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 편집의 시대

큐레이션. 스티븐 로젠바움. p327

정보 과잉 시대의 돌파구
편집의 시대

큐레이션: 미디어 3.0 시대를 이해하는 열쇠

비서는 CEO가 꼭 봤어야 할 신문기사를 스크랩 목록에서 의도적으로 누락시켰다? 정보가 곧 부의 근원이자 권력인 스마트 시대!
그는 고객의 취향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다

#1 박물관에서 탈출한 큐레이션
‘큐레이트’ 된 구매와 일반 구매의 차이?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무작정 많은 상품보다 엄선한 상품을 취급하는 브랜드와 매장이 차별화에 성공한다(질적인 판단을 추가해서 가치를 더하는 일!)

인간 그 자체가 큐레이터다. 인간은 컴퓨터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낸다. 인간에게는 뉘앙스도 너무나 많고 취향도 다양하다.

콘텐츠 과잉? 필터 하나? 잡음은 사라지고 세상은 명료해진다!

콘텐츠가 많아진다는 말은 그만큼 이용하기 힘들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큐레이션은 품질을 식별하는 과정

“이제 문제는 누가 들을 것인가로 바뀌었습니다. 어떻게 대중에 다가갈 것인가가 진짜 문제예요.”

“누구에게나 말할 수 있다면, 결국 어느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요.”

기술로 흥한 자는 기술로 망하는 법? 매스 미디어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다

쇼셜 웹을 주도할 콘텐츠 큐레이터

#수집 vs 큐레이션
수집은 자동화 vs 부분적 수작업
“…수집은 콘텐츠 수집 과정에서 중요하고 능동적이며 지속적인 편집 과정을 배제합니다…”

정보가 넘쳐나 감당하지 못할 웹을 살려내는 새로운 마술

#큐레이션으로 일군 기적, 리더스 다이제스트
잡지에 대한 잡지
뉴스 매거진 타임, 바쁜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뉴스
최초의 케이블 TV, 동영상 큐레이터

#허핑턴 포스트와 링크 경제의 출현
“사람들은 단지 정보를 소비할 뿐 아니라 참여하고 싶어 하죠. 이러한 욕구를 파악하는 데 저널리즘의 미래가 있어요.”
그의 콘텐츠가 없어도 그만? 기꺼이 맥주를 채워 넣겠다는 양조업자들이 줄을 서 있다!

“뉴욕타임즈 기사들은 너무 길어요…줄이고 또 줄이는 방법 외에는 다른 성공 모델을 찾기가 정말 어려워졌죠…”

저작권 소송? 수집과 큐레이션은 ‘공정한 사용Fair Use

댓글 관리? 인간 큐레이션 덕분에 친절하고 예의 바른 댓글 교환 가능해졌다

“인간의 편집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

결국 콘텐츠의 미래는 컴퓨터 대 인간의 싸움이다

#큐레이션, 고객의 목소리를 듣다
델의 악몽, ‘Dell lies, Dell sucks’
소비자들은 서로 연결되자 미디어를 능가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리스노믹스listenomics
“할 말이 있는 사람에게 발언권을 주고 그 말을 경청하면, 사람들을 고무시키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새로운 큐레이션 계층, 부와 권력을 누리다가
폭발적인 데이터 증가로 인해 지금까지의 검색 알고리즘과 검색 방법은 완전히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필터링을 옵션이 아니라 필수 기능으로 바뀐다

일반 대중은 선택권을 가지고 싶어 하는데, 이를 정확히 표현하면 큐레이트된 선택권이다. 선택 대상이 분명하고,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쌍방향이기를 바란다.

어바웃닷컴, 특정 집단을 겨냥한 쌍방향 미디어

#2 큐레이션의 도약과 저항
벼랑 끝에 서게 된 잡지와 출판
잡지의 미래를 큐레이션에서 발견할 수 있다?!
편집자의 일에는 언제나 큐레이션의 요소가 포함되어 있었죠

“전문 지식이 결여된 큐레이션은 그저 스크랩북일 뿐이죠.”

“웹의 가장 큰 적은 웹 그 자체예요.”? 편집이 안 되어 있는 상태!(중요한 것은 ‘잡지’가 아니라 ‘잡지화’)

“과거에는 뉴스에 끝이 있었어요…사실상 뉴스의 끝을 우리 스스로가 정해야 해요. 뉴스는 결코 우리에게 끝났다는 말을 하지 않죠.”

잡음 속에서 신호를 구분해주는 필터는 필수

#큐레이션, 인간을 지향하다
인간 대 컴퓨터? 컴퓨터가 절대로 따라 올 수 없는 부분!
‘아, 이건 로봇이 만든 사이트야. 어디선가 쇠붙이 냄새가 나잖아.’(기계적 알고리즘, 구글 뉴스)

“큐레이션이란 세상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다른 사람에게 그걸 전달하는 것”
새로운 패턴은 인간이란 필터를 거쳐야만 평가될 수 있다

방문자들이 외치는 질문은 단 하나? ‘내가 믿을 수 있는 사이트인가?’

우리 방문자들은 진정성 때문에 찾는 것이지 가식적이고 번드레한 상품 가치에 이끌려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큐레이션 경제에 대한 비판과 옹호
인터넷에 우호적인 법? ‘공정한 사용’ DMCA! 일종의 피난처(Safe Harbor)를 제공한다

조작가능한 검색? 구글은 똑똑하지도 않을 뿐더러 상업적인 이해관계에 얽히는 경우가 있다(검색어 광고)

#큐레이션은 과연 무임승차 중인가?
이제 권력은 콘텐츠 창작자에게서 콘텐츠 큐레이터로 이동하고 있다-세스 고딘

“이제 부족한 것은 정보가 아니라 관심입니다. 큐레이터를 정보를 제공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요.”

“정보가 우리 행동을 좌우하는 시대에는 어떤 정보를 얻으려고 가장 중요합니다. 정보를 선택하는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되죠.”

“정보의 특징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을 때 가치가 높아진다는 겁니다.”(공유의 가치!)

린치핀, 대체불가능한 존재에게 권력이 있다(콘텐츠 업계 핵심 세력은 창작자가 아니라 수집기)

#3 큐레이션의 미래와 성공
큐레이션이 브랜드의 생존을 좌우하다
홀푸드? 선별되지 않은 일반 채소 가게와는 차원이 다르다(선택 기준을 고객과 공유)

관심 경제? 관심도 일종의 돈, 시간과 돈은 상호 교환가능하다(관심에는 시간이 들고 시간에는 금전적 가치가 있으니, 결국 관심에도 금전적 가치가 있다)

큐레이션은 마케팅의 새로운 필수 도구
브랜드 스토리? 브랜드 자체가 미디어가 된다
훌륭한 브랜드가 된다는 것은 곧 훌륭한 큐레이터가 된다는 의미

사랑하는 일에 열정을 더하라-블로그허

분명히 차세대 미디어계 거물은 콘텐츠 제작자가 아니라 네트워크로 연결된 콘텐츠 큐레이터일 것이다

미디어의 세분화, 이제 모든 사람이 독립적 미디어 기업이 될 수 있다
지역적이고 협소하며 개인적인 틈새시장들? 파편화된 시장을 재수집하여 다시 규모 있는 시장으로 복구

인간 중계기! 인적 네트워크, 소셜번 네트워킹

#탈통합의 승리 마이크로넷
마이크로넷? 전체시장보다 지역 커뮤니티에 초점을 둔 고품질 네트워크

MTV Unfiltered, 시청자 뉴스 네트워크
‘언필터드’의 가장 중대한 혁신은 기술이 아닌 철학이었다
기술이 주도가 아니라 지원하는 시대, 이제 이야기의 주체는 인간이다!

낮은 출연료, 거물급 연예인 섭외 비결? 100퍼센트 자유!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큐레이트한다

“단, 최고의 콘텐츠를 추구해야 합니다”

좋아요(I Like) 버튼! 대중 큐레이션
수집기와 큐레이션의 차이? 우선순위 선정
리트윗! 필터링

검색의 미래는 동사? 이제 사람들은 검색할 명사나때 정보를 찾지 않는다. 대신 행위를 찾는다!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해 정보를 찾는다.

데이터 마이닝, 개인 정보 보호 문제? 지울 수 없는 과거? “모든 사람은 젊어서 실수를 저지르고 그 실수를 발판으로 발전해갈 기회를 보장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가 평생에 걸쳐 다양한 삶을 시도해가는 과정을 전부 잡아내는 기술과 함께 살아가야 해요…”

변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양이다! 새로운 배관 시스템이 필요하다

실시간보다는 적시성에 중점을!

열정과 틈새시장의 디지털 마술
“스스로 성공할 수 있는 위치에 서 있어야 합니다…밥벌이를 위해 일하는 것은 맞지만, 평생 싫어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법은 어디에도 없어요.”

“인터넷에서 제가 발견한 가장 마술같은 사실은 정말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지금 어떤 열정이 있습니까?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요?…우리 모두가 자기 삶의 큐레이터라고 생각합니다.”

“더 나은 인간이 승리한다. 드로이드.”

검색의 시대는 끝났고 큐레이션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구글에서 페이스북으로?)
검색의 관건은 대용량의 빠른 컴퓨터였지만, 큐레이션의 관건은 인간이다

자전거 여행 2 | 풍경

자전거 여행 2. 김훈. p273

다시 자전거를 저어서 바람 속으로 나선다

몸속의 길과 세상의 길이 이어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간다

몸은 풍경 속으로 퍼지고 풍경은 마음에 스민다

지나간 힘은 거둘 수 없고 닥쳐올 힘은 경험되지 않는데 지쳐서 주저앉은 허벅지에 새 힘은 가득하다. 기진한 힘 속에서 새 힘의 싹들이 돋아나오고, 나는 그 비밀을 누릴 수 있지만 설명할 수 없다.

풍경은 바람과도 같다.
나는 몸과 마음과 풍경이 만나고 또 갈라서는 언저리에서 나의 모국어가 돋아나기를 바란다. 말들아, 풍경을 건너오는 새 떼처럼 내 가슴에 내려앉아다오. 거기서 날개 소리 퍼덕거리며 날아올라다오.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_조강에서
풍경은 사물로서 무의미하다. 그렇게 말하는 편이 덜 틀린다. 풍경은 인문이 아니라 자연이다. 풍경은 본래 스스로 그러하다. 풍경은 아름답거나 추악하지 않다.

무위자연의 ‘무위’는 그 바쁜 것들에 손댈 수 없고 거기에 개입할 수 없는 인간의 속수무책을 말하는 것으로, 나는 겨우 이해하고 있다.

“흐르는 것은 저러하구나”-공자
“산에는 꽃이 피네, 꽃이 피네” 라고, 김소월이 그 단순성의 절창으로 노래할 때도, 그 노래는 말을 걸 수 없는 자연을 향해 기어이 말을 걸어야 하는 인간의 슬픔과 그리움의 노래로 나에게는 들린다.

풍경은 인간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지만, 인간이 풍경을 향해 끝없이 말을 걸고 있다. 그러므로 풍경과 언어의 관계는 영원한 짝사랑이고, 언어의 사랑은 짝사랑에서 완성되는데 그렇게 완성된 사랑은 끝끝내 불완전한 사랑이다. 언어의 사랑은 불완전을 완성한다.

#빛의 무한공간_김포평야
48번 국도를 따라 김포를 건너는 자동차 안에서는 김포의 무한함을 느낄 수 없다
김포평야를 자전거로 달리는 느낌은 신기하다. 자전거의 진행은 넓은 공간 속으로 파묻혀버리고 시야에 걸리는 표적물이 거의 없어서 자전거를 탄 사람은 늘 제자리에 붙어 있는 느낌이다.

#고기 잡는 포구의 오래된 삶_김포 전류리 포구
좁은 어장의 물은 거칠어 어로는 힘겹고 어획은 영세하지만 고기 잡는 포구의 오래된 삶은 끈질기다
횟감의 으뜸은 한강 ‘웅어’
이 귀한 고기의 맛을 도시 사람들이 알 리 없어 포구에서 거래되는 웅어 값은 20마리 한 두름에 2만 원이다.

#10만 년 된 수평과 30년 된 수직 사이에서_고양 일산 신도시
10만 년의 세월이 흘러서 이제 천지개벽된 이 신도시에서는 진실이 아니라 기만의 장치가 인간을 보호하고 가정의 평화를 버티어준다.(창궐하는 러브호텔)

그 풍경 속에서 변하는 것들은 변하지 않는 것들 속을 날아간다.
내가 사는 마을에서는 변하지 않는 것들은 위태로워서 사소해 보이고, 마침내 변해야 하는 것들은 강력하고 완강해 보인다.

#남양만 갯벌
갯벌의 법률적 지위는 공유수면이다
갯벌은 막는 자의 것이다. 공유수면은 사유토지로 버뀌어간다. (서산간척지는 현대그룹, 인천 간척지는 동아그룹의 땅)

#멸절의 시공을 향해 흐르는 ‘갇힌 물’_남양만 장덕 수로
어민들은 포도 농사로 생업을 바꾸었으나 마른 갯벌을 쓸어오는 소금바람과 겨울철에 얼어붙는 담수호의 냉해로 시공회사 측과 분쟁이 일고 있다
배가 없어진 수로에는 윈드서핑을 하는 젊은이들의 돛단배가 모여들어 있다
삶의 방식과 기본구조 전체가 지속 불가능하고 회복 불가능한 방식으로 단절되었다. 오래된 마을들의 역사는 이제 0에서부터 새로 시작되고 있다.

#시원의 힘, 노동의 합창_선재도 갯벌
시화방조제 4차선 도로? 이 도로의 운전자들은 바다조차도 토목구조물이라는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고, 가속기 페달을 세게 밟을수록 이 착각은 심화된다
초대형 교량들? 서해안의 대한민국은 토목국가다!
선재도 갯벌의 바지락잡이는 일차 산업 노동의 장관을 이룬다. 신석기의 조개무덤이남아 있는 그 갯벌에서 사람들은 아직도 똑같은 노동으로 바지락을 잡는다.
갯벌에는 시간이 쌓이지 않고 시간이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갯벌이 주는 공간 정서는 비논리적이다. 언어를 설칠 만한 표적이 없고 논리를 비빌 언덕이 없다. 그리고 갯벌의 상태는 끝없이 질퍽거리고 뒤섞이는 불안정성이다. 이 불안정성이 갯벌의 안정성이다.

#시간이 기르는 밭_아직도 남아 있는 서해안의 염전
염전은 갯가의 평야다. 염전의 생산방식은 기다림과 졸여짐이다. 염전은 하늘과 태양과 바람과 바다에 모든 생산의 바탕을 내 맡긴 채 광활하고 아득하다. 염전은 속수무책의 평야인 것이다. 염전은 기다리는 들이다.
염부는 생명을 기르지 않지만, 시간은 염전의 생산을 길러준다. 바다와 육지 사이에서 염전은 수산업도 아니고 농업도 아니다. 염전은 산업자원부 산하에 등록되는 광업이다.(소금은 광물질!)
젓갈과 김치의 맛은 소금이 매개하는 시간의 맛이다
햇볕이 증발시킨 물기를 바람이 걷어가면서 소금은 엉긴다

#여름에 이동하는 사람들을 위하여_경기만 등대를 찾아
배는 엔진의 힘으로 나아가지 않고, 저 자신의 위치를 스스로 아는 힘으로 간다. 엔진은 동력을 생산해내지만 이 동력이 방향성을 받지 못하면 동력은 눈먼 동력일 뿐, 추진력이 되지 못한다.
선박을 움직여 대양을 건너가는 항해사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에 스스로 대답할 수 있어야만 목적지 항구에 닿을 수 있다.
방향의 운명은 상대적이다. 나의 위치는 나침판 바늘의 중심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나의 위치를 외계와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면, 나는 동서남북의 절대적 방위를 알더라도 어느 쪽을 향해 몇 도의 각도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가 없다.
나는 너의 존재와 너의 위치에 의해서 나 자신의 위치를 식별할 수 있다.
내가 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는 거점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밖에 있다

#숲은 숨이고, 숨은 숲이다_광릉 숲에서
숲은 오랜 시간 속에서 저절로 모습을 바꾸며 완성된 생태계를 지향한다
서어나무 군락, 극상림, 가장 안정된 숲

동심원의 중심부는 물기가 닿지 않아 무기물로 변해 았고, 이 중심부는 나무가 사는 일에 간여하지 않는다. 이 중심부는 무위와 적막의 나라인데 이 무위의 중심이 나무의 전 존재를 하늘을 향해 수직으로 버티어준다. 무위는 존재의 뼈대이다.
나무의 늙음은 낡음이나 쇠퇴가 아니라 완성이다.

#살길과 죽을 길은 포개져 있다_남한산성 기행
남한산성 서문의 치욕과 고통을 성찰하는 일은, 죽을 수도 없고 살 수도 없은 세상에서 그러나 죽을 수 없는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아마도 받아들일 수 없는 고통과 치욕이란 없는 모양이다.

그들은 포위된 성안에서 47일간 말로 싸웠다
죽을 길과 살길은 모두 성밖에 있다! 성안에는 죽을 길도 없고 살길도 없다!

이승훈의 최후? 순교와 배교? 그들의 죽음이란 순교와 배교가 겹쳐져 있다
다산의 치욕은 침묵 속에 잠겨 있다

#권력화되지 않은 유통의 풍경_모란시장
유통의 권력은 제 1차 산업의 생산물에 대해서 더욱 지배적인데 농업과 어업에서 생산은 노동이고 유통은 권력이다
자본주의적 대량유통의 특징은 재화의 흐름을 관리하는 기능이 권력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전거 여행 | 인문학적 글쓰기

자전거 여행. 김훈. p297
들여다보기‘ 선수

자전거를 타고 저어갈 때, 세상의 길들은 몸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다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나가는 일은 복되다.

바퀴를 굴려서 가는 사람은 몸이 곧 길임을 안다

#꽃피는 해안선_여수 돌산도 향일암
겨울에는 봄의 길들을 떠올릴 수 없었고, 봄에는 겨울의 길들이 믿어지지 않는다. 다 지나오고 나도, 지나온 길들이 아직도 거기에 그렇게 뻗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길은 처음부터 다시 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
몸이 가벼워지면 길은 더 멀어 보인다

매화의 죽음은 풍장이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꽃피어 봄 마음 이리 설레니
아, 이 젊음을 어찌할거나

이것은 대책이 없는 생의 충동이다

#흙의 노래를 들어라_남해안 경작지
이 붉고 또 깊은 밭이 남도의 가장 대표적인 봄 풍광을 이룬다
이것은 물리 현상이 아니라 생명 현상이고, 역학이 아니라 리듬이다

#지옥 속의 낙원_식영정, 소쇄원, 면앙정
무등산은 삶 속의 산이다. 세상이 끝나는 곳에서 솟아오른 산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내려와 있는 산이다.
정자는 현실의 중압감이 빠져나간 자유의 공간이다
불우한 자들이 낙원을 만들고 모든 낙원은 지옥 속의 낙원이다.
대나무의 삶은 두꺼워지는 삶이 아니라 단단해지는 삶이다. 대나무는 인도의 세월을 기록하지 않고, 아무런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망월동의 봄_광주
삶은 소설이나 연극과는 많이 다르다. 삶속에서는 언제나 밥과 사랑이 원한과 치욕보다 먼저다.
“말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이 군대 전체와 국가 권력 전체를 증오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깨어진 구둣가게 꿈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 목발 때문에 나는 세상과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그런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만경강에서_옥구 염전에서 심포리까지
‘소금이 온다’
소금은 모든 맛의 근원이다. 다른 모든 맛을 살아나게 한다. 짠맛은 바다의 것이고, 향기는 햇볕의 것이다.
햇볕과 바다의 정수가 소금 알 속에서 고려해야 한다

#도요새에 바친다_만경강 하구 갯벌
그들은 고향이 없으므로 타향이 없다
알에서 태어나 바람 속을 떠도는 그것들의 고난은 포유류에서 태어나 정주하는 땅에 결박되는 자들의 고난을 동료 중생의 이름으로 위로할 만하다

갈대는 빈약한 풀이다. 바람 속으로 씨앗을 퍼뜨리는 풀은 화려한 꽃을 피우지 않는다. 그것들은 태어날 때부터 늙음을 간직한다. 그것들은 바람인 것처럼 바람에 포개진다. 그러나 그 뿌리는 완강하게도 땅에 들러붙어 있다.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_안면도
이 세상의 어떠한 숲도 초라하지 않다.
숲의 힘은 오래된 것들을 새롭게 살려내는 것이어서, 숲 속에서 시간은 낡지 않고 시간은 병들지 않는다.
숲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 숲의 빛은 물러서듯이 멀어지고, 멀어지면서 또 깊어져서 사람들은 더 먼 빛 속으로 자꾸만 빨려 들어간다.
숲은 의사도 없이 저절로 굴러가는 재활병원이고, 사람들은 이 병원의 영원한 환자인 셈이다.
봄의 산은 새롭고 또 날마다 더욱 새로워서, 지나간 시간의 산이 아니다.
휴일의 날이 저물고 사람들 틈에 섞여 산을 내려올 때, 성인은 벌써 산을 다 내려가서 마을에 계신다. 천하에 무릉도원은 없다.

#다시 숲에 대하여_전라남도 구례
“온 산에 새잎 돋는 사태 속에 깨달음이 있다. 이것은 분명하다. 그것을 알지만 거기에 가까이 갈 수는 없다. 이것도 분명하다.”

#찻잔 속의 낙원_화개면 쌍계사
차는 혼자서 마시는 차를 으뜸으로 여기고 여럿이 마시는 차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숲은 죽지 않는다_강원도 고성
사람이 공들이고 돈 들여서 한 일이 아니다. 숲은 저절로 인 것이다.
숲의 경제성? 숲은 재화를 공급하는 공장이 아니다. 숲의 경제성은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연에 맡겨라, 제발 내버려두라

#그리운 것들 쪽으로_선암사
선암사 화장실은 배설의 낙원이다

#그곳에 가면 퇴계의 마음빛이 있다_도산서원과 안동 하회마을
개항 이래 이 나라에 건설된 주택과 빌딩과 마을과 도시들은 모두 자연과 인간을 배반했고, 전통적 가치의 고귀함을 굴착기로 퍼다 버렸으며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의 편이 아닌 공간에 강제수용되어 있다는 탄식이 그 무성한 논의의 요점인 듯하다.
아파트는 평면의 누적일 뿐이다. 공간의 의미를 모두 박탈당한 이 밋밋한 평면 위에 누워서 안동 하회 마을이나 예안면 낮은 자락의 오래된 살림집을 생각하는 일은 즐겁고 또 서글프다.
안동 하회 마을이나 예안면의 옛집들을 기웃거릴 때, 오늘의 빈곤은 가슴아프다.

#무기의 땅, 악기의 바다_경주 감포

#복된 마을의 매맞는 소_소백산 의풍 마을
이제 가든과 파크와 기지국은 이 국토의 가장 압도적인 풍경이다
‘정감록’에 따르면 환란은 세상으로부터 온다. 자연과 인간의 직접성을 훼손하는 모든 인위적 장치와 제도가 재앙이며 환란

#고해 속의 무한강산_부석사
농부를 붙잡고 물어보니, 고추값이 맞지 않고 품삯을 댈길이 없어 거두지 못하던 차에 서리가 내렸다는 것이다.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에게 기운내라고 말하는 것이 도덕적인지 비도덕적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태양보다 밝은 노동의 등불_영일만
회를 먹을 때 피해야 할 두 가지? 양식된 생선과 냉동된 고기
어부들은 비싼 값을 치르면 양식되고 냉동된 광어나 우럭을 먹지 말고 도다리를 먹으라고 권한다. 도다리는 양식으로 키울 수 없다.
오징어를 고를 때는 면적이 넓은 것을 피해야 한다(냉동 오징어는 밑으로 늘어나서 면적이 커진다)

#원형의 섬_진도 소포리
1973년 이 마을 앞바다는 방조제로 막혔다. 농토가 늘어나 주민들의 삶은 소금을 구워서 먹고 살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이 넉넉해졌다. 그러나 왠지 노래의 신명은 빠지는 듯했다.
농지가 정리되고 농로가 직선으로 버뀌었고 모내기와 추수 작업은 기계화되었다. 노동의 구체적 동작과 결합되어 있던 들노래의 리듬은 노동으로부터 소외되었다. 인간과 노동과 노래가 뿔뿔이 흩어져버린 것이다.

#충무공, 그 한없는 단순성과 순결한 컬에 대하여
이 아수라 속에서 살길은 애초부터 없는 것이다. 싸우다 죽든지, 달아나다 죽든지, 군율에 죽든지 죽음의 방식만이 선택의 길이다. 명량은 적에게나 아군에게나 사지이다.

‘의도된 전사’, ‘위장된 자살’? 그에게는 전후의 권력 재편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정치적 여백이 없었다. 역사는 모순이며 비애이다.

#길들의 표정_덕산재에서 물한리까지
자동차 운전? 그에게 길이란 생략되거나 단축되거나 잘하거라 할 대상인 것이다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산간 마을 사람들_도마령 조동 마을
“개를 때리면, 때려도 말 안 듣는 개가 된다. 개의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문경새재는 몇 굽이냐_하늘재,지름재,조소령,문경새재

#가마 속의 고요한 불_관음리에서
가마의 아름다움은 보이는 것이 아니어서 몽상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그때 한국에서는 사기 가마터를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고바야시는 지금 일본 도예계의 대가가 되어 있다

#가을빛 속으로의 출발_양양 산림원지
배낭이 무거워야 살 수 있지만, 배낭이 가벼워야 갈 수 있다. 그러니 이 무거움과 가벼움은 결국 같은 것인가. 같은 것이 왜 반대인가…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짊어지고 바퀴를 굴려 오르막을 오른다.

#마지막 가을빛을 위한 르포_태백산맥 미천골
눈뜬 사람들은 자꾸 떠났다. 팔 땅이 없는 사람은 마을을 떠나지 않는다.
상인들이 값을 제대로 쳐줄지 모르겠다고 그는 걱정했다. “작물을 보고 농사를 지어야 할 텐데 상인들을 보고 농사를 짓는 판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면옥치는 산맥 속에 박힌 별처럼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꺼질 듯이 위태로워 보였다.

#노령산맥 속의 IMF_섬진강 상류의 여우치 마을
삶이 다 망가진 사람들은 산골 마을의 고향을 떠났고, 아주 할 수 없이 더 망가진 사람들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은행처럼 무서운 건 없다”
고향에 돌아온 후 그의 모든 삶은 연체에 연체가 자꾸 쌓여가는 은행 이자와의 싸움이다.
밥으로 바뀌어서 식구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몽땅 이자로 은행에 들어간다. 이것이 금융 거래의 기본 질서다.
그들이 도대체 무슨 책임져야 할 일을 저질렀기에 이 고생을 해야 하는가. 고향은 아직도 그리던 고향이 아닌 것만 같았다…그리던 고향이 아닌 고향도 그리던 고향일 터이다.

#시간과 강물_섬진강 덕치 마을
1년에 콩 열가섯 말을 거두는데 그 중 한 말은 땅주인에게 준다. 올해 조선콩 한 말 값은 2만원이었다.

#꽃피는 아이들_마암분교
마암분교 아이들 머리 뒤통수 가마에서는 햇볕 냄새가 난다. 흙향기도 난다. 아이들은 햇볕 속에서 놀고 햇볕 속에서 자란다.
아 아이들은 억지로 키우는 아이들이 아니다. 이 아이들은 저절로 자라는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나무와 꽃과 계절과 함께, 저절로 큰다.
아이들은 책에서 배우기보다는 삶으로부터 직접 배운다
삶의 질서는 이처럼 아름답고 자연스럽다. 저절로 되어지는 속에서 아이들은 배운다. 가르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어가면서 배운다. 삶이 곧 교육이 되는 학교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진리는 공부가 파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이 나르는 돼지밥통 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설(說)과 학(學)으로 새우곤 하는 그의 사유와 언어는 생태학과 지리학과 역사학과 인류학과 종교학을 종(縱)하고 횡(橫)한다. 가히 엄결하고 섬세한 인문주의의 정수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