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와 빈곤 | 불편한 진실
2월 9, 2010

“사회가 눈부시게 진보함에도 불구하고 빈곤이 해소되지 않고 주기적으로 경제불황이 닥치는 이유는 토지사유에 따른 불로소득이 지주에게 귀속되기 때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지대를 완전 징수하여 최우선적 수입으로 하는 토지가치세제(land value taxation)를 실시해야 한다.”
지대를 모두 조세로 징수하자!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의 거의 600페이지에 달하는 제법 두툼한 두께와 무게감에 대한 한 줄 요약이다. 눈부신 물질적 진보의 뒷편에 빈곤이 항상 함께 하는 진보의 아이러니에 대한 이유는 바로 토지, 땅이다. 또한 원인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단 얘기다. 하지만 아직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모든 독자가 스스로 검증할 수 있고 일상적으로 겪고 일상적으로 아는 사실들을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경제전문서라기 보단 ‘경제교양서’이다.
토지가치 이외의 대상에 부과하는 모든 조세를 철폐하자. To abolish all taxation save that on land values.
정치경제학
수많은 수식어 가운데 ‘정치’란 용어는 아마도 가장 현실적인 관점을 담고 있는 설명이 아닐까 싶다. 경제는 곧 대중의 삶이자 통치의 문제와 직결된다. 멜서스의 인구론을 비롯한 경제학의 고전들이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지배계층을 위로, 안심시켜주며, 특권구조를 옹호해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심의 추궁으로부터 이기심을 변론해줄 수 있기 때문이란 얘기다. ‘무노동 무소득’의 노동자가 아니라 ‘무노동 무임금’의 자본가의 편에서 자본소득을 옹호해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는 근면, 지식, 절약의 대가이고 ‘빈곤’은 나태, 무지, 무절제에 대한 벌이란 인식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만들고 불로소득을 당연한 대가로 인식하게 가르쳐왔다.
“우리는 인도인을 배려하지 않는다. 동방에서, 아니 세계에서 가장 슬픈 모습은 인도의 농민이다.”-나이팅게일
“지금까지 이룩한 모든 기계의 장면이 인간의 수고를 덜어주었는지 아직은 의문이다.”-존 스튜어트 밀
진보의 법칙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단순한 물질적 진보가 빈곤을 없애줄 것이라는 안이한 믿음을 갖고 있다. 보려고하면 보이는 것이 원리이다. ‘게으른’ 사회통념에 젖어든 낡은 인식을 버리면 볼 수 있는 진보의 원리는 바로 ‘평등속의 어울림‘이다. 평등,정의,자유와 도덕법칙의 존중은 정신력이 쓸 데 없는 싸움에 소모되는 것을 막아준다. 오로지 진보의 동력으로 정신력을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현대문명의 우월성은 바로 어울림의 신장과 평등의 신장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울림의 부족의 궁극적 모습은 전쟁이다.-‘이라크 침공이 아니라 미국인에게 유류세를 부과할 용기가 있는’ 미래를 감당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가 미국에 필요했던 것이다- 이런 어울림 부족을 초래하여 현대문명을 저주하고 위협하는 부의 불균등한 분배의 원인이 토지사유제에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들려주고 부의 근원이자 노동의 터전인 토지의 사적소유를 공동소유로 바꾸어가는 방법이외에는 어떤 희망도 없음을 명료하게 전해주는 과격하지만 ‘솔직하고 용기있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이 세상의 물자와 권리를 새롭고 공정하게 배분하는 것이 인간사를 다스리는 사람의 주된 목표가 되어야 한다.”-드 또끄빌
역사란 무엇인가? | 현재와 과거의 대화
2월 8, 2010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이다. 과거의 기억이 아닌 더 나은 미래에 대한 대화다. 사실은 원료일뿐 역사 자체가 아니다. 역사를 쓴다는 것이 역사를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다.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없다(조지 클라크). 역사는 기록이 아닌 공감과 해석의 학문이다. 올바른 역사 인식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의 사실은 역사가가 그것을 창조하기까지는 어떠한 역사가에 대해서도 존재하지 않는다”-칼 베커
“그래도 역시 그것은 움직인다-오직 인간에 의해서만”
역사란 역사가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 현재진행형의 대화다. 역사가는 개인인 동시에 역사와 사회의 산물이다. 역사가의 살아있는 사회관의 반영이다. 역사를 이해하기에 앞서 역사가가 어떤 인물인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란 인류와 함께 하는 살아있는 생명체이다. 역사가는 현실의 관찰자가 아닌 참여자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에서 객관성이란 말자체가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문제투성이다. 사실의 객관성이 아니라 관계의 객관성이 있을 뿐이다. 절대적 진리라는 개념은 역사의 세계에는 적합하지 않다. 불완전한 이성의 현실세계이다.
“역사가에게 유일한 절대자는 변화이다”
역사는 미래의 거울이다
‘불가피한’, ‘피할 수 없는’, ‘모면할 수 없는’ 식의 역사표현은 무책임보다 무지의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에서 우연이란 단지 무지의 도피처일뿐이다. ‘왜?‘란 물음과 함께 ‘어디로?‘란 물음에 스스로 답을 찾아내는 것이 역사가의 임무이다. 과거가 아니라 진정한 미래를 위한 ‘과학’이 진정한 역사학이다. 올바른 역사인식은 건강한 미래를 위한 초석이다. 과거사의 올바른 정립은 바른 역사를 세우고 밝은 미래로 가기 위한 밑거름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바로 우리에게 남겨진 지난 역사의 아픔을 제대로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필요한 것이 올바른 역사 인식에서 시작될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역사가의 기능은 현재를 이해하는 열쇠로서 과거를 지배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역사는 역사가가 만든다.
성공과 좌절 | 영원한 나의 대통령
2월 5, 2010

꿈이 있는 대통령
윌리엄 진서의 ‘글쓰기 생각쓰기‘에서 얘기하듯 회고록은 자서전과 달리 인생의 요약이 아니라 삶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못다쓴 회고록 ‘성공과 좌절‘은 인간 노무현보다는 대통령으로서의 그분의 삶과 사고를 엿볼 수 있는 창을 제공한다.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던 이상주의자이기도 했던 그분의 진솔한 모습이 가슴뭉클하게 전해져 온다.
“큰 새는 바람을 거슬러 날고, 살아있는 물고기는 물살을 거슬러 헤엄친다.”
실패 아닌 실패
더이상 ‘도덕성’이 크게 중요치 않은 덕목처럼 여겨지는 현실정치는 이미 실패한 것이다. 미래로 지속가능한 통치의 밑받침은 도덕성이다. 더구나 한 나라의 리더로서의 도덕성은 가장 기본적인 덕목 가운데 하나이다. 절대 기회주의와 타협하지 않고 털어도 먼지 하나 나오지 않는 삶을 살아가려던 노력이 바로 ‘사람사는 세상‘의 꿈으로 이어진다. 대한민국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원한 나의 대통령‘의 이야기이다.
“저는 끝까지 소신을 지켜온 셈입니다.”
