음이란 괴로움을 끝내는 것을 뜻합니다. 괴로움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무지에서 옵니다.

“당신의 과거의 삶을 알고 싶으면 현재의 당신의 행동을 들여다보아라. 당신의 미래를 알고 싶으면 현재 당신의 행동을 들여다보아라.”(인과, 윤회)

#아흔살의 관점_헬렌 니어링과의 대담
우리은 아주 충만한 삶을 살았어요. 우리는 그것은 좋은 삶이라고 불렀지요. 우리에게는 정말 좋은 삶이었어요. 누구에게나 그렇지는 않았을는지 모르지만 우리에게는 그랬어요.

우리는 돈보다 자유로운 시간에 관심이 더 많았지요.

[요리에 반대하는 책]
내 생각에는 익히지 않은 채소와 과일들이 더 생명력이 있고 더 건강한 식품이에요. 음식을 익히는 것은 부자연스러워요. 식품은 본래 익어서 먹을 수 있는 상태로 있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