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 행복한 농부

이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농사꾼 이야기. 이영문. p247
건강한 자연과 땅에서 일군 지혜

무릇 쌀농사란 봄에 물을 가득 대서 논을 깊이 갈아 써레질을 한 후 잘 키운 모를 내다 심는 것이 그 순서가 아닌가. 그런데 마른논에 무경운 직파라니? 결과는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문제는 땅이다. 땅심이다.
건강한 흙! 무경운 직파 농법으로 농약과 비료가 전혀 없는 농사가 가능했다!

1992년 태평농법과 직파기계까지 발명

오랫동안 믿어온 농사의 기본? 땅을 갈아엎어야 한다(경자유전,주경야독? 잘못된 ‘경’)
태평농법의 핵심? 무경운 직파, 땅을 갈지 않고 직접 씨를 뿌린다!

태평농법의 원리? 의외로 간단하다!
일반농법: 볍씨 소독, 싹을 먼저 틔우고 뿌리를 내린다, 뿌리가 약한 모를 위한 로타리 작업
싹보다 먼저 튼튼한 뿌리를 내리는 볍씨, 벼의 영양분은 땅속의 미생물에게 맡겨둔다
완벽에 가까운 생태환경이 벼를 자랄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는 놈’,'정신 나간 놈’,'원래 게으른 놈’, ‘그런데 정말 그게 가능해?’

자신들이 믿어온 농법이 하루 아침에 부정을 당하는데 가만 있을 농업학자나 농업 전문가가 어디 있겠는가? 농약 회사나 농기계 회사 역시 이영문의 태평농법에 마음 편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연의 논은 스스로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벼를 길러낸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비료와 농약으로 땅을 못 살게 굴고 고문하는 농법을 고집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땅이 살아야 사람이 산다. 비료로 땅을 비만하게 하고 농약으로 그 땅의 생명력을 죽여가는 농법은 지양해야 한다.

“왜 보리를 안 심으셨습니까?”
“…”

아버지는 선뜻 대답을 않는다. 아직 자신이 없는 것이다. 아들이 만든 프로그램(KBS환경스페셜 다큐멘터리)을 보았지만 그것은 아들의 일, 당신의 농법이 아니지 않은가.

현행농법과는 반대의 길(거꾸로 희망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확신한다. 그 동안 나는 비록 대다수 인간의 지식에 등을 돌리며 걸었지만 결국 그 길은 자연과 한발 가까워지는 과정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화학농법으로 피폐해진 땅을 살리고 그 땅을 볍씨, 거미, 미꾸라지, 잠자리, 그리고 진드기와 벼멸구까지 함께 어울려 사는 곳으로 가꾸는 동안 나의 시야는 어느새 농사라는 범위를 훌쩍 뛰어넘어 차츰 새로운 눈을 뜨기 시작했다…그리고 마침내 자연이라는 커다란 화두가 온 마음으로 들어선 것이다.

우리가 떠나왔던 그 본래의 모습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원인은 단 하나? 만물의 영장, 스스로 세상의 중심이라 여겨온 까닭!

다 버리고, 자연과 더불어서 살기 위한 동물로서 인간은 너무나 퇴화되어 온 것이다.

[모든 것은 흙속에 있다]
태생적으로 부실한 먹거리? 인간 때문에 아픈 자연, 아프기 때문에 그 안에서 나오는 곡식도 건강하지 못하다

#게으른 농부, 부지런한 자연
일어나자마자 가는 논? 논 식구들 구경하는 재미!
제아무리 해충이 많다고 해도 익충이 그보다 많아지면 힘쓸 도리가 없다…그게 모두 내 농에 살림을 차리고 들어앉은 여러 곤충 농사꾼들 덕분이었다.

진딧물 집합소? 천덕꾸러기 무궁화? 한 몫 하는 훌륭한 농사꾼! 천적의 먹이 제공, 살충제 없이 해충 없애는 방법(논가에 무궁화를 심어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겨울에도 땅밑 세상은 활발히 살아 움직인다
농약과 비료시장 무기를 미련없이 버리고,나를 대신하여 논을 갈고 작물을 가꿔주는 고마운 일꾼, 능력있는 농사꾼을 얻었다!

##자연 이야기
#오 이쁜 청개구리
파충류 학자도 모르는 청개구리의 샹태 특성
#날짜 속에 숨은 비밀
맨날 하는 일이 똑같아서 어제와 내일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 농부들에게도 기록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레코드텔링)
나의 취미는 관찰이니 그저 관찰이나 할밖에(아는 만큼 보이고, 사랑하면 알게 된다)
자연농법? 자연을 보라, 자연이 스승
#작고 보잘것없는 것이 세상을 이룬다
만물의 영장? 말초!
나무의 중심은 뿌리? 그 중심도 잎이라는 말초가 없이는 생명을 유지하기가 힘들다
나뭇잎에 목초액 살포? 사람 몸에 유성 페인트 칠하는 꼴!
#어머니와 박속 이야기
나이든 여성들이 두려워하는 병? 돌림병처럼 흔해진 병? 골다공증
칼슘이라는 낯선 처방제 대신 박을 심자
화학적인 방법으로 재배하는 작물로는 몸에서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다

#굴뚝 연기 속에 과학이 있다
굴뚝 없는 제주 민속촌? 옛 것의 지혜!
아궁이 불, 원적외선 여성병 예방
연기, 천연소독제
꽉막힌 실험실? 그보다는 자연의 이치와 흐름을 깨닫고 적절하게 응용할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과학적 농사꾼이다!
자연만 잘 관찰하면 태평농법보다 훨씬 더 태평스럽고 상징적인 농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옛 사람의 지혜를 배우다
불에 달군 무쇠솟과 냄비 국수의 맛의 차이
요즘 사람들은 전체적인 조화를 따지기보다 하나하나 분석하는 데 꽤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다
옛날 숯과 공장생산 숯의 차이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기본적인 방법에는 관심이 없고 엉뚱하게도 형태에만 집착하는 꼴이다

선조들이 행한 모든 일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똑같은 것은 싫다
무조건 남향집이 좋다? 획일적 사고
획일적인 교육
물은 절대로 직선으로 흐르는 법이 없다(자연에 직선은 없다, 곡선의 건축가,훈데르트 바서)
자연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기 다른 역할을 하듯이 우리 아이들은 획일적인 구조에 끌려다니지 않을 권리가 있다

#공기 좋고 물 좋은 농촌 만들기
농약 탓도 있지만 냇물이나 환경이 탁해진 것은 생활양식이 바뀐 탓이 크다(환경에 대한 인식도 부족)
진정한 정화는 하수가 다시 깨끗한 식수로 바뀔 수 있게 해주는 것이어야 한다
실제로 흙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정화조 역할을 한다(밭일 흙속에 똥)

#자연과 기계가 함께 여는 미래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수 있는 견고한 기계

우리는 앞으로도 살려야 할 것이 너무나 많다. 땅을 살려야 하고, 환경을 살려야 하고, 올바른 생각을 살려야 한다. 그와 함께 기계도 살려야 한다.

##흙 이야기
#자연, 최고의 항생제
상처에 바른 논흙? 세균에 감염되어 죽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가 살아서 활동하는 자연에는 질병이 없다(자연 안에 항생제가 이미 다 있다)
그런데 인간은 갈수록 자연과 동떨어진 곳에서 헤매는 것만 같아 안타깝다
멀리서 찾지 말고 우리 주변의 자연으로 눈을 돌리자
지금은 병원을 찾아다니고 항생제를 맞을 때가 아니라 자연으로 눈을 돌릴 때이다.

#흙은 말기 암에 시달린다
사람이 먹는 식물을 길러내는 땅은 지금 무엇을 먹고 있는가. 대표적인 것이 비료와 농약이다.
화학비료가 들어간 물은 산소가 없어진다
부실해진 토양에서는 전에 없이 병충해 피해도 많아졌다.
비닐 하우스를 이용한 ‘청정농법’? 땅에 가하는 잔인한 스트레스!

화학비료와 농약을 전혀 주지 않고, 기계로 논을 갈지도 않은 태평한 농법을 썼더니 없어졌던 산소가 풍부하게 돌아왔다.

#썩은 동아줄을 잡은 농촌
나라에서 공짜로 쳐주는 항공방제? 물어보나마나 그건 오로지 농약 제조업체를 위한 일이다(보조금의 진실)
도움을 주는 쪽은 농민이 아니라 농약회사
‘과학농법’이 들어오면서 농민은 썩은 동아줄을 쥐었는 데 반해 농약회사는 튼튼한 동아줄 하나를 붙들었다고 할 수 있다.
전에 필요없던 비료값, 비싼 기계를 사다 써야 농사가 더 잘 되는 것처럼 믿게 만드는 교묘한 상술 때문에 가뜩이나 아픈 허리가 꺽일 지경이다.
지속성 살충제는 해충보다 익충을 먼저 죽인다
씨앗 소독? 아예 종자를 물에 담글 때부터 농약을 치는 실정
관행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없다.

“뭐 좋은 농약 나온 거 없습니까?”
“좋은 게 있긴 한데 좀 비쌉니다.”

다행히도 나는 새로운 농법을 찾아 이제껏 매달려온 썩은 동아줄을 과감히 놓아버릴 수 있었다

#절대로 논을 갈지 않는 농부
어리석은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은 다름 아닌 얄팍한 상업주의와 탁상행정 때문이다

#식물은 무얼 먹고 살까
사람이 친절하게 화학무기물인 비료를 내밀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간다. 아니, 친절을 베푸는 그 순간부터 그들 모두는 일손을 놓고 죽어간다.
식물의 삶에 간섭하지 말자! 저희끼리 내버려두면 물속에서든 산속에서든 스스로 먹이를 찾아내 잘 살아간다! 때로는 가만히 손놓고 지켜보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 경우가 있다.

#유기농법 유감
식물은 무기물을 먹고 자란다
일각에서는 유기물이 식물의 먹이인 것으로 알고 유기농법의 우수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말 그대로 덜 괴롭히는 것뿐이다

서리는 일종의 자연제초제

#말을 끌고 싶은 농부
초식동물에게 골분을 비롯한 각종 동물 폐기물이 섞인 사료를 먹인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이미 균형은 깨진 것이다.
반환경적인 납골당? 차라리 흙으로 돌아가는 무덤이 낫다!

##농사 이야기
#태평하게, 그러나 부지런히
그야말로 남들이 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만고태평으로 농사짓는다(거꾸로)
가을에는 반드시 보리와 밀을 파종
#나는 가을부터 농사를 시작한다

#벼는 왜 말립니까
이슬이나 구경하고 거미나 관찰하며 한심하게(?) 지내는 동안 관행대로 농사를 지은 농부들은 눈코뜰새없이 바빠진다
글농사? 농사는 힘들이지도 않고도 성공적으로 지을 수 있다는 사실, 농민도 노동의 중압감에서 벗어나 자신의 시간을 즐길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서다.

#잃어버린 종자를 찾아서

#소비자가 짓는 농사
농산물 경쟁력? 사실상 양적이면에서는 이미 승패가 갈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질적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오늘날 농산물의 품질은 뭐니뭐니해도 자연친화적일수록 높게 평가받는다

이제는 귀로만 듣고 끝낼 게 아니라 직접 농민을 찾아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판별하고 확인해야 한다. 직접 맛을 보라.
소비자가 이런 상황을 바로 알고 진짜 친환경 수박을 찾는다면 다시 품질 좋은 수박을 키우려는 사람들이 생길 것이고, 우리의 식탁도 건강해질 것이다.

좀더 적극적으로 생산에 관여하려면 직접 논으로 찾아가라(친환경 판별법? 물맛을 함께 보자고 해보자!)

소비자의 적극적인 참여 없이는 우리 농산물을 살릴 수 없다
비료도 치지 않고 농사를 지으면 생산비 절약되므로 값도 싸져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소비자의 적극 참여?

소비자는 좀 더 싼값에 건강을 챙길 수 있고, 생산자는 힘을 덜 들이면서도 판로를 확보할 수 있으니 좋다. 그래서 21세기의 진짜 농사꾼은 농민이 아니라 소비자인 것이다!

종자 수입? 총칼만 들이대지 않았을 뿐 이른바 선진국이라는 나라에 예속된 식민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다시 50년 전처럼 선진농업국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오직 자연을 살리는 길밖에 없다. 인위적인 방법은 모두 배제하고 자연적으로 농사지은 농산물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풍토가 되어야 비로소 선진 농업국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과잉연결시대 | 포지티브 피드백

과잉연결시대. 윌리엄 데이비도우. p296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

#이게 다 인터넷 때문이야!
속도지상주의, 차분한 성찰의 시간을 빼앗긴 투자가들로 하여금 다른 사람이 기회를 먼저 채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성급한 투자를 일삼게 하고, 그런 신중하고 못한 투자에는 눈만 돈이 몰려든다

연결과잉? 시스템의 내외부에서 연결성이 급격히 높아져 적응 불능 상태에 빠진다
연결과잉은 기술 남용 현상이 아닌 인간의 행동에 관한 현상이다
문제를 키우고 확산시키는 상호의존성? 오늘날엔 연결성이 강화될수록 문제가 커지기만 한다
금융 위기의 근본적 뿌리? ‘연결과잉’ 현상
과도하게 연결된 은행 시스템이 위기를 ‘증폭’시켰다
인터넷 자체가 문제의 일부? 촉매기능
‘사고 전염’ 인터넷이 현재의 위기를 더욱 치명적으로 키우고 확산시켰다!

#증기기관과 인터넷
철도의 출현은 중서부(시카고) 전체의 비즈니스와 자연환경에 일대 변혁을 일으켰다
정육업자 구스타부스 스위프트의 냉장열차 발명(축산업 혁명, 육류가공업계 구조 변혁)
카달로그 소매업자 등장? 세계 최초의 대규모 ‘가상공간’ 소매업자
철도와 무선전신의 결합? 농산물 선물 시장

#우리에게 다가온 과잉 연결 시대
조정기능을 상실한 시스템 상태(임계점)

“모든 거대하고 복잡한 동적 시스템의 연결성을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만 안정적인 특성을 보이며, 이후 연결성이 커질수록 급격한 불안정 상태에 이른다”

원자로의 노심의 용융상태(멜트다운)

규제 완화? 금융기관이 일정 수를 넘어서게 되면 경제는 연결되는 상태에 빠져들어 대혼란을 맞는다

‘피드백’은 공학적 의미다. ‘포지티브’라는 표현은 그 결과가 긍정적이란 의미가 아니다. 변화를 강화한다!
공학 용어로 사용될 때의 네거티브 피드백은 ‘비평’이 아니라 ‘안정성’을 설명하는 단어다.

실리콘밸리, 진보를 만들어 내는 포지티브 피드백? 결국에 가서는 부정적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연결과잉, 그 아슬아슬한 양날의 검
포지티브 피드백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다
실리콘밸리의 성공은 수백 가지 포지티브 피드백 루프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19세기판 실리콘밸리? 철강의 도시 피츠버그
과도한 전문화, ‘취약화 경로’ 현상의 사례

#거듭되는 사고, 반복되는 전염
거대하고 복잡한 경제적•사회적 시스템일수록 과도한 포지티브 피드백과 예측 불가능성에 취약한 모습을 보인다

**찰스 페로의 <정상 사고: 고위험 기술 속에서 살아가기>
사고는 일상적이다? 안전장치를 더 많이 할수록 끔찍한 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더 커진다!
“진짜 문제는 과잉연결성 때문일까요, 아니면 통제 수단의 실종 그러니까 규제 결핍 때문일까요?”

‘카트리나 효과‘? 큰 문제를 작은 수단으로 해결하려다가 훨씬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오랜 세월에 걸쳐 홍수가 반복되면서 뉴올리언스의 제방은 계속 높아지고 길어졌다(안전해 보였지만 실은 더 위험해진 상황!)

경제적 전염이 발생하는 곳에는 반드시 ‘사고 전염’이 뒤따른다. 가격을 끌어올리는 비이성적 탐욕과 그 반작용을 불러일으키는 패닉과 공포심 말이다.
경제적 전염에서는 ‘질병’의 운반체가 그 질병이 확산되는 데 따라 이득을 취하는 사례가 많다
모든 종류의 전염에는 네트워크가 필요하다

인터넷은 세상에 훨씬 더 많은 포지티브 피드백을 작동시키고 있으며, 더욱 빈번한 사고와 가변성, 그리고 전염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어 내고 있다.

#우리 앞에 괴물이 나타났다
모리스 웜? 최초의 웜 바이러스, 네트워크상에 있는 컴퓨터 마비

인터넷의 설계는 매우 눈부시고 유연하며 확장과 축소가 자유롭지만, 우리 앞에 괴물을 만들어 놓고 말았다.

원자로의 ‘열폭주’ 현상
‘열폭주’ 현상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기존의 노회한 통제 방법은 더 이상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바이킹의 후예들, 금융 전사가 되다
아이슬란드의 글로벌 금융허브?
인터넷과 아이슬란드의 ‘멜트다운’

#버블과 뱅크런, 그리고 벼랑 끝의 레밍쥐
도시화의 부작용, 스프롤 현상, 길어진 통근시간, 공해, 도시 공동화,..? 그 암울한 부작용을 미리 내다본 사람은 없었다!

포지티브 피드백이 많이 존재하는 상황에서는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어 그 결과를 옉하기가 유난히 더 어려워진다.

닷컴 붕괴는 인터넷이 중요한 역할을 했던 최초의 거대 금융 위기였다

데이 트레이더, 단타 매매자? 인터넷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소액 투자자들이 데이트레이딩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레밍효과? 레밍쥐는 들판을 가로질러 이동하다가 해안가 낭떠러지에 다다르면 바닷속으로 뛰어내리는 행동을 보인다. 이처럼 선두에 선 누군가의 행동을 따라하는 현상

#인터넷, 서브프라임 위기를 부채질하다
물론 화재가 언제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화재 가능성은 대단히 크다
결국엔 누군가 이 숲에 불을 놓으리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인터넷이 아니었다면 그런 상황은 오지 않았을 겁니다”

복리의 마술? 포지티브 피드백 효과

겉보기에 안전? 약간의 창의적인 금융공학만 적용하면 부채담보증권은 그런 속성을 갖출 수 있었다!
납덩이에 불과한 모기지 상품을 금덩이로 탈바꿈시키는 연금술 기법인 셈이다

#포지티브 피드백과 정보의 효율성
시시콜콜한 암기 시험? “사람들이 사실을 많이 알수록 거기에 대한 이론을 덜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라네”

인터넷은 프로세스 일부를 개선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체 시스템을 바꾸어 놓는 경우가 많다

생산설비 저개발국 이전(오프쇼어링)?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부정적인 요소 중의 하나는 바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해충과 질병을 몰고 온 그린혁명? 재래식 농법은 알고 보면 농사에 재앙을 불러올 포지티브 피드백 과정을 사전에 차단하는 역할을 한 셈이었다!

페로는 복잡계에 안전장치를 설치하려는 노력이 지나치면 안전장치의 기능 자체가 오히려 고장을 확산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세계의 상호연결은 그간 너무나 통제 불능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예방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인터넷에 힘입은 포지티브 피드백 과정의 영향으로 극단을 향해 치닫는 분야는 수천 가지나 된다. 금융 시스템, 자유무역, 이메일, 사생활, 소셜번 네트워킹, 사업 독점 등은 그 일부일 뿐이다.

대마불사too big to fail? 차라리 파산하게끔 내버려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문명이 진보되기 전의 세상이 더 멋지지 않았나요?”

진보는 멋진 것이지만, 그건 사회가 그 진보를 따라잡을 수 있을 때에만 적용되는 이야기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 의미있는 삶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플랭클. p243

“성공을 목표로 삼지 말라. 성공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표적으로 할수록 그것으로부터 더욱 더 멀어질 뿐이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찾아오는 것이다. 행복은 반드시 찾아오게 되어 있으며, 성공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에 무관심함으로써 저절로 찾아오도록 해야 한다…”

그의 경험은 이제는 개인의 경험이 아닌 인류의 경험이 되어버렸다

로고테라피 창안-’실존적 분석’
자신의 존재에 대한 의미와 책임을 발견하는 것

“‘왜’why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니체

인간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자유?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자유

치열한 생존경쟁의 각축장
그것은 일용할 양식과 목숨 그 자체를 위한 투쟁하지 자기자신과 사랑하는 친구를 구하기 위한 피비린내 나는 투쟁이었다

그들은 번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믿음을 상실하면 삶을 향한 의지도 상실한다

아우슈비츠,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은 글자 그대로 우리 자신의 벌거벗은 실존뿐이었다

#인간은 어떤 환경에도 적응할 수 있다
나 같은 의학도가 수용소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은 우리가 공부했던 “교과서가 모두 거짓”이라는 사실이었다. 교과서에는 사람이 일정한 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으면 죽는다고 적혀 있다. 하지만 이것은 완전히 틀린 말이었다.
당시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견뎠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는 놀라운 사례를 몇 가지 더 들어 보자.

절망이 오히려 자살을 보류하게 만든다?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은 첫번째 단계의 충격을 받은 나머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사람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 있는가 하면 더 이상 잃을 이성이 없게 만드는 일도 있더.”-레싱

우리는 우리의 몸이 자기 자신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장기관이 자체의 단백질을 소화시키고, 몸에서 근육이 사라졌다.

대다수 사람들이 원시적인 생활을 하면서 목숨을 부지하는 일에 정신을 집중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 안에서, 그리고 사랑을 통해서 실현된다.

사소한 것에서 느끼는 상대적인 행복
수용소 생활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은 일종의 소극적인 행복이었고, 다른 것과의 비교를 통해서만 느낄 수 있는 상대적인 행복이었다. 진정한 의미의 행복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의 없었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분석을 해보면, 그 수감자가 어떤 종류의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은 그 개인의 내적인 선택의 결과이지 수용소라는 환경의 영향이 아니라는 사실이 명백히 드러난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

만약 그곳에 삶의 의미가 있다면, 그것은 시련이 주는 의미일 것이다. 시련과 죽음 없이 인간의 삶은 완성될 수 없다

역설적인 시간 감각? 하루가 일주일보다 더 길게 느껴진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삶의 의지를 불러 일으킨다
미래에 대한 믿음의 상실은 죽음을 부른다

인생이라는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대한 올바른 해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맡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상황에서 비롯된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언제나 가까운 곳에 단 하나만 있는 법이다(그에게 주어진 독자적인 기회이다)
시련 속에 무엇인가 성취할 수 있는 기회가 숨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죽이지 못한 것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들 것이다”-니체

강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인간의 영혼을 파헤치고, 그 영혼의 깊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나도록 만들었다(인간성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노출된 강제수용소)

#해방 이후 나타난 현상들
일종의 잠수병과 같은 것? 물속에서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다가 갑자기 밖으로 나올 때 가장 위험한 것처럼 엄청난 정신적 억압을 받다가 풀려난 사람은 도덕적, 정신적 건강에 손상을 입을 위험이 크다

실존적 좌절? 의미를 찾으려는 인간의 의지도 좌절을 당할 수 있다

실존적 좌절 그 자체는 병적인 것도 병원적인 것도 아니다(실존적 고민이지 정신질환은 아니다)

로고테라피? ‘로고스’를 스스로 깨닫도록 해야 한다!

실존적 역동성? 인간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은 긴장이 없는 상태(항상성)가 아니라 가치 있는 목표, 자유의지로 선택한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하는 것이다.

실존적 공허? 20세기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현상
동물적 본능 상실, 남이 하는 대로 따라하거나(동조주의) 아니면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 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실존적 공허는 대개 권태를 느끼는 상태에서 나타난다.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극단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지어진 존재라는 쇼펜하우어의 말이 이해가 갈 것이다.

실존적 공허의 가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의지가 좌절되면 사람들은 권력욕, 원시적인 형태의 권력욕인 돈, 쾌락 등으로 그 좌절을 대신 보상받으려 한다

#삶의 의미
인간의 실존? 인간은 추상적인 삶의 의미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구체적인 과제를 수행할 특정한 일과 사명이 있다. 이 점에 있어서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그의 삶 역시 반복될 수 없다.(유일한 존재)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능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로고테라피 치료사가 하는 일? 화가보다 안과의사! 그대로 볼 수 있게

인간존재의 자기 초월?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psyche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자아실현은 자아초월의 부사장인 결과로서만 얻어진다)

사랑? 다른 사람을 유일한 존재로 체험하는 것

#사랑의 의미

사랑하지 않고서는 어느 누구도 그 사람의 본질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사랑으로 인해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특성과 개성을 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그 사람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 그리고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앞으로 실현되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도 볼 수 있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은 사랑의 힘으로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시련은 그것의 의미를 알게 되는 순간 시련이기를 멈춘다
“만약 선생께서 먼저 죽고 아내가 살아남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 세상에! 아내에게는 아주 끔찍한 일이었을 겁니다. 그걸 어떻게 견디겠어요?”
그의 아내를 살릴 수 없지만 바뀔 수 없는 운명에 대한 그의 태도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삶의 의미를 찾아주는 로고테라피)

“내 삶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요즘은 성직자가 아니라 의사를 찾아와서 묻는다!

#초의미? 인간의 지적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는 궁극적인 의미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실존철학자들이 가르친 대로 삶의 무의미함을 참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닌 절대적인 의미를 합리적으로 터득하게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이다. 로고스는 논리보다 심오하다.

삶의 가능성과 과거

“가능성 대신에 나는 내 과거 속에 어떤 실체를 갖고 있어. 내가 했던 일, 내가 했던 사랑뿐만 아니라 내가 용산리에 견뎌냈던 시련이라는 실체까지도 말이야. 이 고통들은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것이지. 비록 남들이 부럽기만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말이야.”

과잉욕구? 그 자체가 목적이 되면 그것은 파괴되고, 망가진다

역설의도 기법? 예기불안 치료기법
“내가 얼마나 글씨를 엉망으로 쓰는지 사람들한테 있는 그대로 보여줄 테다”
마음속의 두려움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일을 생기게 하고, 지나친 주의집중이 오히려 원하는 일을 불가능하게 만든다(예기불안)

예기불안은 역설의도로 좌절시켜야 하고, 과잉의도와 과잉투사는 역투사의 방식으로 좌절시켜야 한다
***치료의 핵심은 환자가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데에 있다(거리두기)

#비극 속에서의 낙관
사람이 행복하려면 ‘행복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그 이유를 찾으면 인간은 저절로 행복해진다.

인간이 시련을 가져다 주는 상황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는 있다.

“두번째 인생을 사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번째 인생에서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감사하게도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강제수용소 안에서 일어난 일을 몰랐다…하지만 프로이트의 말과는 달리 강제수용소에서 ‘개인적인 차이’는 모호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로 그 차이점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람들은 가면을 벗고, 돼지와 성자의 두 부류로 나뉘어졌다.

“그러나 모든 위대한 것은 그것을 발견하는 것만큼이나 실현시키는 것도 힘들다”-스피노자 [윤리학]의 마지막 문장

이 세상은 지금 아주 좋지 않은 상태에 있고, 우리 각자가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더욱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경계심을 갖자.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로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로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를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